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0년 공항서 어머니 최춘자씨와 포옹하 고 있는 이형택. [대한매일] | ||
―우승 후 이형택과 전화 통화를 해봤나.
▲전화가 와서는 TV봤느냐고 묻더라. 장하고 기특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승할 뻔하다가 막판에 지는 바람에 애간장을 태웠는데 이번에는 고개 들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줘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남편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뒷바라지하기 힘들었을텐데.
▲형택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남편이 간경화로 세상을 떴다. 난 서울에서 식당 한다며 집을 비웠고 할머니가 손자 셋 키우며 살았다. 엄마가 집에 없다보니 운동 생활하기가 많이 어려웠을 것이다. 하루는 추운 겨울날 손이 터지도록 옷과 운동화를 빨았다며 전화를 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난 별로 해준 게 없다. 객지에서 혼자 생활하며 잘 견뎌준 게 고마울 뿐이다.
―서울에서 어떤 일을 했었나.
▲광화문 부근의 식당에서 남의 집 살이를 10년 넘게 하다가 좋은 자리가 있다고 해서 고깃집을 냈는데 2년 만에 IMF 영향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만약 형택이가 지금처럼 유명해졌다면 그 식당이 잘 됐을 지도 모른다. 2000년 US오픈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두 달 전에 식당일을 접었는데 좀 아깝기도 하다.
―운동선수로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들었다.
▲워낙 없는 집안이라고 소문이 나서 그런지 학교측에서도 무리한 걸 요구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미국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선수 부담으로 2백50만원을 해주고 나서 한참 동안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가끔 TV를 보면 인기 종목 선수들이 억대 연봉 받는다는 얘길 들으면 많이 속상했다. 형택이한테 너도 테니스하지 말고 야구나 축구를 하지 그랬냐고 말하면 자기는 일대일로 붙는 테니스가 훨씬 재미있고 반드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발이나 옷도 할인매장이나 세일하는 곳만 찾아다니며 구입할 정도로 알뜰파라는 이형택은 이번 우승으로 어머니한테 더할 나위 없는 효도 선물을 했다.〔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