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자 시절부터 일관되게 ‘재벌개혁’을 주장해온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그는 대통령 앞에서도 ‘할말은 하는’ 사람이다. 지난 3월13일 경제5단체 주최 경제장관 초청 리셉션에 참가한 강 위원장. | ||
전화 통화가 이뤄졌으나, 그는 ‘원칙주의’를 강조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는 공보관을 통한 정식 절차를 받기로 했다”는 것. 노무현 정부의 방침이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다음날 서면으로 질의서를 대신해야 했다. ‘실천주의자’ 강철규 위원장은 ‘원칙주의’에 충실한 채 자신의 개혁 성향을 유감없이 떨치고 있다. 일견 거침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삐걱거리는 잡음도 들린다. 노무현 대통령과 닮은꼴이라는 농담도 나온다.
강철규 위원장은 저술 활동을 꽤 활발히 해온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낸 책 ‘망할 기업은 망해야 흥할 기업이 흥한다’(가제)만 해도 열 몇번째쯤의 저서에 해당한다.
“책 제목이 너무 강하지 않은가”라는 주변의 우려 때문에 시판이 보류될 정도로 재벌에 대한 그의 개혁 성향은 강하다. 재계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도대체 망할 기업은 어디를 가리키는 것이냐”라며 예민한 반응을 보일 정도라고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그 성격상 재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대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강 위원장의 취임을 바라보는 재계의 우려는 자못 심각해 보인다. 지금과 같은 시점에 그의 ‘망할 기업은…’이 출간되는 것에 대해서도 못마땅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의 이번 저서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서 쓴 칼럼 등을 모은 것. 당연히 그 날카로운 펜끝은 재벌을 향해 있다.
이것은 책 내용을 미리 들춰보면 명확해진다. ‘경쟁시장이 형성되는데 현재의 재벌체제는 장애가 된다. 선단식 경영을 하는 재벌의 지배구조가 반경쟁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재벌의 효시랄 수 있는 일본 재벌을 국내 재벌과 곧잘 비교한다. 일본 재벌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고 있는 추세인데 반해 국내 재벌은 여전히 총수 및 그 일가가 소유뿐만 아니라 경영까지도 장악하고 있다는 폐단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재벌이 우리 경제 성장에 기여한 공이 70%라면, 발목을 잡는 것 또한 30%”라고 말한다. 7 대 3이라면 그나마 후하게 쳐줬다는 것이 그를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의 평이다. 89년 경실련 창립에 발벗고 나섰을 때 그는 “재벌의 파수꾼인 전경련을 해체하고 재벌을 전부 분할해서 독립기업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그렇다면 강 위원장이 현재 가장 문제삼고 있는 재벌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재벌의 소유와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완전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자총액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계열사가 망하면 다른 건전한 계열사의 재무구조까지 휘청거리게 만드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현실적으로 지금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지주회사제도’”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강 위원장은 “지배구조와 계열사간 거래 등이 투명해지면 1천 포인트 주가 시대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투명’이 거의 그의 인생 철학인 듯하다. 그만큼 말끝마다 투명을 강조한다. 오죽했으면 지난 3월 초 청와대 장관 분임토의 때 강 위원장이 속한 조 이름이 ‘빙어’였을까. 빙어같이 투명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강철규 위원장의 ‘매서운’ 개혁 성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는 딱히 찢어지게 궁핍하지도 않았고, 학창시절 소위 ‘가열찬’ 운동권도 아니었다. 군대도 학사장교로 중위 제대했다. 45년생으로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대전고-서울대를 거친 전형적인 수재형이다.
그의 개혁 성향은 서울대 스승인 변형윤 명예교수의 영향을 입은 바가 컸다. 변 교수는 지난 60년 서울대 교수 신분으로 법정에 출두, “제자들이 공산주의로 몰린다면 그들을 가르친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학생운동의 순수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데모를 위해 거리로 나서려 하면 교문을 막고 서서 “나는 이처럼 너희들을 막고, 너희들은 나를 밀치고 나가는 것이 역사의 운명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80년 전두환 정권 출범과 함께 서울대에서 내쫓기는 신세가 되지만 그의 숱한 제자들은 사재를 털어 광화문에 스승의 아호를 딴 ‘학현연구실’을 만들어 드렸다. 이것이 지난 김대중 정부 이후 이 땅의 경제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학현학파’의 효시이다. 물론 강 위원장도 학현학파의 주요 멤버 가운데 한 명이다.
▲ 공정위 업무보고에서 강철규 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서 내용을 알려주고 있다. | ||
당시 산업연구원 근무를 병행해 궁핍한 강사의 박봉으로도 그나마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강 위원장은 지금도 자신의 재산에 대해서 명쾌하게 답한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 한 채와 ‘얼마간’의 저축 예금이라는 것. 그 얼마간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강의료와 책 원고료 등을 저축한 것”이라고 하니 그다지 많은 것 같지는 않다.
20여 년간의 교수 생활과 공직 생활로 마련한 아파트 한 채가 그리 대단할 리도 없건만, “산업연구원 시절 그나마 사택이 제공된 덕에 집 장만을 할 수 있었다”고 스스로 대견해 하기도 한다.
강 위원장은 자신의 경제 철학을 현실에 접목시키려는 경향을 계속 보여주었다. 노태우 정부 출범 당시에는 대통령경제구조조정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89년에는 스승 변 교수를 공동위원장으로 모시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을 조직하기도 했다. 또 기회가 닿을 때마다 언론을 통해 자신의 경제 철학을 설파하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유한 선비 스타일이지만 막상 그에게는 대단한 집념과 고집이 숨어 있다. 주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그의 입에서는 ‘강철규식 논리’가 튀어 나온다.
“경제 위기에 따른 걱정의 목소리가 많다. 개혁에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주변의 얘기에도 그는 역시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나오는 목소리는 역시 이랬다. “경기가 안 좋을때 오히려 개혁을 해야 한다. 속도조절론은 적절치 않다. 개혁은 일관되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강금실 법무, 김두관 행자, 이창동 문화부 장관, 유인태 정무수석, 송경희 전 대변인 등이 차례로 튀었지만, 정작 소리소문없이 튀는 인사는 강철규 위원장이란 말이 있다.
강 위원장의 지나친 원리원칙주의적 발언이 자칫 부처간 심각한 갈등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지금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김진표 경제부총리와의 갈등설이 그것. 실제 두 사람이 딱히 의견이 맞섰던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재벌 개혁에 있어 강경과 온건의 입장 차이.
강 위원장은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어 그 강화가 시급하다”고 밝힌 반면, 김 부총리는 “현행제도는 완화된 것인 만큼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제동을 걸기도 했다.
재벌 정책에 대한 강 위원장의 강성 기류는 고건 총리에까지 파급됐다. 3월 초 고 총리가 “경제 상황을 감안해 재벌의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일제 조사를 유보·연기하겠다”고 밝히자, 바로 다음날 강 위원장이 “개혁엔 속도조절이 있을 수 없다”라는 말로 반발하는 듯한 제스처를 보인 것. 일부 언론에서는 일제히 ‘고 총리의 영이 안 선다’라며 항명 분위기를 은근히 유도하기도 했다.
김 부총리와의 갈등 역시 오히려 주변에서 부추기는 측면도 감지된다. 강 위원장의 저서 ‘망할 기업은…’의 부제가 ‘대한민국 경제감독의 구조개혁 로드맵’이라고 알려지자, 일각에서 “경제감독은 경제부총리의 고유 닉네임인데, 공정위원장이 월권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이창동 장관과는 신문사 과점 논란에 대해 이견을 표명했다. 이 장관이 지난 4월15일 국회 답변에서 “상위 3개 언론사가 75%에 가까운 점유율을 보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발언하자 “신문시장의 과점문제는 단순 수치로 계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ABC에 <조선일보>만 가입되어 있을 뿐 다른 신문이 가입하지 않아 부수 자체도 파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심지어 강 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말도 그대로 들이받아 정·관계를 아연하게 만들었다. 노 대통령이 4월7일 금감위 업무보고 자리에서 “시장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조치를 규제로 판단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한 바 있다.
강 위원장이 규제개혁위원장 시절 내린 신용카드사의 길거리 회원 모집 허용에 따른 문제 제기였다. 부패방지위원장 시절 “대통령이라고 해서 부패를 외면하지 않겠다”며 임명권자에게도 거침없이 기염을 토한 바 있던 강 위원장은 역시 강골이었다.
그는 “카드사가 신용상태 등 자격심사를 제대로 안 하고 카드를 남발한 것이 잘못이지 모집장소가 옥내이든 가두이든 무슨 상관이냐”며 노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쯤 되면 대통령도 못말리는 ‘꼬장꼬장한 선비’임에 틀림없다.
원칙에 있어서는 지독하리만치 철저한 강 위원장의 또다른 사례 한 가지. 지난 2000년 총선 당시 자신이 몸담고 있던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 낙천·낙선운동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이 운동에 동참을 거부했다. 합법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의 비리 사건으로 한창 떠들썩할 당시 강 위원장의 속은 당연히 편칠 못했다. 언론에서 이 전 위원장과 연관시켜 질문하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그는 “유감스런 일이긴 하지만, 직무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답을 내놓곤 했다.
공정위 내부에서는 이 전 위원장과 강 위원장의 대조적인 신앙생활이 한때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이 전 위원장은 익히 알려진 대로 대단한 신심의 불교신자. 그 탓에 승가사 10억원 시주압력설로 시달리기도 했다. 이 전 위원장의 부인 또한 봉은사의 신도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강 위원장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집사이다. 그의 공직 철학에도 종교적 색채가 듬뿍 묻어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공의롭고 바른 사회, 경제정의가 실천되는 사회가 이룩되길 원한다”는 것. 서울대 상대 재학시절에도 한국대학생선교회에서 활동한 바 있다고 한다. 그의 부인 임규심씨 또한 같은 교회 권사이다.
그는 동년배들 중에서는 드물게 ‘월암(月巖)’이라고 하는 운치있는 아호도 갖고 있다. 등산이 취미이고, 커피를 꽤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은 틈을 못 내지만 가끔 골프도 즐긴다고 한다. 담배는 안 피우지만, 술은 맥주 1컵 정도를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