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i40
올해 8월까지 판매량을 살펴보면 현대·기아차가 부끄러워할 정도로 처참하다. i40의 8월 판매량은 고작 68대다. i40가 쏘나타의 ‘고급 버전’으로 나온 것이므로 비교 대상인 쏘나타의 판매량과 비교해 보자. 8월 쏘나타 판매량은 5923대다. 올해 1~8월 누적판매량을 봐도 i40는 1042대, 쏘나타는 5만 7329대다. i40의 8개월 판매량이 쏘나타 한 달 판매량의 6분의 1가량이다.
i40는 나온 지 오래 된 모델이라 그렇다 쳐도, 비교적 최신 모델인 아슬란의 판매량은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이다. 아슬란의 8월 판매량은 91대다. 베이스 모델인 그랜저의 8월 판매량 3069대와 비교해보면 얼마나 처참한지 알 수 있다. 1~8월 누적 판매량을 봐도 아슬란 1266대, 그랜저 3만 6707대로 비교하기 힘들 정도다.
기아자동차 K9
K9 또한 부끄러운 성적표를 받았다. 8월 판매량이 148대로 베이스 모델인 현대차 G80(옛 제네시스)이 3409대 팔린 것에 비하면 초라하다. 1~8월 누적 판매량을 보면 K9은 1811대, G80은 2만 5280대로 역시 비교가 되지 않는다. K9은 출시 당시 제네시스와 에쿠스의 중간급 포지션으로 기아차의 플래그십 모델이라는 점에서 판매가 이 정도라는 점은 기아차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모습이다.
#세 모델, 8월 나란히 47~49위 차지
베이스 모델보다 ‘고급형’을 추구한 이 모델들이 팔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베이스 모델보다 혁신적인 기술이 들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내외장·편의사양만 고급화해 훨씬 비싼 가격으로 내놓아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i40는 2495만~2955만 원(이하 옵션 제외, 부가세 포함)이다. i40의 최저가는 2250만~2955만 원인 쏘나타(LF)의 최저가보다 245만 원이나 비싸다. 게다가 지금 쏘나타(LF)는 신형 플랫폼이 적용된 신차라는 점에서 구형 플랫폼 기반의 i40 가격은 비현실적이다.
아슬란 또한 3825만~4540만 원으로 그랜저의 2988만~3920만 원보다 비싸다. 같은 배기량인 3000cc급으로 비교해 보면 아슬란은 3825만~4260만 원, 그랜저는 3320만~3920만 원이다.
K9은 4990만~8620만 원이며 비교 대상인 G80은 4810만~7170만 원이다. 같은 배기량인 3800cc급만 보면 K9은 5680만~7260만 원, G80은 6170만~7170만 원이다. 이 또한 G80이 신형 플랫폼을 사용한 신차임을 감안하면 구형 플랫폼의 K9을 선택할 이유는 더욱 줄어든다.
i40는 서스펜션 연결부를 알루미늄제로 사용하는 등 보이지 않는 곳까지 꼼꼼하게 신경 써 쏘나타 상위급 모델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한국 소비자들에게 중형차는 쏘나타로 충분하고, 상위급으로는 그랜저를 생각한다. 그 와중에 최신 플랫폼을 적용한 신형 쏘나타(LF)가 나오면서 i40는 그야말로 ‘계륵’이 됐다.
구형 쏘나타(YF)는 직분사엔진(GDi) 또는 디젤엔진(VGT)을 적용하지 않았으므로 GDi 엔진, VGT 엔진 라인업을 갖춘 i40만으로도 선택의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신형 쏘나타는 초고장력 강판 51% 이상을 적용해 강성을 크게 끌어올린 데다 GDi 엔진, VGT 엔진은 물론 터보엔진까지 다양하게 갖추면서 경쟁력 면에서 i40를 앞서 버렸다. 국내 소비자들이 민감해하는 에어백에서도 i40, 아슬란은 2세대 디파워드 에어백, K9은 2.5세대 스마트 에어백인 반면, 비교대상인 쏘나타(LF), 그랜저(IG, 11월 출시 예정), G80은 3세대 어드밴스드 에어백을 적용했다.
그렇다고 많이 팔리지도 않는 i40의 신형을 내놓기에는 개발비가 많이 들어 수지가 맞지 않는다. 요즘 자동차공장에서는 섀시 조립, 도장, 유리 장착 등 대부분 공정을 로봇이 담당하고 있다. 공장자동화는 최초 세팅에 많은 투자비용이 들지만, 이후에는 만들면 만들수록 1대당 추가 생산비(한계생산비용)가 줄어든다. 즉 많이 팔릴수록 대당 이익이 커지는 구조다. 초기 투자비용이 있으므로 팔리지 않는다고 해서 단종시킬 수 없고, 이미 생산 중인 차를 가격할인을 하든 어떻게든 팔아야 한다.
#에어백은 3세대 대신 2~2.5세대 장착
아슬란은 상품 개발에서 아쉬움이 있는 모델이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그랜저 이후 수입차로 넘어가는 소비자를 잡기 위해 그랜저와 제네시스의 중간급 모델을 원했겠지만 단순히 베이스 모델(그랜저)을 업그레이드한 것만으로는 국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차라리 제네시스의 후륜구동 플랫폼을 활용하고 편의사양을 최소화해 ‘제네시스 보급형’으로 4200만~5000만 원 정도 가격에 출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 플랫폼의 ‘리틀 제네시스’는 향후 G70으로 나올 예정이다.
현대자동차 아슬란
현대차는 9월 20일 아슬란 연식 변경 모델(2017년형)을 내놓으면서 기존의 6단 자동변속기를 8단 자동변속기로 바꾸었다. 엔진 파워를 조금 떨어뜨리는 대신 연비를 향상시키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이렇게 한 이유는 현대차가 신형 그랜저를 11월 조기 출시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신형 그랜저가 출시되면 아슬란은 구형 그랜저 플랫폼을 사용한 구형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K9 또한 앞서 설명한 i40, 아슬란과 같은 운명이다. K9이 출시될 때만 해도 구형 제네시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지만 신형 제네시스가 나오면서 구형 플랫폼으로 만든 구형 모델이 돼버린 것이다. 결과는 서두에 언급한 대로다.
기아차는 현대차에는 없는 경차(모닝·레이)와 다목적 차량(쏘울·카렌스·카니발), 고급 SUV(모하비) 등 특화 모델을 갖추고 있다. 준중형, 중형, 준대형처럼 판매량이 많은 경우가 아니라면 되도록 현대차와 라인업이 겹치지 않는 전략을 쓰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K9은 좀처럼 오기 힘든 기회였는데, 시장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우종국 자동차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