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천수는 인터뷰에서 월드컵 이후 벌어진 갖가지 소문들 등에 대해 솔직히 털어놨다. 왼쪽은 이천 수가 이상형이라고 밝힌 탤런트 김정화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번 염색했다가 실패해서 다시 바꿨어요. 노란색과 하얀색의 중간 정도를 원했는데 마치 탈색된 머리처럼 나왔잖아요. 그래서 또 바꿨죠.”
월드컵 이후 해외 이적 문제로 말 많고 사연 많았던 이천수(21·울산 현대)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전의 이미지를 버리고, 보다 차분하고 성숙된 이천수를 알리고 싶어했다.
달라진 헤어스타일과 옷 차림새가 일시적인 변화라면 축구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는 영원히 계속되어야할 숙제이기 때문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고 털어났다.
정규리그 중이지만 지친 심신을 달래고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구단의 배려로 일주일간의 특별 휴가를 받았다는 이천수는 앞으로 3년간은 축구에만 미쳐있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과 편견에 당당히 맞서겠다고 큰소리 치면서도 내심 왜곡된 기사와 시각들로 인해 마음 고생을 톡톡히 해낸 아픔을 내비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우여곡절, 파란만장했던 영국 프리미어리그행의 좌절과 그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갈 길을 확실히 정해버린 과정들, 그리고 월드컵 이후 벌어진 갖가지 소문들에 대해서 모든 걸 솔직히 밝힌 이천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느새 훌쩍, 제대로 자란 ‘남자’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월드컵대표팀이 구성되기 전) 상암경기장에서 인터뷰했던 것 기억나요?
▲그럼요. 그때 내가 무슨 말했는지 잊어버리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이런 자리에서 다시 만나 그런지 그동안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뭔가 내면이 꽉 찬 느낌이 드는데.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돌며) 정말 그렇게 보여요? 사실 그런 소리 듣고 싶어서 노력 많이 했거든요. 가벼운 이미지를 바꾸려고 말수도 줄이고 행동도 조심했어요. 기분 좋네요. 제가 활발한 것은 다 알잖아요. 말만 앞서는 이천수, 너무 까불고 가벼운 이천수라는 지적들 때문에 고민이 심했어요.
저에 대한 선입견을 바꿔놔야 하겠는데 그러기가 정말 어렵더라고요. 시간과 노력도 많이 필요하고. 공부라면 오히려 더 쉽겠어요. 말 많은 사람이 벙어리처럼 살기 힘든 거잖아요. 그래서 할 말 못할 말 구분지었어요. 갑작스런 변화로 인해 건방떤다는 비난도 들었지만 개의치 않고 그냥 밀어붙였죠. 근데 정말 제가 의젓해 보여요?
―해외진출 실패에 따른 아픔이 작용한 건 아닐까요?
▲많이 포함돼 있죠. 선수, 에이전트, 구단 모두가 잘못한 거예요. 전 저대로 성급한 마음에 쉽게 판단을 내렸고, 에이전트도 불확실한 신분을 감추고 뛰어들었으며, 구단은 어떻게 해서든 국내 리그에서 뛰게 하려는 의지가 강했던 터라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어요. 엄청 괴로웠어요. 올시즌까지 K리그에서 뛴 다음 내년에 유럽으로 나가겠다고 정리하기까지 정말 혼자서 외로운 싸움을 벌였죠. 전 이번이 아니라도 충분히 유럽에 나갈 자신이 있어요. 그래서 마음 잡기가 조금 수월했는지도 몰라요.
―유럽 현지와 국내에서 부르는 선수들의 몸값에 큰 차이가 있다는 거 알고 있어요?
▲예. 제가 사우스앰턴으로부터 제시받은 몸값이 이적료 1백만달러에 연봉 52만달러예요. 맞아요. 우리 선수들 몸값이 그 정도예요. 오히려 연봉 52만달러면 센 거죠. 선수는 이적료의 많고 적음이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일단 나가기만 한다면 50만달러를 받든 5백만달러를 받든 상관없어요. 그런데 구단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사실 우리나라 선수가 외국 가서 연봉 52만달러 받기가 어디 쉬운가요? 언론도 문제가 있죠. 현지에선 떡 줄 생각도 안하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게 하고 있으니까요.
―해외 진출이 틀어진 진짜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제가 영국으로 갈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에이전트와의 계약 때문이죠. 미국에서 활동하는 퀸타나씨와 내년 3월까지 계약이 돼 있어요. 그런데 중간에서 일 봐줬던 조현준씨가 퀸타나와의 계약 문제를 해결했다며 자체적으로 해외 이적 문제를 알아본 거예요. 이 사실을 안 퀸타나씨 입장에선 가만 있을 수 없는 거죠. 절 포기한 적이 없다는데 어떡하겠어요.
제가 만약 조현준씨의 소개로 영국에 갔다면 구단과 전 퀸타나씨에게 걸려들고 말아요. 유럽 진출을 6개월 늦춘 것뿐이에요. 지금 발목, 무릎, 허리 등 온전한 구석이 한 군데도 없는데 그걸 제대로 치료해서 외국 나가라는 배려라고 생각하고 신인왕, 득점왕에 올라 멋있게 유럽 진출을 할 수 있게 노력할 거예요.
―1년 6개월 동안 동고동락한 태극전사들이 그립지 않았어요? 매일 부대끼며 살던 터라 허전한 마음이 크지 않았을까 싶은데.
▲아니요. 전 그런 거 없어요. 가족 같은 분위기였고 선후배간의 조화가 질서있게 자리 잡혔지만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니 지겨운 기분이 들더라고요. 계속 같이 지냈다면 트러블이 상당했을 거예요. 라이벌처럼 대결하는 지금 모습이 훨씬 재밌어요.
―친하게 지낸 사람들과 몸싸움을 벌이기가 수월치 않을 것 같아요.
▲전북 현대와의 경기에서 진철이형, 아니 최진철 선수와 몸싸움을 하니까 경기 끝나고 기자분들이 그러시더라고요. 얼마 전까지 한솥밥 먹던 사람들이 몸싸움해도 되냐고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그럼 탁구할까요? 제가 탁구도 잘 치는데 탁구선수해야겠네요.
8월3일 포항과 경기가 있어요. 고려대 대선배인 명보형과 맞붙게 돼요. 그래도 전 같은 축구선수로 대할 거예요. 깔 땐 까고 부둥킬 때는 부둥키고. 대신 욕을 하면 안되겠죠. 예의는 지키되 라이벌로 최선을 다할 거예요.
▲제가 안하면 아무도 안할 것 같더라고요. 아무리 감독이 운동장에선 이름을 부르라고 주문해도 선수들이 따르지 않으면 그만이거든요. 전에는 나이 어린 선수들은 선배 공은 뺏지도 못했어요. 얼굴보고 인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는데요. 이게 뭐예요. 같은 축구인들끼리. 제가 쳐주고 나가면 분위기가 더 좋아질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연습중에 “진철, 진철 패스!”하니까 순간 모든 선수들의 표정이 얼어붙었어요. 그런데 제가 운동에 푹 빠진 상태에서 외친 말이라 뭐라고 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때부터 형들이 먼저 풀어주셨어요.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달라지대요. 연습이 시합처럼 되고 시합이 연습처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연습 때 더 많이 다쳤어요. 정작 시합때는 아주 릴랙스해지고요.
―시사프로그램인 <100분 토론>에 홍명보 선수와 출연했잖아요. 그때 홍명보 선수가 예전부터 그라운드에선 ‘형’이란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안그랬어요. 옛날 동국이형 같은 경우엔 선배 얼굴도 못쳐다보고 말도 걸지 못했다는데. 사실 말이 안되는 거잖아요. 한참 뛰어다니다가 “형, 볼 주세요 볼 주세요” 이럴 수 없는 거잖아요. 저도 올림픽 때까지는 선배한테 말도 못했어요. 제가 그 정도였으면 다른 선수는 아예 할 수도 없는 거예요.
─만약 박지성 선수가 “명보, 패스!”라고 처음 했다면 어땠을까요?
▲잠이 확 깨는 거죠. 제가 하니까 자연스럽게 된 거예요. 솔직히 지성이형은 시켜도 못해요. 대표팀의 정신적인 지주는 명보형을 꼽겠지만, 뒤에서 악역을 도맡으며 서포트한 사람은 바로 저예요. 생활에서나 경기 중이나 제가 끼면 활기가 넘치는 그런 분위기 있잖아요.
―월드컵에서 단 한 게임도 못뛴 선수들이 있잖아요. 그들과 뭐 불편한 감정 싸움 같은 것은 없었어요?
▲전혀요. 전 그 선배들에게 더 잘했어요. 지금이라도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그건 힘들거든요. 나이 어린 선수들 게임 뛰는데 후보로 남아있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잖아요. 나름대로 한국에서 최고라고 꼽히는 선수들인데요. 우리가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룬 데에는 그들의 도움이 제일 컸어요. 만약 내가 선배인데 그 입장이었다면 마구 욕하면서 짜증냈을 거예요.
―황선홍 선수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서요. 무슨 소리예요?
▲독일전에서 경기 휘슬이 울리자마자 그대로 운동장에 드러누웠거든요. 그런데 선홍이형이 와서는 절 일으켜 세우며 꼭 껴안아주더라고요. 그 형 품에 안겨 있으면서 ‘아, 이게 경험이구나. 월드컵 4번 출전한 선수만의 여유’라고 생각했어요.
마치 아빠가 아들을 껴안은 듯한 포근함이 느껴졌어요. 만약 제가 게임에 출전 못했는데 후배들이 지고 들어왔다면 과연 선홍이형처럼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요? 못했을 거예요. 선홍이형한테 한 번 더 배운 거죠. 월드컵 경험 중 최고의 경험이었어요.
―국민들의 반응, 특히 여학생팬들의 반응이 대단한데 이런 열렬한 인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월드컵 4강은 대단한 거예요.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우린 노력했고 힘든 과정을 거쳤거든요. 이 정도의 대우는 받을 자격이 있는 거 아닌가요.
―방송 출연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여러 프로그램에 나와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 반응들이 상반되었거든요.
▲제가 방송을 좋아하는 선수 1위로 꼽혔다면서요? 사실 저는 방송 출연을 싫어해요. 방송 나가서 구구절절 떠드는 걸 ‘주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싫어해요. 그동안은 절 홍보하기 위해서였어요. 이젠 그런 것에 대한 미련이 없어요.
친하게 지냈던 방송 관계자들이 여러 차례 부탁을 해오면 사실 거절을 못했어요. 워낙 정에 약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부탁을 외면할 만큼 모질지 못해요. 그래서 응한 거지 방송을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한 번 출연을 결심한 후엔 최선을 다했어요.
―K리그 데뷔 후 정신 없었죠? 복잡한 문제도 끼어 있었고.
▲집중이 안되더라고요. 축구선순데 운동장 나가서 뭘 해야 될지 감이 안 잡혔어요. 무슨 귀신에 홀렸는지 정신을 못차렸죠. 너무 어지러워서 제가 왜 축구를 하고 왜 여기서 뛰는지 막 헷갈리는 거예요. 시즌 중에 이렇게 나와 있는 건 말이 안되는 거죠. 하지만 일주일간의 휴가를 통해 모든 걸 정리하고 울산 현대에 처음 들어갈 때의 기분으로 재도약하고 싶어요. 다시 준비하는 이천수, 새로 들어온 이천수로 변해서 8월3일 경기에 출전할 겁니다.
―이런 모습들이 기존의 소속팀 동료들한테는 ‘튀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해해 주시길 바랄 뿐이죠. 잉글랜드 간다, 못간다, 무조건 떠난다, 못떠난다, 이런 상황들의 반복 속에서 별 해괴한 소문들이 다 떠돌고, 이 신문 저 신문 다 다르고, 또 팬들은 가라 마라 하고…. 환장하겠더라고요. 제가 중심이 돼야 하는데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 이천수는 K리그에서 태극전사들과 만나도 “깔 땐 까겠다”고 다짐했다. [pitch photos] | ||
▲없었어요. 제가 인간적으로 대한 기자분들도 많은데 그땐 절 인간으로 안보고 기삿거리로만 보시더라고요. 진짜 싫었어요. 평소엔 형, 동생하며 지냈는데 갑자기 달라지대요. 배신감도 느꼈죠. 한동안 전화기 꺼놓고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며 묵묵히 지냈어요. 그러면서 이미지 변화를 위해 노력도 했고요.
―좀 가벼운 얘기 좀 해볼까요? 얼마전 케이블 음악방송에 출연해서 공개 프러포즈를 했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당시 제가 했던 얘길 그대로 옮기면 이래요. ‘지은이란 첫사랑이 있는데 섹시한 고소영 스타일이다’. 그랬더니 MC 보는 분이 방송을 통해 찾아주겠다고 해서 싫다고 했어요.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옛날 좋아했던 추억이 없어질 것 같아서요. 그런데 다음날 신문에 제가 첫사랑에게 공개 프러포즈를 했다고 나오더라고요.
―홍명보 선수가 이상형이라는 말은 뭐예요?
▲와, 그것도 정말 와전된 대표적인 얘기에요. 만약 제가 여자라면 말수가 많을 거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남자는 과묵한 사람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명보형을 이상형으로 꼽았죠. 아주 간단한 논리였는데 그 말을 이상하게 오해하더라고요.
―김남일 선수와 함께 소개팅했다면서요? 상대가 모델이라고 하던데.
▲남일이형은 월드컵 끝나고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어느날 강남에서 (류)시원이형과 여자친구 서지영씨, 려원 등과 만난 적이 있었어요. 물론 다른 남자들도 동석한 자리였죠. 그런데 모델이랑 소개팅했다는 소문이 난 거예요.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죠.
―이상형이 계속 바뀌는데 무슨 이유가 있나요?
▲예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오로지 한 사람입니다. 모델 출신의 탤런트 김정화씨 아시죠? 그분이 제 이상형이에요. 우연히 방송국에서 얼굴을 봤는데 정말 기분 좋더라고요.
―직접 보니까 어때요?
▲이뻐요. 제 이상형 맞아요. 자연스럽게 밥 한 번 먹었으면 좋겠어요.
―박경림씨와 월드컵 기간 중 술 마셨다는 소문도 있었잖아요?
▲아니에요. 밥만 먹었을 뿐이에요. 그것도 단 둘이가 아닌 여러 사람들이서 먹은 건데 신문엔 마치 두 사람이 데이트한 것처럼 나오더라고요. 증인도 있어요. 그때 옆자리에 탤런트 박용하씨와 배용준씨가 있었어요. 인사도 나눴고요. 인터넷이 무섭긴 무서워요.
―피부관리 받는다면서요.
▲지금도 받고 왔는데요. 여드름이 중·고등학교때 엄청 많아서 한 5년은 고생했어요. 그땐 축구만큼 신경썼던 게 피부였어요. 낮엔 돌아다니지도 못했거든요. 그래서 피부에 관심이 많죠.
―어린시절 가난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알고 있는데 당시 부모님에 대한 원망 같은 건 없었어요?
▲전혀요. 부모님께선 그때 좋은 축구화도 못사주고 보약을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러시는데 전 전혀 그런 생각 안했어요. 오히려 그때 좋은 축구화 신고 보약 먹었으면 지금의 이천수란 선수는 없었을 것 같아요. 부모님께 감사하고 앞으로 돈 벌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려운 사람 돕고 살고 싶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이천수는 앞으로 3년간 축구에 빠져 있다보면 유럽에서 인정받는 축구선수가 돼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때 지금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다시 인터뷰를 하자는 그가 과연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하지만 부평고 3학년 때 처음 만난 기자에게 했던 말이 지금 그대로 나타나는 걸 보면 3년 후 이천수는 ‘그것 보라’는 투로 기자 앞에 나타나 밉지 않은 자기 자랑을 해댈 것임이 틀림 없다. 그때는 이상형이 어느 연예인으로 바뀌어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