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비자금을 세탁해준 혐의를 받고 있는 김영완씨의 평창동 집. 강도가 들어 채권과 현금 1백억여원을 훔쳐 갔으나 이를 경찰에서 은폐하려 해 파문이 일었다. 이종현 기자 | ||
‘구린 돈’을 도둑맞은 뒤 신고도 하지 않았고, 그 도둑을 위해 변호사까지 선임해주었다. 더욱이 이를 청와대가 적극 나서서 ‘비호’해주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현금 박스 수백억원이 김씨 집으로 배달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비밀접촉 때는 ‘민간인’이던 김씨가 개입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하지만 아직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을 정도로 그는 미증유의 인물이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를 둘러싼 일들은 어마어마한 것이었지만 정작 본인의 성격은 과묵하고 얌전한 스타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은근한 친화력과 막강한 ‘실탄’으로 한 번 찍은 로비대상은 결코 놓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스터리 인물 김영완의 희미한 그림자를 추적해봤다.
김영완씨는 키 178cm에 단단한 체격을 갖춘 미남형이다. 그와 골프를 한 사람들은 “큰 키에 체력도 좋아 대단한 장타자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는 체격에 걸맞게 평소 건강을 무척 생각해 비가 오는 날씨에도 아침이면 집 뒤 야산을 오르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사업가들과 마찬가지로 골프를 통해 장외 ‘비즈니스’를 했다고 한다.
김씨의 로비 스타일은 조용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는 30대 후반부터 전 정권 실세들과 골프모임을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여기에서 무거운 주제로 좌중을 부담스럽게 하지 않고 주로 건강관리와 풍수 등 가벼운 화제로 친분을 쌓아갔다는 것.
최근 김씨와의 친분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한 사립대 A총장은 “김씨와 주로 건강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면서 “단전호흡과 기에 대한 지식이 상당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총장실에 탐지기를 가져와 직접 수맥을 찾아주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 김씨와 만난 적이 있는 한 전직 정부 관계자는 김씨의 성격에 대해 “사업이야기는 절대 내놓고 하지 않으며 적을 만들지 않으려 했다”고 평했다.
김영완씨는 일단 골프를 하면서 가벼운 화제로 상대의 의중을 살피다 마음이 통한다고 판단하면 매우 저돌적이고 직접적으로 상대방에게 ‘대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 로비대상으로 정하면 끝까지 접근해 안면을 트는 집요함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김씨 운전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자가용 벤츠와 외제승합차 스타크래프트(골프장 갈 때 고속도로 전용차선으로 가기 위해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의 팔걸이 수납함에는 항상 1만원권과 수표 다발이 가득 차있었다고 한다.
운전사 A씨는 “DJ정권의 고위 실세 관료, 정치인과의 식사 때는 즉석에서 상대측 운전기사들에게까지 엄청난 ‘촌지’를 건네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해서 김씨는 정재계와 언론계에 이르기까지 실세들만을 골라 엄청난 인맥을 쌓아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20대 후반 무렵이던 지난 79년에 무기중개업을 주로 하던 삼진통상을 설립, 대표로 재직했다. 이때만 해도 그의 사업실적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그의 장인이던 장아무개씨(72) 도움으로 군 관계자들을 소개받는 정도였다고 한다.
김씨의 장인 장씨는 중국 봉천 출생으로 중앙정보부 국장과 주요 해외공관 공사, 그리고 (주)대우 홍콩지사장 등을 지낸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로 정·재계에 발이 넓었다고 한다. 이런 장인의 후광을 등에 업고 김씨의 사업은 조금씩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결정적 도약의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율곡사업이었다.
김씨는 율곡사업 중에서 CH-47D 헬기(일명 시누크 헬기)의 주 거래상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당시 준수한 외모와 뛰어난 말솜씨를 자랑했던 김씨는 룸살동 등에서 군 관계자들과 접촉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장인의 후광이 플러스 알파로 작용하여 이때부터 군 수뇌부와도 인연을 맺었으며 상당한 ‘현찰’도 거두어들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무기중개상이 순수하게 챙기는 커미션만 헬기 1대 당 약 7억원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93년 권노갑 평민당 의원이 무기도입 경위와 로비 여부와 관련하여 김씨를 국회 증언대에 세움으로써 그의 사업에도 흠집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김씨는 삼진통상을 해체하고 무기사업과는 인연을 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김영완씨는 여느 사업가처럼 골프장에서 ‘비즈 니스’를 했다고.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 ||
김씨는 94년 3월 예비역 장성 K씨(61)를 대표이사로 내세워 H사라는 또 다른 업체를 설립했다고 한다. H사는 김씨가 예전에 납품했던 헬기보다 성능이 향상된 CH-47D LR형 6대를 DJ정권 출범 이후인 98년까지 공군에 납품했다고 한다.
그를 잘 아는 한 무기거래상도 “김씨는 93년 국정조사 이후 회사명만 H사로 바꾸었을 뿐 4∼5년 전까지 파리 에어쇼를 방문하는 등 헬기 판매알선을 위해 왕성하게 활동했다”며 “99년 8월 회사가 청산되기 전까지는 무기거래사업에 관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무기거래상 B씨는 김씨의 당시 사업거래 실적에 대해 “미국 보잉사의 컨설턴트이자 국내 에이전트였던 김씨의 경우 보잉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헬기 사업만으로 2백억여원 이상을 챙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 뒤 김씨는 부동산개발업체를 설립, 경영에 관여하면서 게임개발업체와 금융컨설팅 등 벤처기업에 거액을 투자하기도 했다. 김씨는 서울에만 약 7백억원대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J&C캐피탈 이사로 재직하면서 한때 정현준씨가 소유했던 벤처기업을 적대적 합병으로 인수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김씨의 ‘부자되기’ 과정도 밝혀져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모든 의혹들의 장본인인 김씨의 그림자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체 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김씨는 지난 3월20일 출국했다. 한때 일부 언론에서 그가 미국 여권을 이용해 국내에 들어왔다는 보도를 했으나 목격자의 진술일 뿐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다만 김씨가 미국 시민권자일 경우 미국 체류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와 영국 등지에서도 김씨가 체류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의 행적과 관련해서는 오리무중인 상태. 그럼 여기서 그의 이력서를 잠시 들쳐보자.
김영완씨는 부친(84)과 모친 김아무개씨(82) 사이의 4형제 중 3남으로 태어났다. 53년 10월 부산에서 출생한 김씨는 서울 중앙고와 고려대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그 뒤 지난 79년 진해 출신 장아무개씨(49)와 미국 유학중 만나 결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씨의 부모는 모두 이북 출신이다. 그들은 현재 미국 LA 근처 헌팅턴 비치에 거주하고 있다. 이곳은 세계적인 파도타기 명소로서 미국의 대표적인 부촌 가운데 하나다. 그의 모친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의 치과전문학교를 졸업한 의사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부유하게 자라온 김씨의 배경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첫째형 김아무개씨는 주민등록번호가 없고 혼인증서 작성자가 미국인인 점으로 미루어 미국 국적을 취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씨는 대외 활동과 관련해 처음부터 끝까지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회사 임직원들과도 사적인 대화는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운전기사들에게도 이웃 주민들과 농담도 주고받게 못할 정도로 보안에 민감했다고 한다. 그래서 보안을 누설한 운전기사가 수시로 교체되기도 했다고 한다.
중앙고 고려대 등을 함께 나온 그의 동문들은 물론이고 사업차 그와 수차례 마주쳤던 사람들도 “사업상 할 얘기를 빼고는 신변에 관한 이야기는 아예 입밖에 꺼내지를 않는 스타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씨의 오리무중 행적은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미국 LA의 한 교포는 “그는 교포사회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다운타운에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번에 한국의 언론을 통해 그가 대단한 인물이란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번씩 중앙고 동문회에 얼굴을 비친 적이 있다. 그런데 워낙 말을 잘 하지 않고 얌전한 편이라 동문들도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그 누구도 미스터리 맨 김영완씨에 관해 속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비밀의 커튼’에 철저히 가려진 채 살아온 김영완씨의 베일이 벗겨지는 날, 대한민국은 또 다른 악몽의 게이트로 들어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