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런 기대와 관심이 부담스러운지 방송을 극도로 피하고 있는 그도 지난 7일 소속팀의 근거도시인 전남 광양에서 열린 팬사인회에서는 어쩔수 없이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인터뷰를 통해 김남일의 현재 과거 미래를 물었다.
─히딩크 감독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은 선수였는데.
▲우선 한국 선수와 유럽 선수의 기량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걸 먼저 말해두고 싶다. 다만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과 지내며 뭔가 변화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유럽선수에게 차이고 까이고 하다보니 별거 아니라는 자신감과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히딩크 감독은 훈련을 통해 그러한 자신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고 실전에서 흔들리지 않는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체득하게 해주었다.
─히딩크를 평가한다면.
▲히딩크 감독의 카리스마는 항상 운동장 안에서만 있었다. 운동장 안에선 엄격한 조련사였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물론 의사소통은 쉽지 않았다. 히딩크 감독이 제일 싫어하는 선수가 ‘스타인 체하는’ 선수였다. 그는 항상 열심히 하고 성실한 플레이를 좋아했고 나도 그럴려고 노력했다. 너무 편하고 자상한 감독이었다.
─히딩크 감독이 나가면서 개인적으로 당부한 말은 없었나.
▲특별히 한 말은 없었다. 그냥 ‘파이팅 해라’ 한마디 하셨다(웃음).
─월드컵 때는 스타였지만 이제 국내리그에서는 또 다른 상황이다. 어떤 차이를 느끼는가.
▲모든 게 조심스럽다. 팬들에게 멋있는 모습과 플레이를 보여야 하고 또 실수하면 안된다는 강박감도 있고…. 관중을 많이 의식하게 됐다. 팀의 형들이나 선생님들에게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수없이 한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오해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동을 굉장히 조심하고 있다.
▲우선 발목 부상에서 회복해 팀에 복귀하는 것이 급선무다. 월드컵 선수이기 이전에 나는 전남 드래곤즈 선수다. 대표팀에서 하던 대로 부담없이 성실한 플레이를 하고 싶다. 욕심이 있다면 ‘도움왕’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럴려면 수비형 MF(미드필더)에서 공격형 MF로 가야하는데 이것 역시 크게 무리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해외에 진출할 가능성이 많다고 보는데, 해외 이적에 관해 진행된 바가 있는가.
▲아직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게 된다면 후반 시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처음에는 독일 축구가 내 스타일에 맞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스페인 축구를 더 선호하게 되었다. 구단과 감독님(이회택)과 상의해서 신중하게 결정하겠다. 이제 에이전시도 생겨 해외진출 문제와 이적문제를 일임하게 될 것이다(이에 대해 사무국장과 구단측은 김남일이 해외진출을 적극 도울 생각이나 조건은 매우 까다롭게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자신의 매력 포인트가 뭐라고 생각하나.
▲내 자신의 외모가 그다지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얼굴도 별루고 재주도 없고…. 그냥 팬들이 나의 솔직한 모습을 좋아하는 것 아닐까. 천성적으로 뭘 숨기거나 이런 게 체질에 맞지 않는다. 마음이 가는 쪽으로 단순하게 움직인다. 머리 모양 같은 것도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하고 싶을 때 가서 자르고 염색도 했다.
─결혼할 때도 되었는데.
▲운동선수들이 안정을 찾기 위해 일찍 결혼하는 경우가 많고 내 경우도 집에서는 해외진출 전에 결혼을 시키고 싶어 하시는데, 지금 해야 할 일도 많고 아직 결혼 생각도 없다. 늦으면 5년 뒤에나 할 수도 있다. 배우자는 공식적으로는 ‘항상 착해야 되고, 부모님을 공경해야 되고’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솔직히 여자는 ‘여자의 매력’이 있는 게 좋다. 얼굴도 이쁘면 좋고(웃음). 제일 중요한 것은 나를 이해하며 내가 힘들 때 나를 안아주고 기댈 수 있는 여성이면 좋겠다.
▲내가 얼굴이 안되는데…. 얼굴 같은 건 따지지 않는다. 김하늘씨 좋다. 김하늘씨랑 데이트 시켜주면 하겠다. (기자가 정말 할 의향이 있느냐고 조용히 묻자 약간 수줍은 표정으로 ‘비공개로 하면요’라며 싫지 않은 내색이다)
─월드컵 이후로 사생활에서도 변한 게 있는지.
▲너무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다. 모든 것이 아직 얼떨떨하고 그렇다. 그러나 제발 ‘스타’라고 부르진 말아달라. 나는 축구선수일 뿐이다. 방송이나 CF 섭외가 많이 들어오긴 한다. 거절하는 게 미안하지만 그런 부분을 소화할 만한 ‘가슴’이 없다.
나는 무엇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싫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고아원 같은 데 찾아가서 돕는 일이다. 공개적인 건 싫고 남의 이목이 없을 때 조용히 찾아가겠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 어딜 나다니는 것조차 부담스럽고 두렵다. 가고 싶은 데가 있는데 가지도 못하고.
─가고 싶은 데가 어딘가. 나이트클럽을 말하는가.
▲사실 나이트는 그렇게 즐기는 편이 아니다. 그냥 친구들과 재미있게 어울릴 수 있는 자리가 좋다. 친구들과 소주도 먹고(사실 술도 잘 못먹는다. 소주 반 병에 맥주 두 병 정도밖에 못먹는다), 게임도 하고 그러는 게 좋다. 대표팀에 있을 때는 동국이 지성이랑 피시방에 가서 인터넷이나 게임을 하고 당구장도 갔는데 지금은 그러질 못한다.
─대표팀 선수들 중 가장 남자답고 멋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종국 선수에게도 칭찬이 자자하다던데.
▲멋있다기보다는 후배들에게, 후배들이 힘들 때 힘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어서 일부러 남자답게 행동하려고는 한다. 종국이는 처음 봤을 때 조금 느끼했다. 언론에도 미소를 잘 짓고 충청도 사람이라서 그런지 말도 느릿느릿하고…. 그런데 지내보니까 선배들한테 예의바르고 정말 좋은 선수라는 걸 느꼈다. 대성할 선수고 나도 참 종국이한테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중간에 김남일은 몇번이나 방송 카메라 앞에서 옷깃을 여몄다. 아직 스포트라이트가 어색한 듯하지만 김남일의 숨겨진 끼는 그의 대답에서 이미 짙게 묻어있다. 그가 조심스레 행동하는 것은 축구장에서 자신의 모습이 가장 돋보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축구장으로 와서 ‘축구선수 김남일’이 뛰는 모습을 봐달라는 말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