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게 월드컵 최초 16강 진출이라는 기쁨을 안겨다 준 푸른 눈의 이방인 히딩크 감독. 사진 은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뒤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모습. | ||
박지성이 포르투갈의 골 네트를 가르며 침묵을 깨는 순간 벅차 오르는 가슴을 느끼지 않은 한국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상 첫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포르투갈전이 끝나고도 거리의 붉은 물결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히딩크”를 크게 외쳐댔다. 파란 눈의 이방인 히딩크가 온 국민을 하나로 묶어준 밤이었다.
히딩크가 한국땅을 밟은 지도 1년 반이 지났다. 지난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우리나라를 5 대 0으로 대파했던 당시 네덜란드팀의 감독 히딩크. 대포알 같은 슈팅으로 우리 가슴에 대못을 다섯 번이나 박았던 그가 이젠 한국팀을 이끌고 유럽의 심장을 쏘았다. 지금처럼 히딩크가 전국민적인 영웅이 될 거라 예견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됐을까.
지난 2000년 말 한국대표팀의 올림픽 본선 1라운드 탈락과 아시안컵 결승 진출 불발은 축구협회로 하여금 외국인 감독 영입이란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축구협회가 영입 1순위로 점찍은 상대는 98프랑스월드컵의 우승 감독 에메 자케 감독. 그러나 단칼에 거절당했다.
별수 없이 협회는 2순위였던 히딩크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그 역시 얼른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때 축구협회 이용수 기술위원장과 가삼현 국제부장이 히딩크를 설득했다. “한국은 월드컵을 개최하는 국가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당신 역시 제3국에서 모험을 해볼 기회가 아니겠는가.”
당시 히딩크는 이들에게 “한국선수들이 훈련중 나무에 올라가라고 하면 올라가겠는가”라고 물었다. 이 위원장과 가 부장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감독의 지시에 잘 따를 것”이라 답했고 이후 계약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훗날 히딩크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국 선수들이 너무 착하고 순수해서 놀랐으며 내 지시를 잘 따르면서 기량이 늘어가는 그들을 보면 내 가슴이 뛸 정도다.”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 감독을 맡았지만 히딩크는 부임 초기의 졸전 탓에 언론의 비난을 받았다. 축구협회장을 지낸 한 원로 축구인은 히딩크를 이렇게 비판한 적이 있다. “그는 유럽에서 출중한 개인기량을 갖춘 선수들만 지도해 본 사람이다. 일자수비니 미드필더 압박이니 하는 말들이 듣기 좋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에겐 그들에게 꼭 맞는 옷을 입히는 게 중요하다. 히딩크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
▲ 포르투갈전에서 골을 넣은 후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오는 박지성 선수(위) 특별취재단. 16강 진출이 확정된 후 히 딩크 감독과 얼싸안은 선수들. | ||
최전방 공격수들은 미드필더로부터 패스를 받아도 상대수비에 밀려 뒤돌아 서지도 못했다. 패스는 부정확했고 미드필드진은 상대의 날카로운 패스 한방에 무너지기 일쑤였다. 대인방어에 급급한 수비수들은 상대 공격진에 무너지며 늘 세계 축구 명장면의 조연 역할을 맡아야했다.
히딩크는 한국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98년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한국팀을 회상한 바 있다. “한국팀의 체력 스피드 정신력은 여느 팀 못지 않았다. 초반 한국팀의 강력한 프레싱과 빠른 움직임에 한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부분 전술에 문제가 있었다. 그 허점을 통해 우리는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히딩크가 지적한 허점은 바로 유기적인 팀플레이와 공간활용이었다. 과거 10년간 한국의 축구전술을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대인방어’만큼 어울리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각자 마크맨을 정해 그 사람만 90분 동안 죽어라 쫓아다니는 것. 투지는 자연스레 세계 최고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국 체력이 떨어진 ‘나’를 제치고 지나가는 ‘그’를 경기 중반부터 자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투지는 더욱 활활 타오르지만 다리는 천근만근이라 그냥 먼발치에서 무서운 눈매로 째려보기만 할 뿐이다.
지난해 초 잦은 평가전에서 수비조직의 취약점을 보인 대표팀에 대해 기자들은 히딩크가 추구하는 포메이션이 정말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캐물었다. 그때마다 히딩크는 언짢은 반응을 보였다. 현대축구에서 일정하게 정해진 포메이션이란 없다는 것.
지난 98프랑스월드컵에서 처녀출전의 크로아티아를 일약 3위에 올려놓은 미로슬라프 블라제비치 감독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현대축구에 4-4-2니 3-5-2니 하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수 간격을 30m로 유지하되 필드플레이어 전원이 톱니바퀴 돌아가듯 자유자재로 포지션을 소화해내는 게 중요하다.”
한국의 수비라인은 대인방어만 보면 정말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홍명보가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인 건 사실이지만 유럽의 화려한 공격수를 일대일 마크하기엔 역부족이다. 좌우 수비수인 김태영과 이민성, 최진철도 상대 공격수를 놓칠 때면 보는 사람 가슴이 철렁할 정도의 태클을 선보이기도 했다. 상대공격에 비해 수적 우위에 있으면서 현란한 발재간에 맥없이 당하는 모습도 잦았다.
▲ 선수들이 골을 넣을 때마다 히딩크 감독 특유의 ‘어퍼컷’을 볼 수 있다. | ||
히딩크는 개인방어에 약점을 드러내는 한국의 수비라인에게 지역방어와 일자수비를 교육시켰다. 이들의 투지에도 불구하고 드러나는 공간의 방어 대해선 미드필드의 ‘젊은 피’ 김남일과 송종국 이영표 등이 내려와 밀집수비를 만들어 보완케 했다.
결국 노장 수비수들은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의 맥을 끊고 젊은 미드필더들은 체력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 정도면 우리 선수들에게 제법 맞는 옷을 입힌 게 아닐까.
최근 많은 사람들이 히딩크의 용병술을 치켜세운다. 일부 젊은 선수들은 히딩크가 아니었으면 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못했을 거란 지적이다. 그러나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영표나 박지성 김남일 이천수 최태욱 설기현 등은 한국축구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선수들이다. 대부분 히딩크 부임 이전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올림픽대표팀의 간판 선수들로, 어차피 태극마크를 달기로 예약된 선수들이었다.
수비진도 홍명보와 김태영이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격진에선 황선홍과 최용수가 그라운드를 휘젓고 있다. 새얼굴이라면 노장 최진철과 올라운드 플레이어 송종국, 왼쪽 날개 이을용 정도다. 차두리 역시 주목할 만하지만 히딩크 감독이 그를 스타팅 멤버로 쓴 적은 거의 없다.
2002한일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네덜란드는 탈락했다. 멤버는 히딩크가 이끌 당시와 변한 게 거의 없다. 새로운 선수로의 대체가 대수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달라진 건 무엇인가. 바로 기존 선수들에 대한 충분한 활용이다. 히딩크가 언론으로부터 가장 많이 비난받은 점이 바로 ‘잦은 실험’이다. 조기에 베스트11을 정해 조직력을 극대화해야 하지 않느냐는 요구에 대해 히딩크는 콧방귀로 일관했다. 이런 저런 의구심에도 히딩크는 일일이 변명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히딩크호는 월드컵 16강 대업을 일궈냈다. 그리고 주변의 ‘의구심’은 ‘뚝심이 얻어낸 성과’란 찬사로 바뀌었다.
훈련이 계속되는 동안 송종국 박지성 최태욱 이천수 이영표 등은 주 포지션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왔다갔다했다. 그리고 결과는 전국민의 짜릿한 환호성이었다. 결국 이들은 어느 상황에서 어느 자리에 투입되든 자기 몫을 할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던 것이다.
이는 히딩크의 노하우가 축적된 체력훈련과 선수간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켜 이루어낸 성과다. 새로운 선수들이 아니라 기존의 선수들을 데리고, 예전에 어느 감독도 하지 못한 일을 히딩크가 해낸 것이다.
폴란드전에서 황선홍이 결승골을 넣었을 때나 박지성이 16강을 확정짓는 골로 포르투갈 골네트를 갈랐을 때 이들은 모두 달려와 히딩크를 끌어안았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붉은 전사들을 끌어안은 히딩크의 모습에서 더이상 ‘이방인’의 얼굴을 찾아볼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