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의 탄생을 앞두고 대한민 국이 요즘 ‘산고’를 앓고 있다.‘산고’의 주 인공 장상 총리서리의 발걸음이 무거워보인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총리에 임명된 장상 총리서리 장남의 한국국적 포기에서 시작된 ‘산고’는 ‘허위학력 기재의혹’으로 고통이 배가됐고, 급기야 ‘땅투기 의혹’이 더해지면서 ‘첫 여성 총리 임명’이 좌절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낳고 있다. 첫 아이를 낳을 때의 ‘산고’가 가장 고통스럽다던 통설이 ‘첫 여성 총리 탄생’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공인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요. 그렇지만, 사실과 다르게 의혹을 부풀리는 수준에서 진행되는 검증은 (총리에 임명된) 개인에게는 물론이거니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까요.”
장상 총리서리의 남편 박준서 연세대 교수는 최근 언론에서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에 대해 섭섭한 심정을 토로했다.
“남편이 아내 자랑을 한다는 것이 좀 그렇지만, (장상 총리서리는) 참 성실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원칙에 충실하려고 노력해 왔고요. 또 맡은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지만, 박준서 교수의 아내에 대한 애정은 각별해 보였다. 외국에서 함께 유학을 하는 동안 사귀었고, 또 외국에서 결혼, 아이를 둔 상태에서 유학생활을 계속해야 했던 두 사람 사이에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가사 분담’이 이뤄졌다고 한다.
장상 총리서리가 이화여대 총장을 거쳐 국무총리에 임명되는 과정에는 남편 박준서 교수의 ‘내조’가 큰 몫을 한 셈이다. 그렇다고 장 총리서리가 아내로서,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등한시 했던 것은 아니다. 장 총리서리는 바깥일로 바쁜 와중에도 77년 귀국한 이래, 올해 한국나이로 93세인 시어머니를 지금껏 모셔 왔다고 한다.
1939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장상 총리서리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언니를 만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월남했다.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전액 장학금과 유학 지원을 약속받고 이화여대 수학과에 진학했지만, 모태신앙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대학 졸업 후 연세대 신학과에 편입했다. 연세대 신학과에 편입한 장 총리서리는 경기고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역시 연세대 신학과에 편입한 남편 박준서 교수를 처음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연세대 졸업 후 함께 유학길에 올라 미국 예일대 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60년대 후반,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유학 경비 마련이 쉽지 않았을 때이기도 했다.
박준서 교수의 말이다. “그때는 지금과 달라서 유학을 가더라도 가지고 갈 수 있는 달러 한도가 2백달러 정도에 불과했어요. 설령 유학생 가운데 부모가 부유한 사람들이라도 미국으로 자유롭게 송금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누구나 일하면서 공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장 총리서리는) 도서관에서 책 정리하는 아르바이트를 주로 했죠. 교회에서 일을 거들어주고 학비보조를 받기도 했고…. 무엇보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연세대 신학과에서 처음 만난 장 총리서리와 박준서 교수는 1970년 미국 예일대 강당에서 유학생들로만 구성된 하객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 부부가 됐다.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하지 못하던 때라 미국에서 거행된 결혼식에는 부모님이나 친지들이 참석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 장상 총리서리의 든든한 버팀목인 남편 박준서 연세대 교수. [대한매일] | ||
‘허위학력 시비’에 대해 장 총리서리는 “내가 나온 학교는 프린스턴 신학대학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이라며 번역상의 실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허위학력 논란’은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이 유령 대학이 아닌, ‘신학’에 관한한 프린스턴 대학교의 권위 못지 않게 정평이 나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리 큰 논란거리는 되지 못했다.
한편, 장상 총리서리 부부는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73년 장남을 얻었다. 결혼 3년만의 일이다. 당시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 함께 유학했던 한 인사는 “기혼자 숙소를 전전하던 장상 부부의 모습은 고행 그 자체였다”고 회고했다.
장상 총리서리 부부는 장남을 낳은 지 4년이 지나서야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귀국 직후 장상 부부는 장남의 국적을 정리하는 과정에 한국국적을 포기, 미국 시민권을 취득토록 했다. 이 때문에 장 총리서리는 총리에 임명되자마자 장남의 미국 국적 취득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특히, 당시 네 살에 불과했던 장남을 미국 시민권자로 남게 하기 위해 부모가 한국 국적을 일부러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심지어 장 총리서리는 정치권으로부터 ‘국가관이 의심스럽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장남의 미국 국적 취득과 관련, 장 총리서리의 남편 박준서 교수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미국에서 막 귀국하자마자, 이중국적을 갖고 있던 장남의 국적을 정리하라는 공문이 내려왔어요. 우리가 귀국했을 당시에는 우리나라 규정에는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았거든요. 나중에 78년엔가 규정이 바뀌어서 이중국적 취득이 허용됐지만, 저희 부부가 귀국했을 당시에는 하나의 국적만이 허용되던 때였습니다.
그때 미국 대사관쪽에 문의해보니, 미국 국적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본인(장남)이 만18세가 되어서야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당시 네 살에 불과하던 아이를 대신해 부모가 대신해서 국적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답변이었습니다. 국적을 정리하라는 공문은 내려와 있고, 미국 국적은 본인이 만18세가 되어서야 선택할 수 있고…. 그래서 어떡합니까. 불가피하게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수 밖에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당시 규정에 따르다보니, 불가피하게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으로 의혹이 완전히 가시는 것은 아니다. 미국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국내에서 외국인학교에 다녔다는 사실로 인해, 적극적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시킬 의사가 없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의문도 남는다. 미국 시민권자인 장남이 아버지의 의료보험증에 피부양자로 올라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와 관련, 박준서 교수는 “어느 아버지가 자신의 자식을 피부양자로 생각하지 않겠느냐”며 “정확한 과정이야 어찌됐든, 문제가 있다면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한편, 장상 총리서리의 임명과 관련, 이희호 여사와의 친분 때문이란 얘기도 적잖은 논란을 낳았다. 이희호 여사가 YWCA연합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장상 총리서리는 실행위원으로 함께 활동한 바 있다.
또, 98년부터 이희호 여사가 명예총재로 있는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에는 장 총리서리는 이사로 참여해 오고 있다. 여러 인연이 계기가 돼서 장상 총리서리가 발탁된 배경에 이희호 여사가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던 것.
▲ 잇단 의혹과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난 11일 장상 총리서리 취임식이 있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장상 총리서리는 정치권 인사들 사이에 한마디로 ‘여자 이수성’이란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다. 이수성 전 총리와 장상 총리서리는 대학총장에서 총리로 발탁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밖에 장 총리서리는 이수성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정치권 인사는 물론, 각계 각층 인사들과 폭넓은 교류를 해와 소위 ‘마당발’로 통한다.
장 총리서리가 그동안 맡아왔던 직책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만큼 사회활동에 열심이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성곡학술문화재단 이사,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통일부 통일고문회의 통일고문, ‘사랑의 친구들’ 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 <중앙일보> 밀레니엄 위원회 자문위원,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 새천년준비위위원, 예술의전당 자문위원,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 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 후원회 고문, 행정협의조정위원,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이사 등등.
장 총리서리가 역임했거나, 총리 임명 이전까지 맡아왔던 직책은 학계는 물론, 행정, 사법, 과학 등 분야를 불문하고 광범위하게 걸쳐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장 총리서리 발탁 배경에는 이같은 왕성한 사회활동 과정에 김대중 대통령이 ‘첫 여성총리감’으로 점찍어뒀을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한편, 장상 총리서리에게는 ‘자녀 국적문제’ ‘허위학력문제’에 이어 ‘부동산 투기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난 80년대 말 동료교수 5명과 함께 구입해둔 토지가 문제였다. 당시 3천만원을 투자한 장 총리서리의 토지가 수십배의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게됐다는 의혹이었다.
그러나 장 총리서리측은 “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할 목적으로 땅을 구입했다”며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특히, 수십배의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게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시세차익이 목적이었다면, 부동산 가격이 올랐던 시점에 차익 실현을 위해 팔았어야 되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가격이 많이 오른 시점에 재단 설립을 추진한 것을 상기해달라”고 말했다. 아직 재단설립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아직 공동 소유하고 있는 교수들 사이에 자그마한 이견이 남아, 잠시 보류돼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장상 총리서리는 96년 이화여대 1백10년 역사상 기혼자로는 처음으로 총장에 올라 화제가 됐었다. 총장 재직 중에는 삼성, 현대, LG, 포스코 등 대기업들로부터 지원을 이끌어내 무상으로 건물을 기증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장상 총리서리는 ‘경영 총장’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총장 시절 장 총리서리를 가깝게 보좌했던 인사들 사이에서는 “업무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진취적이었던, 모범적인 총장이었다”는 호평도 적지 않다.
한편, 그는 총장 재직기간 동안 공관을 치장하는 데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공관은 주로 손님을 맞이하거나 공식 행사를 개최하는 공적인 일에 사용하고, 생활은 주로 사택에서 해왔다고 한다. 장 총리서리 주변 인사들은 이를 ‘검소함’의 한 예로 들었다.
그런데 이 사택과 관련, 장 총리서리는 48평형 아파트 두 채를 불법 개조해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져 또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한 채당 매매가가 2억5천만원을 호가하고 있는 아파트. 두 채를 합하면 전용면적 60여 평, 아파트 가격은 5억원대인 셈이다.
장상 총리서리가 국무총리에 임명된 직후 보인 행보에서는 ‘진취적’이거나 ‘원칙을 고수하는 태도’를 찾아보기는 힘들어 보인다. 무엇보다 ‘당당함’이 결여돼 있다는 지적이 많다. 장상 총리서리가 ‘서리’를 떼고 명실상부한 ‘총리’로 임명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혹독한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동의안’이 통과돼야 한다.
지금껏 제기된 장상 총리서리를 둘러싼 의혹들이 단순히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 탄생에 이르기 위한 ‘산고’의 고통만으로 그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