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란드전에서 한국팀의 대회 첫골을 꽂아넣은 뒤 환호하고 있는 황선홍과 후배선수들. 특별취재단 | ||
황선홍(34·가시와 레이솔)은 한국팀이 축구역사를 새로 쓴 현실을 쉽게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16강도 기적 같은 일로 받아들였는데 우승후보로 꼽혔던 유럽의 강호들을 연파하게 되자 감격에 겨운 눈물이 눈과 마음 속으로부터 분수처럼 솟아올랐다고 고백한다.
이번 월드컵대회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하는 황선홍은 지난 14일 포르투갈전서부터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되새김질하며 뛰었다. 승리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포르투갈전의 경기 결과에 따라 은퇴무대가 더 연기될 수도, 아니면 거기서 끝이 날 수도 있었던 것.
다행히 그는 16강 진출이라는 역사적인 과업을 이루게 됐고, 다시 이탈리아를 상대로 A매치 100번째 게임을 치르고도 은퇴경기가 계속 이어지는 행운까지 덤으로 얻었다. 황선홍은 <일요신문>과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자신의 A매치 마지막 한골을 멋지게 남겨보고 싶다는 솔직한 바람도 털어놓았다.
― 지금까지 이룬 성적에 대한 소감을 다시 듣고 싶다.
▲나뿐 아니라 선수들 모두 마찬가지다. 제한된 공간에만 있다보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탈리아전 때는 경기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비디오로 경기를 다시 봤다. 기현이가 동점골을 넣고 정환이가 골든골을 성공시키는 장면을 봤을 때 소름이 쫙 끼쳤다. 머리가 쭈뼛쭈뼛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내가 대한민국 선수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 경기장보다 거리에서 펼치는 응원이 세계적인 뉴스거리로 대두될 만큼 엄청나다.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본 국민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월드컵 전만 해도 응원은 제한된 ‘붉은 악마’ 회원들만 할거라고 생각했지 지금처럼 국민들 전체가 하나가 돼서 경기를 응원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우리나라의 저력을 확인시켜준 계기가 된 것 같다.
정치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각기 다른 불만들이 모두 축구에 대한 기대로 몰린 것 같다. 상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현실을 축구를 통해 대리만족하는 것도 있을 것 같다. 나도 한국 사람이지만 우리나라 국민들 정말 대단한 민족이다.
― 지금까지 치른 경기중 다시 리플레이를 한다면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게 될까.
▲지금은 경기에 나서도 안정된 마음으로 출전하는데 첫 경기인 폴란드전을 앞두고는 엄청난 긴장과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기회라,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앞으로도 마음의 짐처럼 개운치 않은 기분이 따라다닐 것이라는 걱정이 앞섰다. 경기 전날 밤엔 잠이 안올 정도로 긴장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폴란드전에서 완승을 거둔 후부터 16강 진출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6월10일 미국과의 경기에선 무승부라는 결과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쉽게 갈 수 있는 16강의 길이 험난하게 꼬이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16강 진출을 확정지었을 때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다. 다 이뤘구나, 목표 달성을 했구나. 이젠 대표팀을 떠나도, 축구를 그만둬도 미련이 없을 거라는 생각들이 순간적으로 스쳐갔다.
▲ 벤치를 지킨 포르투갈전에서 한국팀이 16강 진출을 결정짓자 결승 골의 주인공 박지성을 안은 채 감격해 하는 황선홍(왼쪽), 그는 고 참으로서 히딩크 감독의 지도방식에 의문을 갖기도 했지만 5월 평 가전 이후로는 감독에게 완전한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 ||
▲후반 25분경에 투입됐는데 이후의 경기 내용이 썩 좋지 않았다.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태극기 달고 뛰는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하니까 냉정함을 잃게 됐다. 수비도 공격도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후배들에게 흔들리지 말고 정신차리라고 얘기를 하면서도 정작 내가 흔들리고 말았다.
그러다 연장전에 접어들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대표팀 생활을 마감하면서 한점 후회없는 경기가 되려면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골에 대한 절실함, 간절함이 북받쳤다. 그런 가운데 터진 골든골이었다.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골은 행운과 정성과 마음이 일치 됐을 때 터지는 것 같다. 국민들과 선수들, 그리고 하늘이 감동해서 골을 준 것 같다.
― 이번 월드컵 대표팀 생활중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면.
▲지난 북중미 골드컵 때다. 사실 선수들은 별다른 동요가 없었지만 여론의 질타가 너무 심해서 내심 불안했던 게 사실이다. 당시 나도 월드컵을 얼마 남기지 않고 강도 높은 파워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데 대해 이해를 못했다. 그러나 감독은 6월 월드컵만 바라보고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계획대로 밀어붙였다. 만약 감독이 흔들렸다면 우리도 흔들렸을 것이다.
― 황선홍 선수를 포함해서 고참 선수들은 후배들과 달리 외국인 감독에 대해 약간은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쉽게 정을 주지 못한다고 하던데 맞는 얘기인가.
▲지난 5월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을 치르면서 그동안 히딩크 감독에 대해 갖고 있던 다소의 의구심을 말끔히 털어낼 수 있었다. 정말 그를 믿고 따를 수 있게 됐다. 우리팀이 발전해 간다는 것, 가능성이 보인다는 것, 뭔가를 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감독을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 프로다운 치밀함, 계산적인 면모들이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고 명장의 멋스러움으로 비쳐졌다.
― 이번 대표팀의 특징 중 하나가 역대 대표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팀워크라고 들었다.
▲사실이다. 제주도에서 마지막 과외 수업을 받으며 스코틀랜드부터 프랑스까지 3차례의 평가전을 치르는 동안 모든 스텝들이 하나로 뭉쳐갔다. 원래 경기전 라커룸에선 선수들만이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그라운드로 나갔는데 이번엔 코칭스태프는 물론 장비 담당, 의료진들까지 전부 어깨동무를 하며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했다. 그런 과정들이 무척 감격스러웠고 가슴을 적실만큼 뿌듯하다. 이 정도 단합이라면 월드컵 첫승이나 16강 진출은 가능하다고 믿었다.
― 고참이니까 다른 선수들에 대해서도 신경을 쓸 텐데, 그라운드에서 뛰지 않는 선수들에 대한 배려는.
▲나도 주전으로 뛰지 못할 때가 있었기 때문에 그 심정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그러나 김병지 최성룡 이민성 윤정환 등 서른 즈음의 선수들은 절대 내색하지 않는다.
팀이 잘 되려면 불화가 없어야 한다. 그들은 동료들이 뛰다가 벤치로 돌아오면 먼저 수건으로 얼굴부터 닦아주고 물을 떠다주는 등 이전에 볼 수 없는 따뜻한 풍경을 연출하기까지 해 자신감을 더해주고 있다. 골이 터졌을 땐 눈물을 흘릴 만큼 같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모습들이다. 너무나 고마운 후배들이다.
▲ 최고참으로서 보인 황선홍의 투혼은 대표팀의 선전에 큰 디딤돌이 됐다. 미국전에선 부상에 도 아랑곳 않고 경기를 이끌었다. | ||
▲유럽 무대에 진출하고서도 부상으로 제대로 뛰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던 일이다. 그래도 난 행복한 사람이다. 이전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던 ‘비운의 스트라이커’로 축구인생을 그만두는 게 아니지 않은가. 나처럼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는 선수가 또 어디 있겠나.
(황선홍은 진심으로 유럽 무대에 대한 진한 회한을 갖고 있다. 안정환, 박지성 등을 보면서 자신이 5년만 젊었더라면 하는 부러움이 들 정도라고 한다. 후배들과 사담 중에는 “너희들은 이제 외국 나가서 돈 버는 일만 남았다”는 농담도 한다고 한다.)
― 얼마전 황 선수 부인 정지원씨가 “내 남편이지만 때론 존경스러울 때가 있다.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심한 부상과 수술을 받고도 포기하지 않고 피나는 재활훈련 끝에 다시 그라운드에 나서곤 했다”고 하더라. 그토록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황선홍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 중 하나가 독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난 결코 그렇지가 않다. 나한테는 분명히 잡초 근성이 있다. 어려서부터 평탄한 삶을 살지 못했다. 아주 어린시절 어머니가 집을 나가시고 택시운전하는 아버지 슬하에서 자라면서 세상에 대해 일찍 눈을 떴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도 아버지 앞에서 단 한번도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 다른 애들처럼 어머니에게 투정도 부리고 사랑도 받으며 어머니가 지어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학교에 다니고 싶었다. 그런 인생의 쓰라린 경험들이 축구하는데 엄청난 오기와 근성으로 날 버티게 한 근간이 됐다.
― 94년 미국월드컵 때 대 볼리비아전에서 결정적인 실축 뒤에 ‘똥볼’이란 오명을 뒤집어 썼다. 회상할 수 있겠나.
▲당시엔 힘들었지만 하도 많이 그런 얘기를 들어 이젠 무뎌졌다. 나도 인간이다. 부상에다가 욕까지 먹어가며 꼭 이렇게 축구를 계속해야 하는지 회의도 들었다. 그러나 팬클럽 ‘황새’와 내 가족들의 변함없는 격려와 사랑이 이 순간까지 버텨내게 했다. 사실 남들의 평판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는 98년 부상으로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오로지 2002년 월드컵만 보고 살았다고 한다. 십자인대가 2번이나 끊어지고 무릎수술을 4차례나 받으면서도 기다림의 끈을 놓지 않았다.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90분을 뛸 만한 체력을 만들 수 있을지, 그리고 월드컵 엔트리 최종 명단에 들어갈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는 초조감이 ‘똥볼’이란 오명보다 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황선홍은 지난 이탈리아전에서 A매치 100경기 출장 기록(센츄리클럽)을 달성했다. 이는 FIFA가 공인하는 공식기록이다. 선수 개인의 100경기 출장, 50골 기록은 개인적으로도 영광이지만 축구사적으로 대단한 일이다.
그동안 여러 대회에서 많은 골을 넣긴 했지만 이번 월드컵 때처럼 골에 대한 갈증을 후련하고도 만족스럽게 푼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 기록에 대단히 만족해 하면서도 황선홍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던 히딩크처럼, 조심스럽게 다음 목표를 내비친다.
“월드컵에서 1골만 더 넣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딱 한 골만 더 넣는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영웅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마지막까지 내 임무에 충실하고 싶어서다.”
대표팀에서 물러나기 전 골을 성공시키는 기쁨과 환희를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고 말하는 황선홍한테서 너무나 인간적인 냄새가 풍겨났다. 후배들을 위해 개인적인 욕심을 감추고 있지만 ‘마지막’이란 단어 앞에선 ‘본심’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참 괜찮은 남자의 마지막 소원은 ‘한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