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3월24일 이익치 전 회장이 고정주영 회장의 빈소를 찾아 정몽준 후보(맨 오른쪽)등 형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헌화하고 있다. | ||
그런 그가 2년 만에 다시 뉴스의 한복판에 섰다. 이번에는 주가예측도, 바이코리아 붐도 아니다. 그가 상전처럼 모시던 현대그룹 핵심을 향해 직격탄을 날린 것이 배경이다. 물론 그는 아들의 병역비리 문제로 검찰의 수배를 받아오면서 지금까지 미국에서 머물렀다.
사실상 잠적했던 이 전 회장은 지난 10월27일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에 현대중공업 자금이 동원된 것은 현대중공업 사주인 정몽준 의원의 지시없이는 안되는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정치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의 이 폭로는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욱일승천하던 정몽준 후보진영을 당황케 했고, 향후 정 후보의 행보에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힌 그의 폭로는 연말 대선정국의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는 지난 2001년 검찰 조사에선 자신이 현대전자의 주가를 조작하는 데 앞장섰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그는 “정주영 명예회장이 부탁해 내가 주가조작을 했다고 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는 “모든 책임을 나에게 넘기는데 정 의원은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며 정몽준 후보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고 나섰다. 결국 이 전 회장의 발언으로 기억속에서 사라졌던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은 다시 현재진행형 사건이 됐다.
이 전 회장은 지난 14일 귀국한 뒤 검찰에 출두하면서 “정몽준 후보와 관련해 끝까지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말하는 등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은 물론 과거 울산 동구에서 치러진 정몽준 의원의 지역구 선거에서 현대중공업이 개입한 혐의까지 폭로하겠다고 나섰다.
이 전 회장이 현대전자 주가조작의 진실보다는 정몽준 의원을 겨낭하고 있음을 명백히 한 것이다.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의 진범은 정몽준’이라는 이 전 회장의 발언은 아직 실체적 진실로 받아들이기엔 무리다.
▲ 지난 99년 9월9일 이익치 전 회장이 현대전자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되고 있다. 입을 다물고 있는 당시의 표정이 현재의 상황과 대조적이다. | ||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은 현대증권이 98년 4~11월 현대중공업, 현대상선 등 현대 계열사 자금 2천1백여억원을 동원해 현대전자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사건으로 검찰은 당시 이 사건을 이 전 회장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지었던 까닭이다.
어쨌든 정 의원도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을 국정조사로 다루자”고 나서고 있고, 이 전 회장도 제발로 귀국해 “조사를 받겠다”고 한 만큼 시비는 사법당국에서 가릴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대선 전까지 계속 뜨거울 전망이다. 정 의원이 유력 후보로 나서고 있고, 이 전 회장이 작심한 듯 그를 겨냥한 말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 의원쪽의 반응은 차갑고 싸늘하다. 정 의원은 대변인이 전한 평을 통해 “이 전 회장은 현대중공업에서도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해 쫓겨난 사람”이라고 대꾸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일부 현대그룹 출신 임원들은 이 전 회장의 정몽준 책임론 주장에 대해 “이 전 회장은 정 명예회장의 비서 출신으로 업무보다는 로비에 주력해 출세한 인물”로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골프 이태 만에 싱글
이 전 회장에게 정주영은 롤 모델이었다. 그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모든 것을 닮고 싶어했다. 적어도 2000년 8월30일 그가 현대증권 회장직을 스스로 사퇴하기 전까지 그는 정 명예회장의 찬양자였다. 왕회장이 노란 빛깔 참조기를 좋아하자 집에서도 일부러 사다 먹을 정도였다.
그 스스로 “내 스승은 정 명예회장이다. 내 생애에 정 명예회장을 만난 것을 신께 감사드린다”는 말까지 했다.
이처럼 정 명예회장 따라하기에서 보여지는 이 전 회장의 개인적인 성향은 골프와 관련된 일화에서도 그 특유의 ‘집중력’을 보여준다. 골프를 시작하면서 왼팔 힘을 기르기 위해 밥도 왼팔로 먹을 정도로 매진했다는 것. 그는 소원대로 골프를 시작한 지 이태 만에 싱글 골퍼가 됐다고 한다.
비서 출신 가신 경영인으로 알려졌던 그는 96년 현대증권 사장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경영인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98년부터 주가가 뛰고 바이코리아 붐으로 그해 10조원대의 돈을 현대증권으로 끌어들이는 수완을 보인 것.
그는 바이코리아 붐 절정기이던 99년 상반기에 “바이코리아 펀드 연내 60조원 판매, 주가 연내 1600포인트 돌파, 현대증권 주식 1백만원 간다” 등의 말을 자신있게 했다.
증권가에선 처음엔 그의 말에 코웃음을 쳤지만, 주식시장이 되살아나고 돈이 몰리자 그의 말에 반신반의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증권사 경영자로선 예가 드물게 아파트 모델하우스 등을 찾아다니며 가정주부 등 일반인 대상으로 “주식에 투자하라”는 대중강연을 하고 다녔다. ‘엄청난 달변’의 그가 한 번 강연하고 지나가면 그 지역 현대증권엔 수백억원대의 돈이 새로 들어왔다는 게 당시 증권가의 정설이었다.
당시 바이코리아 강연에서도 그의 ‘왕회장 칭송’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는 강연회에서 “여러분은 부잣집 근처에서 서성거려야 한다. 왕회장 근처에서만 서성거려도 돈 번다”며 ‘왕회장=현대증권’이라는 인식을 투자자에게 심으며 투자를 권유했다.
“왕회장=현대증권” 설파
이 전 회장의 당시 발언 중 주목할 만한 것은 그 스스로 대중에게 밝힌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의 전모.
그는 당시 한 강연회에서 “왜 정부는 현대만 미워하나. 현대상선은 매출의 99%를, 현대중공업은 70%를 외국에서 벌어오고 있다. 그런데 현대상선과 현대중공업이 일은 안하고 주가조작을 했겠나”고 주장했다.
이는 지금 그의 주장과는 상당부분 다르다. 적어도 왕회장이 살아있고 그가 현대그룹 일선 경영자였을 때 그는 적극적으로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현대상선과 현대중공업의 혐의를 부인했던 것이다.
▲ 지난 99년 4월 이익치 전 회장이 주부를 대상으 로 증권 투자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당시 그는 ‘바이코리아’ 붐을 일으켜 스타 반열에 올랐다. | ||
애초부터 이 전 회장이 받들어 모시고, 따라하기에 나선 인물은 정몽준 의원이 아니라 정주영 명예회장이었던 것. 아들인 정몽준 의원은 이 전 회장의 ‘주군’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주군의 아들과 총명한 가신이었던 그는 악연으로 시작했다고 보여진다.
정 의원이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임명되고, 이 전 회장이 현대엔진공업 전무로 승진하면서 공식적으로 대면했던 두 사람은 처음부터 어긋났다.
당시 이 전 회장이 사장실을 들락거리며 시키지도 않은 보고를 하자 정 의원이 “당신은 화장실 갔다가 문뜩 떠오른 생각을 보고하지 마시오”라고 면박을 줬다는 것. 이에 대해 이 전 회장은 나중에 정 의원이 “인정머리가 없고 싸가지도 없다”고 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악연은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이나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더욱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올 초 정 의원이 정주영 명예회장 1주기 행사 때 주변사람들에게 “이영기 현대중공업 부사장이 이익치 농간에 속아 회사에 엄청난 손해를 끼치고 물러났다”는 말을 했다는 것.
왕자의 난 때 갈등 심화 특히 정 의원은 형제간 재산싸움이었던 ‘왕자의 난’이 이 전 회장의 ‘농간’에 의해 벌어진 것으로 보면서 더욱 이 전 회장을 안좋게 보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00년 5월 정몽구-정몽헌 회장 동반 퇴진 선언과 정몽헌 회장쪽의 현대자동차 경영권 장악 시나리오나 현대상선이 정 의원을 제치고 현대중공업 1대주주로 등극하게 된 것들이 모두 이 전 회장의 꾀라고 보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이 전 회장은 ‘오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몽헌 회장쪽의 ‘현대차 경영권 접수 작전’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정 명예회장의 뜻”이었다는 것.
정 명예회장이 북한에 소형 자동차 공장 건립을 은밀히 추진했고 이를 위해 현대중공업 지분을 팔고 현대자동차 주식을 취득해야 했다는 것. 현대자동차엔 대북 사업에 부정적인 사람이 많아 걸림돌 제거 차원에서 왕회장이 직접 대주주가 되기로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왕회장의 시도가 몽구-몽헌 형제의 재산싸움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됐다는 것. 그는 왕자의 난이 “모두 김정일 위원장과의 대북 사업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라고 정리했다. 자신이 꾀를 낸 게 아니라 돌아가신 왕회장의 숙원 사업이던 대북사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벌어진 부차적인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금융업에 대한 의욕 여전
이익치 전 회장은 2000년 8월 말 현대그룹에서 떠났다. 이후 그는 잊혀진 사람이 됐다. 다만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의 책임은 아직도 그를 따라붙고 있다.
그는 지난 16일 귀국하면서 “정 명예회장을 30년간 보필하면서 현대그룹이 어려울 때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선봉대로 나섰다. 그런데 2세들이 나한테 철천지 원수가 맺혔는지 나를 쫓아내고서도 현대전자에 지급보증한 2천억원까지 물어내라고 한다”는 말을 했다.
재벌 오너라도 2천억원을 갚은 예는 국내에선 아직 없다. 주주 이익 중심 경영의 전환기에서 그는 구시대 경영의 표본 사례로 ‘딱 걸린’ 셈이다.
그는 자신이 두 번째 주군으로 선택한 정몽헌 현대건설 이사회 회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정몽헌 회장은 뭐가 섭섭한지 2년 넘게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롤 모델(정주영)이 사라지고, 두 번째로 선택한 주군도 그에게서 사라진 것. 게다가 이익치 전 회장 개인에게 부과된 1천억원에 가까운 배상금을 물어줘야 할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스스로 뉴스 속으로 걸어나온 것이다. 1천억원이 걸린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따져보자고 나선 것.
이 전 회장은 44년생으로 올해 나이 59세다. 그는 최근 “앞으로 20년을 봐라. 미국에 있으면서 주식 금융 공부를 많이 했다”고 말하며 여전히 금융업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그는 여전히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