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쁘고 귀엽고 우아한 ‘공주’이나영은 간 데 없고 선머슴 같은 인물 ‘경’이만 남았다.‘사이버걸’로 연예계에 데뷔한 이나영은 드라마 <네멋대로 해라>에서 그렇게 이웃집 소녀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 ||
예쁘고 귀엽고 우아한 ‘공주’ 자태의 이나영은 간 데 없고 선머슴 같은 드라마 속 인물 ‘경’이만 있다. 때로는 청순하게, 때로는 발랄하게, 때로는 털털하게 대중을 끌어당기는 그녀의 매력은 어디서 온 걸까.
이나영에 대한 오해 몇 가지. 하나, 이나영은 중국이나 몽골의 혈통이 섞인 혼혈일 것이다. 둘, 이나영은 얼굴이 크고 볼살도 통통할 것이다. 셋. 이나영은 깜찍한 표정으로 보건대 평소에도 애교가 철철 넘칠 것이다. 넷. 이나영은 발음이 새서 CF만 해야지 연기로는 성공 못할 것이다.
이젠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나영은 이중 어떤 것도 해당사항이 없다. 이국적인 외모 때문에 오해받긴 하지만 그녀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내기, 토종 한국인이다.
또한 CF에서는 요정처럼 사랑스러운 표정을 잘도 짓지만 실제론 ‘애늙은이’라느니 ‘조선시대’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과묵하고 낯가림이 심하다.
얼굴의 반은 차지하는 것처럼 넓은 이마와, 남은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듯이 커다란 눈 때문에 얼굴이 클거란 오해도 많이 산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 연예전문지에서 연예부 기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실제 보면 얼굴이 정말 작은 연예인’ 1위로 꼽히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이제 이나영이 CF뿐 아니라 연기의 여왕으로 등극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그녀의 영화와 드라마를 본 이라면 의심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나영의 매력이 꽃을 피운 건 CF가 먼저란 건 다 알려진 사실. 98년 압구정동을 지나가다가 사진작가에게 발탁되어 얼결에 모델이 된 것이 연예계로 들어선 계기가 되어 벌써 5년차의 원숙기로 접어들었다.
예쁘면서도 개성 강한 외모 때문에 큰 인물이 될 거라는 기획사의 예상이 맞아들어 데뷔 1년 만에 이나영은 CF스타로 자리를 굳혔다. 여자 연기자라면 누구나 바랄 화장품 전속모델로도 3년째, 길어봤자 1년 가는 휴대폰 모델도 어느새 3년째.
그녀가 금방 스타로 떠오른 데에는 운도 많이 작용했다. 데뷔한 다음해인 99년이 세기말이라 불리면서 다가올 21세기에 맞는 ‘사이버 걸’의 이미지에 적합한 모델로 각광받은 것이다.
그해 많은 스타들이 사이버틱한 분장으로 등장해 대중들의 시선을 끌고자 했지만 이나영의 사이버걸만큼 딱 맞는 느낌을 가진 자는 없었다. 그러나 연기를 하려고 했을 때 이런 CF로 쌓은 이미지가 방해되기도 했다.
드라마 <퀸>에서 폭행과 폭언을 일삼는 남편에게 변변히 대꾸 한마디 못하는 순종적인 아내 역을 맡기에 너무 사이버틱하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왔을 때, 담당 PD가 ‘자세히 보니 동양적인 구석이 있다’고 판단, 결국 역을 따냈다.
처음 이나영이 모델로 등장했을 때 그녀가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이토록 빨리 CF 섭외 영순위가 된다거나 주연급 연기자로서 인정받는 날이 올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저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워낙 튀는 독특한 외모와 분위기 때문에 ‘외계인 같다’느니 ‘혼혈’이라느니 하여 성격 강한 몇몇 역할로 이미지가 고정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숫기 없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많은 사진작가들이 그녀를 가리켜 ‘이 바닥에 오래 못있을 것이다’라고 점치기까지 했다. 연예인 생활 오래 못할거라고 본 데는 위에서 말한 오해들이 한몫 거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나영은 이 모든 오해와 착각을 멋지게 뒤엎고 단점을 자신만의 개성과 장점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순 오리지널 토박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그녀의 외모는 덕분에 첫 영화데뷔를 일본에서 하는 흔치 않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치아가 벌어져 발음이 샌다는, 연기자로서 치명적인 결함은 선배연기자들의 충고대로 칫솔을 물고 대사 연습하여 교정했다.
▲ <네멋대로 해라>에서 ‘경’이 역의 이나영(왼쪽)과 ‘복수’ 역의 양동근. | ||
무엇보다 그녀가 자신이 CF에서 보여준 공주 이미지에 매달리지 않고 험한 역할도 마다하지 않은 것이 스스로를 틀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데뷔작인 일본영화 <에이지>에서는 야쿠자와 사랑에 빠지는 중국여인 역을, <천사몽>에선 대사 한마디 없이 검만 휘두르는 여전사 역을 맡았고, 최근작 <후아유>에 와서야 겨우 자기 또래의 여주인공을 맡았지만 그 역시 아픈 과거에 시달리며 성장해가는, 그리 녹록잖은 역할이었다.
CF에서 얻은 이미지만 그대로 갖고가도 성공은 떼어논 당상이건만, 이나영은 쉬운 길을 거부했다. “흥행 배우보단 한걸음씩 나아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겸손한 포부다. 그러나 그런 이나영의 고집은 드디어 빛을 발하고 있다.
장안을 달구는 화제작 <네멋대로 해라>의 경이. <후아유>에서 청각장애의 아픔을 가진 수족관 다이버 역을 맡아 현실과 게임 사이의 사랑에 혼란스러워 하는 역할을 잘 소화했지만 정작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는 바람에 그녀의 연기를 확인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네멋대로 해라>에서 이나영은 어딘가 공허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워물면서도 아버지 앞에서 주눅들고, 미안해 하면서도 임자있는 남자를 ‘가로채는’ 외유내강형의 경이의 모습을 잘 표현해 ‘진짜 배우’로 거듭났다.
그저 예쁘기만 하고, 그저 착하기만 하고, 그저 귀엽기만 하다는 한 면만 가리키는 찬사로는 이나영의 매력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우아하지만 퇴폐적이기도 하고, 세련됐지만 투박하기도 하고, 성숙하지만 참신하기도 하고, 예쁘지만 특이한 생김이기도 하고, 착하지만 따질 줄 알기도 하고, 귀엽지만 고분고분하지만은 않은. 양면적인 이것들이 이나영을 말할 때 꾸밀 수 있는 수식어들이면서 지금 이나영의 모습이다.
이제 겨우 스물넷. 연기과에 진학해 더 공부하고 싶은 바람이 있고, 가수로서 음반을 낼 희망을 갖고 있고, 외국에 진출할 욕심도 갖고 있는 그녀가 3~4년 후엔 어떤 배우가 될까, 10년 뒤엔 어떤 모습일까. 그녀의 성장이 기다려진다.
[이나영의 말]
“우린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애늙은이죠.” (영화 <후아유>에서 상대역인 조승우도 자기처럼 말수 적고 의젓하다며)
“제가 졌어요.” (드라마 <네멋대로 해라>에서 함께 출연한 양동근도 숫기 없고 말수가 적어 결국 자기가 먼저 말을 걸었다며)
“자폐소녀가 되긴 싫어요.” (영화 <후아유> 촬영이 끝난 후 영어선생님을 구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며)
“CF에서의 공주 같은 이미지는 제 원래 모습과는 전혀 달라요. 실제 저는 선머슴 같은 걸요.”(영화 <천사몽>에서 맡은 여전사 쇼쇼 역할을 설명하면서)
“못생겨서 거울 싫어해요.” (외모에 대한 말이 나오자)
[주변인의 말]
“CF에서만 그녀를 봐왔기 때문에 광고 속 이미지가 그녀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만나고보니 인주 역할에 ‘딱’인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주의 직업이 스쿠버라서 걱정을 했는데, 고된 훈련에 열심히 임해줘서 고맙다.” (영화 <후아유> 심보경 프로듀서)
“영락없이 사이버 가수 아담의 파트너야.”(KBS의 한 오락 PD)
“정체성이 정해지지 않아 다양한 색깔을 입힐 수 있다.”(MBC 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의 박종 PD)
“사이버 미인이라더니 자세히 보니 동양적인 구석도 있어서 마음놓았다.”(SBS 드라마 <퀸>의 고흥식 PD)
김민정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