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승길 SK 회장 | ||
그런 꿈을 이룬 대표적인 경영인들을 꼽으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손길승 SK그룹 회장(62)이다. 손 회장은 1965년 선경그룹의 모기업인 선경직물에 입사해 33년 만인 1998년 마침내 그룹 회장에 올랐다.
그는 오너도 아니고, 오너와 혈연관계에 있지도 않은 글자 그대로 ‘순수 샐러리맨 혈통’이었다. 손 회장의 질주는 지금 방향을 달리했다. 그는 지난 2월7일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정기주총에서 28대 회장에 선임됐다. 그의 전경련 회장 피선은 비록 시대의 요청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긴 하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전경련은 그야말로 재벌 총수들의 모임이다. 비오너 재벌총수는 멤버에도 들지 못하는 게 전경련의 속성인 것이다. 그런 단체의 최고 수장으로 샐러리맨 출신인 그가 올랐으니 의미는 남다르다.
하지만 손 회장은 몇 번에 걸쳐 회장직을 고사했다. 한때는 재계의 총수라고 불렸던 전경련 회장직이, 누구도 맡기 싫어하는 ‘왕따직’이 된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시대의 변화로 인해 재벌의 위상이 추락한 것을 웅변하는 것일지 모른다.
샐러리맨으로서 손 회장이 걸어온 길은 비교적 순탄했다. 그는 1963년 서울대 상대를 나온 뒤 ROTC 1기로 군생활을 마치고 1965년 선경직물에 입사했다. 그는 1973년 선경그룹 창업주인 최종건 전 회장이 타계한 이후 부상했다. 그는 최종건 회장에 이어 최종현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은 직후인 1974년 선경직물에서 이름을 바꾼 선경합섬의 경영기획실 반장(당시 직함)으로 승진했다.
최종현 회장이 경영체계를 잡아갈 시점에 핵심 역할을 맡게 된 것이었다. 이 공로로 그는 37세이던 1978년 경영기획실장에 발탁됐고, 41세에 1980년 인수한 유공 계열사 유공해운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또 1988년 47세의 젊은 나이에 6대 재벌로 떠오른 SK그룹의 경영기획실장을 맡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의 이 같은 승진에 대해 재계에서는 현대그룹의 이명박 회장에 버금가는 샐러리맨 신화라고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물론 그의 성공은 ‘잠시도 일을 떠나서는 숨을 쉴 수 없다’는 남다른 근면성이 뒷받침됐음은 물론이다.
최종현 회장은 생전에 손 회장을 ‘창업동지’라고 불렀다. 이는 어쩌면 최종현 회장이 그룹 경영에 본격 참여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함께 일해온 점과 무관치 않다. 그와 최종현 회장의 친밀도를 알 수 있는 에피소드는 많다.
지난 97년 7월16일 최종현 회장은 미국에서 폐암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이틀 뒤 병간호를 하던 최 회장의 부인 박계희 여사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최종현 회장이 이렇듯 큰 수술과 부인의 임종이라는 이중의 아픔을 겪는 동안 손 회장은 내내 그의 병실을 지켰다. 두 달 뒤 최 회장의 귀국 비행기에서 박계희 여사 대신 자리를 지킨 것도 손 회장이었다.
▲ 지난 10일 인수위 집무실에서 손길승 회장과 노무현 당선 자가 만났다. 주간사진공동취재단 | ||
여기서 왜 하필 손 회장이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최종현 회장의 친구인 홍사중씨가 쓴 최 회장 회고록 <나는 한없이 살았다>에는 이런 궁금증을 풀 만한 대목이 있다.
지난 95년 최종현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과 관련해 검찰의 조사를 받을 때 담당검사에게 손길승 당시 SK 기획실장의 역할에 대해 밝혔다. 검사가 정치헌금 관계를 묻자 최 회장이 “모든 것은 손 실장이 관장하고 있으니까 궁금하다면 그 사람에게 물으시오”라고 답했다.
“거액의 정치 헌금을 일개 기획실장이 도맡아 한다니 말이나 되는 겁니까”(검사), “그 사람은 단순히 내가 부려먹는 사원이 아니라 나의 비즈니스 파트너, 동업자입니다”(최종현 회장). 최 회장이 ‘손 실장’을 ‘머슴’이 아니라 ‘동업자’로 보고 있다는 이 얘기는 두고두고 재계의 화제가 됐다.
최 회장은 후사도 손 회장에게 부탁했다. 지난 73년 SK그룹의 창업자인 최종건 회장(최종현 회장의 큰형)이 갑작스레 타계하자 당시 44세이던 최종현 회장이 경영을 승계했다. 최종건 회장의 2세들이 너무 어렸기 때문.
이후 최종현 회장은 유공(현 SK주식회사)과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을 인수해 SK그룹을 창립 50년 만에 부동의 국내 3대 재벌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하지만 97년 최종현 회장이 폐암수술을 받았을 때 당시 최태원 부사장의 나이는 38세. 이어 98년 들어 최종현 회장은 자신의 건강이 악화되자 손 회장에게 당시 SK 부사장이던 장남(최태원)을 재계 원로나 각계 인사를 찾아다니며 인사를 시키도록 부탁했다. 손 회장에게 2세에 대한 후견을 부탁한 셈이다.
98년 4월26일 최종현 회장이 별세했다. 그후 재계에선 SK그룹의 향방을 놓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물론 대다수 재계 관계자들은 차기 회장으로 최태원씨를 꼽았다. 그러나 이 예상은 빗나갔다. 최 회장 작고 후 1주일 만에 SK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룹측은 기자회견에서 손길승 SK그룹 구조조정본부장(부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최태원 부사장은 SK(주) 회장으로 추대됐음을 발표했다.
SK쪽에선 오너 가족 모임에서 “가족을 대표하는 경영인으로 최태원 회장을 밀어주기로 했다”는 입장 발표도 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최태원 회장은 전문경영인 자격으로 (주)SK 회장 자리에 오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재계에선 손길승 회장이 최태원 회장의 후견인 역할을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손 회장이 ‘운명의 남자’ 최종현을 만난 것은 지난 65년. 당시 서울대 상대 동기인 이순석 전 SK글로벌 사장의 권유로 수원지방의 직물공장 수준이던 선경직물에 입사원서를 냈던 것.
그때 손 회장은 면접관으로 나온 고 최종현 회장과의 면담 뒤 최 회장의 경영철학에 ‘홀딱 반해’ 입사하게 된 뒤 평생 최 회장을 인생의 스승으로 삼았다. 입사 뒤 그는 주로 경리와 자금부서에서 일했다.
▲ 위 사진은 81년 선경화학 천안공장 증설공사 기공식. 왼 쪽이 최종현 회장, 오른쪽이 손길승 회장.정주영 회장 장례식에 간 두 사람. (아래사진) | ||
이렇게 오너의 신임을 산 그는 지난 74년 경영기획실로 옮겼다. 이후 그는 ‘직업이 경영기획실장’이라는 얘기를 들을 만큼 경영기획실에서 붙박이로 일했다. 78년부터 98년까지 SK그룹의 경영기획실장을 지낸 것.
그 사이 그는 최종현 회장과 호흡을 맞추면서 삼성을 제치고 유공을 인수했고, 국내의 내로라하는 재벌들을 제치고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지난 70년대만 해도 국내 재계에 미미한 존재였던 SK가 국내 재벌 순위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역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지난해에도 SK는 삼성을 제치고 KT 지분을 인수해 1대주주로 등장하는 깜짝쇼를 연출하기도 해 ‘역시 공기업 인수 노하우는 SK가 최고’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손 회장은 SK그룹 총수가 됐을 때 2년 정도만 하겠다는 말을 했었다. 지난 2000년 말엔 전경련 후임회장 선임을 놓고 재계가 진통을 겪자 그는 전경련 회장을 시키면 사표를 내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손 회장은 여전히 SK그룹 회장 타이틀을 달고 있고, 전경련 총수까지 됐다. 그가 이번에 전경련 회장직을 받아들인 데는 재계에서 가장 발언권이 강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부탁하자 거절하기 어려웠다는 설명도 흘러나왔다.
원래 이번 전경련 회장의 가장 강력한 후보는 이건희 회장이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뒤 재벌개혁을 강조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재계의 기류가 급변한 것이다. 때문에 재벌 회장이 된 뒤 재벌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타의에 의한 재벌개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손 회장이 어떤 행보를 취할지 주목받고 있다.
오너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다 해도 그가 오너가 아님은 분명하다. 때문에 오너 회장보다 그는 자유롭다. 재벌 회장은 회장직을 그만둔다고 해도 재산을 다 처분하지 않는 이상 오너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다. 하지만 고용 사장은 다르다. 그만두면 그뿐이다.
때문에 전경련에서도 재벌들의 아쉬운 목소리는 대개 전문경영인 출신인 상근 부회장이 맡기 마련이다.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에 대한 공격도 대부분 전문경영인들이 맡았다. 아직까지 재벌 오너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정치권을 공격하는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손 회장은 손병두 부회장과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부당한 정치자금 요구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손 회장이 운을 떼고, 손 부회장이 전경련의 목소리로 공론화했다. 전경련의 이익과 부합되는 정치세력에만 정치자금을 주겠다고 선언한 것. 당시 손 회장의 이 발언에 대해 비오너 회장이기에 낼 수 있는 목소리란 평가가 많았다.
재계는 손 회장이 전경련 회장 취임 뒤 어떤 목소리를 낼지 주목하고 있다. 그는 최 회장 별세 뒤 한 인터뷰에서 “참모는 사심이 없어야 하고 개인의 영달이 없어야 한다. 참모는 꽃이 되어서는 안된다. 기업의 꽃은 사장과 회장이다. 참모는 꽃에 물과 거름을 주고 햇빛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20년이 넘는 참모(기획실장) 생활을 통해 그가 얻은 결론인지도 모른다. 그는 “내가 떠나야 할 때를 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SK그룹 회장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전경련 회장이라는, 샐러리맨으로서는 더이상 오를 수 없는 자리까지 도달했다.
샐러리맨 출신인 손길승 회장이 이끄는 한국 재계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질지 주목된다. 그에게 닥칠 시련들이 벌써부터 하나둘씩 고개를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