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당신 최고의 날이 될 거야. 자기야, 운동장에서 죽고 나올테니까 지켜봐줘.’
경기가 끝나자마자 유상철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고마운 마음을 전했고 최씨도 자신을 너무 기쁘게 해줘서 더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폴란드전 쐐기골의 기쁨을 계속 느끼게 해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욕심 많은 아내’의 진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역사적인 ‘부산대첩’ 다음날 아침 선수단 숙소를 찾은 최씨는 로비에서 남편을 보자마자 진한 포옹을 나눴다. 유상철은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에 대한 애정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평소 선배가 옆에 있어도 가벼운 키스나 스킨십을 하는 터라 그날은 전날 받은 감동까지 얹혀져 그림 같은 상봉 장면이 연출됐다.
▲ 4일 폴란드전에서 ‘쐐기골’을 넣고 기뻐하는 유상철. 특별취재단 | ||
98년 K리그에서 득점왕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지만 일본 진출 후 5개월 동안은 무득점에 그쳤으니 마음이 얼마나 조급했을까. 99년 5월8일 어버이날 일본 진출 후 첫 골을 터트린 후론 유상철의 일본 생활이 조금씩 변화를 맞으며 안정을 찾았다.
유상철은 어디를 가든 항상 작은 노트를 휴대한다. 시간 있을 때마다 자신의 느낌을 적는데 일본 진출 당시 적은 노트에는 ‘힘들다. 그러나 이게 나한테는 약이 될 수 있다. 인정받는 길은 실력밖에 없다.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해야되겠지’라고 쓰여 있다. 그만큼 가슴앓이가 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1년6개월여간의 생활 중 가장 힘든 시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북중미골드컵대회 기간이었을 것이다. 히딩크 감독이 파워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시행하면서 컵대회에 참가했기 때문에 결과도 좋지 않았지만 선수들 또한 의욕상실, 체력상실로 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당시 유상철은 아내에게 처음으로 힘들다며 하소연했다고 한다.
“남편이 축구하면서 나한테 힘들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그런 말을 꺼냈다. 밥도 먹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걱정한 기억이 난다.”
유상철은 아내에게 한없이 자상한 남편이요, 아이들에게는 친구 같은 아빠다. 외국 전지훈련 나가면 쇼핑할 때 아이들 장난감, 옷 등을 구입하는 걸로 유명하다. 집에 있을 때는 큰딸 다빈이의 머리를 직접 빗겨주고 단정하게 묶어주는 것도 유상철의 몫이다. 그라운드에선 더없이 거칠고 난폭한 플레이도 불사하지만 가정에서의 유상철은 일반 가장의 모습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킨 ‘잘난’ 남편 그 자체다.
월드컵 이후 유럽 진출을 모색할 계획인 유상철에게는 이번 대회의 성적이 더없이 중요하다. 결과 여부에 따라 유럽으로 향하는 문이 ‘정문’이 될지 ‘후문’이 될지 판가름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