▲ 대통령선거를 불과 7시간30분 남긴 시점에서 발 표한 정몽준 대표의 ‘노무현 지지 철회’는 결과적 으로 정 대표 자신을 수렁 속으로 밀어넣고 말았 다. 사진은 지난 9월17일 대선출마 기자회견 때의 모습. | ||
정 대표의 지지 철회에도 불구하고 노 후보가 무려 57만여 표의 차이로 당선되자 정 대표의 어처구니 없는 자해성 결정을 둘러싸고 ‘현대 등 재벌 압력설’ ‘미국작용설’ 등 갖가지 분석이 난무했다.
이어 정 대표가 지지 철회를 선언한지 48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20일 오전 지지 철회에 대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자 정 대표의 품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정 대표가 후보단일화에 실패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통합21 주요당직자들의 정 대표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유학시절부터 정 대표와 교분을 쌓아오다 정 대표의 추천으로 현대중공업 사외이사를 지내고 통합21의 대선기획단장이란 중책을 맡은 박진원 변호사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자.
“정 대표는 콤플렉스라고 말할 정도로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내가 정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정 대표가 서울대 경영대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을 때였다.
그는 늘 경기고를 가지 못한 데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경영학 석사 과정은 MIT가 최고라는 이야기를 듣자 미련없이 MIT로 옮겼다. MIT 경영학 석사과정은 입학하기도 어렵지만 졸업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는데 정 대표는 무난히 졸업을 했다.
이런 사례는 나쁘게 보면 허황된 명예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 대표에게는 그리 나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 대표의 경우 명예를 지키기 위해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일은 하지 않는 방향으로 작용해온 것으로 보인다. 서구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처럼 명예에 걸맞은 의무감을 갖는 셈이다.
정 대표는 내가 귀국하자 나에게 현대중공업 사외이사를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나는 사외이사가 된 후 이번 대선 과정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두 가지 사안을 직접 심의했다.
첫번째는 현대상선에 대한 2백억원대의 증자건이었는데 비록 사외이사였지만 강력한 반대의사를 밝혀 이사회가 지연됐다. 결국 그룹 차원의 정책 결정이라며 한 번만 동의해달라고 요청해 이를 수용했지만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당시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는 매출액의 10%를 전결로 처리할 수 있었는데 이 전결액수가 6천억원에 달했다. 나는 이 금액을 2백억원으로 낮추면 현대상선 증자에 동의하겠다고 해 이를 관철시켰다.
또 한 번은 현대중공업이 지급보증한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채무를 상환하는 건이었는데 금액이 무려 2천억원대였다. 이미 전임 이사회에서 지급보증을 결의한 만큼 집행만 하면 됐는데 당시 대표이사가 지나친 거액이어서 부담을 느껴서인지 이사회의 재결의를 요구했다.
그래서 지급보증서류를 모두 가져오라고 해 이사회장에서 재검토한 결과 현대증권 등이 지급보증을 요구하면서 현대중공업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각서를 쓴 것을 발견했고 이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해 현대증권 등으로부터 1천7백억원대를 반환받으라는 판결까지 받아냈다.
이 두 사건은 당시 현대그룹 차원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었고 나를 사외이사로 추천한 정 대표로서는 나에게 협조요청을 할 만도 했다. 그러나 정 대표는 단 한 차례도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일단 사외이사로 추천한 이상 사외이사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했다.”
정 대표가 명예를 유달히 소중하게 여기게 된 데는 출생과 관련한 콤플렉스도 한몫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 대표는 일곱 살 때쯤 부친인 정주영 전 명예회장 집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미 자신이 서자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할 나이다. 정 대표는 김영명 여사와 결혼한 뒤 자신의 친모나 출생과 관련, 고민을 털어놓은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대표는 형제들 중 공부도 가장 잘했고 외모도 출중해 출생 문제를 제외하고는 어디 하나 빠질 것이 없었다. 사람은 많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욕망이 생기듯 정 대표는 더 완벽한 조건을 갖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정 대표는 자신의 집안을 한국의 케네디가로 만들고자 하는 개인적 욕망을 갖고 있었다. 서자 출신으로서 자신의 집안을 한국 제일의 명문가로 만든다면 자신의 원초적 콤플렉스를 가장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 대표가 이번 대선에 출마한 핵심 동기도 권력욕보다는 이런 욕망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 위부터 지난 10월17일 창당준비위 현판을 내걸고 대권가 도에 몸을 실은 정 대표.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에 극적 으로 합의한 정 대표는 그 결과에 승복했다. 갑작스런 지 지철회 소식을 듣고 정 대표의 집을 찾은 정대철 선대위 원장.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 | ||
정 대표로서는 권력투쟁 경험이 일천해 후보단일화 승복이 얼마나 큰 자기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인 줄 몰랐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때까지만 해도 국민을 상대로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명예욕과 원칙주의적 성향이 그의 행보를 결정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대선국면은 인간의 본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권력투쟁의 장. 여기에 본격적으로 몸을 담으면서 정 대표는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에서 쌓아온 명예욕, 원칙주의 등의 긍정적 성향들을 부정적 형태로 발휘하거나 억제된 인간적 한계들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정 대표가 주변 사람을 좀처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통합21의 당직자들을 통해 이미 알려져 있다. 정 대표는 후보단일화 결과를 수용한 후 단일화 협상을 주도한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한 적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속기사를 동원, 조사과정을 모두 기록하게 했다.
당시 조사를 맡은 사람은 정 대표의 보좌관 출신인 이달희 비서실장이었는데 전직의원과 방송경력 30년의 민창기씨 등은 이 조사를 받은 뒤 굴욕감을 감추지 못했다. 민창기씨가 “데려다 강아지처럼 뛰게 하고는 일이 끝나면 눈도 한 번 안맞춘다”고 지적한 것처럼 정 대표는 어느 한 사람에게 지속적인 신뢰를 보내지 못했다.
정 대표의 이 같은 성향은 재벌2세 출신이라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정 대표로서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에 대해 자신의 돈에 관심이 있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그런 경험을 많이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 대표가 강신옥 변호사나 박진원 단장처럼 자신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으면서 원칙에 충실한 사람을 선호하는 이유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의 명예욕이나 원칙주의 성향은 긍정적인 상황에서는 ‘순수함’으로 발휘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결벽증’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정 대표가 창당 이후 제도권 내 세 확장에 실패한 것은 대표적 예. 당시 정 대표로서는 현역의원들을 영입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지만 그런 현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했다. 새로운 정치 이미지에 걸맞지 않은 인사들을 영입하거나 그 과정에서 돈을 쓴다는 것은 원칙에 어긋나는 일로 용납하지 못했다.
이 같은 결벽증은 후보단일화 이후 민주당과의 정책조율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통합21의 한 핵심관계자에 따르면 정 대표는 “정책이야말로 정치인이 내놓은 대국민 계약서인데 민주당과 이런 정책조율도 마무리짓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나를 지지하는 국민들에게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라고 호소할 수 있나. 그것은 결코 책임감 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정 대표는 이같이 다분히 이상적인 성향 못지않게 기업가 특유의 계산에도 빨랐다. 통합21의 한 당직자는 “정 대표가 정치적 결정에서는 명분과 원칙 등을 중시하는 이상주의적 성향을 보이지만 일단 결정을 하고 난 뒤에는 즉각 이해득실을 따지는 기업가적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고 말했다.
정 대표가 후보단일화에 승복한 뒤 민주당과의 협상과정에서 일단 정책조율이란 명분을 내세운 뒤 이를 바탕으로 차기 정부에서 실리를 취하는 데는 당내 어떤 인사들보다 빠른 판단을 했다는 것. 또 정 대표는 민주당과의 공동선대위 구성에 앞선 당 조직 개편과정에서 정 대표 자신이 맡을 명예선대위원장이 대선후보와 거의 유사한 지위와 조직을 누릴 수 있도록 개편하기도 했다.
정 대표의 이런 복합적 성향들은 단일화 승복 이후 자신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이 악화되면서 그를 사지로 몰아, 결국 노무현 후보 지지철회 선언으로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는 후보단일화 승복 이후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기 시작했고, 후보단일화 여론조사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사람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정 대표로서는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다스리기 어려운 상황까지 치달았다. 정 대표가 명예선대위원장 취임 이후 좀처럼 선거공조에 나서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정책조율에도 나섰지만 정 대표의 심정은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고 공동정권 지분 조율이 난항을 거듭하자 노 후보와의 공조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 노무현 지지철회와 번복을 겪은 정몽준 대표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 ||
지지철회 선언 이틀 전인 16일 노 후보는 한 유세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대북 현금지원을 중단하라고 하는데 그러면 남북관계도 대화도 끊긴다”고 하자 정 대표는 대변인에게 진상을 파악한 뒤 반박 논평을 내라는 지시를 했다(결국 논평은 내지 않았다).
같은날 TV합동토론회에서는 노 후보가 “교육문제는 철학이다. 양보할 수 없다”며 정 대표와의 정책조율 결과를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이어 17일 노 후보는 한 인터넷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 대표와 국정운영과 관련) 구속받을 만한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며 국정 공동운영 약속을 일축했다.
노 후보의 17일 명동 및 종로 유세는 정 대표의 명예욕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노 후보는 이날 오후 6시30분 명동 유세에서 통합21 관계자들을 단상에 올라오지 못하게 막았고 후보단일화와 관련한 정 대표의 결단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유세 말미에는 정 대표를 바라보며 “제가 당선되면 재벌개혁을 할 건데 도와주실 거죠”라고 말하는 등 정 대표의 심경을 불편하게 했다.
이어 종로 유세에서 노 후보는 정 대표 지지자가 ‘다음 대통령 정몽준’이라는 피켓을 든 것을 보고 “여러분 속도 위반하지 마십시오”라고 한 뒤 정동영, 추미애 최고위원을 차기 대권주자로 치켜세우면서 “몇 사람 더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정 대표로서는 갑자기 자신을 정동영, 추미애 최고위원과 동급으로 전락시킨 데 대해 치욕에 가까운 분노를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는 이 유세 직후 당직자들과 음식점에서 통음을 하며 배신감을 토로했고 결국 지지철회 선언을 지시하게 된다.
이미 언급했듯 지지철회 선언은 정 대표의 모든 정치적 자산을 일시에 파괴하는 것이다. 더구나 불과 7∼8시간 이후면 공동정권의 한 축으로 상당한 권력을 향유할 수도 있고 차기대권주자로서 가장 유력한 위상을 차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정 대표가 ‘지지철회’를 선언한 것은 이 같은 정치적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의 결벽증과 명예를 훼손당한 데 대한 개인적 분노 등이 우선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의 핵심측근은 “단일화 승복이라는 역사적 기록은 정 대표의 5년 뒤 ‘꿈’을 위해 버릴 수 없는 자산으로, 일반 정치인이라면 이를 지키는 데 연연했을 것이다”며 “그러나 정 대표는 금이 간 공조를 지키는 것이 원칙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과감히 버리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또 당선을 위해 어떤 얘기도 할 수 있는 정치적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노 후보의 발언을 공조 파기로 간주한 것은 역시 결벽증과 사람에 대한 신뢰 부족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주어진 현실적 데이터를 갖고 계산기를 두드려본 결과, ‘아니다’는 답이 나오면 불확실한 미래에 미련을 두지 않고 자리를 털고 나오는 기업가적 성향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노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당초 약속한 국정 공동운영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역전 가능성마저 거론되자, 계속 지지와 지지철회에 따른 이해득실을 따졌다는 것.
만약 노 후보가 낙선했다면 정 대표의 판단이 이 후보로부터의 정치적 보복이나 현대에 대한 압박을 최소화하고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한 번 더 입증하는 대단히 실리적인 결단으로 평가받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의 지지철회에 대해 이 같은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당시 그의 머리와 가슴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정 대표 자신도 분명히 모를 가능성이 높다. 정 대표가 19일 새벽 지지철회 번복을 요청한 당직자들과의 면담을 거부했음에도 다음날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한 것을 보면 그의 심리상태가 대단히 불안하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어쨌든 정 대표가 이번 파문 이후에도 정치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장 현실적인 세계인 정치권에서 자신의 명예와 원칙에 매몰돼 결벽증까지 보이는 사례가 재발해서는 안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