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폴란드전, 첫골을 넣은 황선홍이 코칭 스태프와 기쁨을 나누기 위해 벤치를 향해 달려 가고 있다. 왼쪽(22번)은 송종국. 특별취재단 | ||
6시30분 경기장으로 출발하는 시간이었다. 황선홍은 사랑하는 아내 정지원씨에게 경기전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다.
“지원아, 내가 만약 첫 골을 넣는다면 반드시 너에게 보내는 키스를 골 세리머니로 날릴 거야.” 정씨는 제발 그런 장면이 연출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황선홍은 아끼는 후배로부터 받은 기에 힘입었는지 폴란드전에서 첫골을 터트린 것이다. 아내와의 약속대로 그는 골 세레머니를 키스로 화답했고 한국팀 벤치로 뛰어가 코칭스태프, 선수들과 기쁨을 나눴다.
현장에서 남편의 가슴 벅찬 환희를 함께 느낀 아내 정씨는 “온 국민을 단 한순간에 이렇게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쁘기도 했지만 안도의 한숨도 나왔다. 지금까지 그날 하루를 위해 숱한 고생을 참고 이겨냈는데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어서 정말 고마웠다”며 같이 관전하던 친정 어머니와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말한다. 그 목소리에 그 때의 흥분과 감동이 그대로 담겨있다.
▲ 10일 미국전서 눈두덩이를 다친 황선홍. | ||
“은퇴 선언이 그렇게 큰 파장을 불러오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기자회견장에 나갔다가 너무 많은 취재진들이 모여 있는 걸 보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순간 걱정이 앞섰다. 내 행동이 대표팀의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닌지…, 정말 고민 많았다. 다행히 결과가 좋아서 감사할 따름이다.”
아내 정씨도 남편의 은퇴선언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은퇴 발표를 하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대답은 했는데 막상 기사나오는 걸 보니까 너무 섭섭하고 아쉬워서 눈물이 났다. 하지만 이제 그 미련을 접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그의 마지막 월드컵에서 보여준 투혼은 한국의 축구팬들에게 잊혀질 수 없을 것이다. 첫날 폴란드전에서 허리아래 부상으로 온 국민이 걱정을 했으나 황선홍은 10일 미국과의 경기에 건재한 몸으로 다시 나와 그라운드를 누볐다. 상대 수비와 헤딩으로 볼을 다투다가 오른쪽 눈두덩이가 찢어져 피가 흘렀으나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계속 뛰면서 전반 40분께 페널티킥까지 얻어냈다.
88년 국제경기에 참전했던 황선홍에게 14일 포르투갈과의 경기는 국제경기 통산 100번째 경기다. 한국에서는 차범근 최순호 홍명보에 이어 네번째로 센추리클럽에 가입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