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임 멤버 가운데 지난 YS정부에서 가장 먼저 각광을 받은 인물은 한이헌 이석채씨였다. 한이헌씨는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경제기획원 차관으로 입각했고, 94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문민정부 1기의 경제정책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 왼쪽부터 한이헌씨, 이석채씨, 강봉균씨 | ||
그러나 문민정부 말기 IMF 위기로 인해 이들의 경제 정책은 한껏 빛이 바랬다. 이씨는 PCS사업자 선정 의혹으로 인해 최근까지 해외 도피 생활을 거듭했다.
한씨 역시 YS 최측근 인사로 지목돼 한나라당에 합류하지 않고 외곽을 전전하는 등 뚜렷한 활동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지자체 선거에서는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뤄진 지난 98년. ‘64동기회’ 멤버 가운데 DJ정부 들어 이기호 강봉균씨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기호씨는 YS정부에 이어 DJ정부에서도 노동부 장관에 유임된 바 있다. 이어 99년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았다.
문민정부에서 경제기획원 차관, 정통부 장관을 역임했던 강봉균씨 역시 DJ정권 출범과 동시에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발탁됐다. 공교롭게도 YS-DJ정부로 이어지는 10년 동안 무려 4명의 ‘64동기생’들이 청와대 수석을 거쳐간 셈이다.
서울대 상대 64동기회 전성시대는 노무현정부 출범 후에도 사그라들 줄 모르고 있다. 그 바통을 새롭게 이어받은 이가 바로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다. 강 위원장은 새정부 출범시 한때 재경부 장관 후보로도 유력하게 부각된 바 있으나, 그의 개혁성향을 더 높이 산 노 대통령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발탁했다.
이들의 경제 철학은 정권 교체의 명암만큼 다양하게 엇갈린다. YS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렸던 한이헌씨는 재벌의 위장계열사와 내부거래 조사를 주장하는 등 재벌 개혁성향이 강했다. 반면 이석채씨는 정부의 감시 역할을 중요시하는 시장경제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DJ정부 때 경제의 양 수레바퀴였던 강봉균씨와 이기호씨 역시 서로 상반되는 면을 보여주고 있다. 강씨가 저돌형의 강성 이미지라면 이씨는 온화한 성격의 연성 이미지라는 것.
경제 정책에 있어서도 강씨는 “재벌은 스스로의 생존 발전을 위해서라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개혁 성향이 강한 반면, 이씨는 지나친 개혁 위주보다는 중산층의 삶의 질 향상에 역점을 두는 안정을 바탕에 두는 스타일이었다. 강철규 위원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개혁 성향의 학자이다.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