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동욱 부장검사는 지난 96년 ‘12·12 및 5·18사건’ 재수사 팀에 합류,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
당시 정 대표는 사건이 불거진지 한달여 만인 그 해 9월1일 밤 9시 검찰에 전격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검찰 출두 당시 그는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3천만원의 정치후원금을 받았지만 청탁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며 혐의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정 대표는 그 길로 서울구치소로 직행했고 파란만장한 그의 정치인생에서 한동안 `‘수뢰 정치인’이라는 딱지표가 줄곧 따라 다녔다. 정 대표의 뇌물수수 혐의는 아직도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지 않을 만큼 논란과 우여곡절이 많다.
그 일이 있은지 꼭 5년 만인 2003년 7월.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고 돌아 정권이 바뀌자마자 정대철 대표가 다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5년 전 사건과 이번 사건은 여러 모로 닮은 꼴이다.
98년에도 정 대표는 한국야구위원회 총재이자 집권당인 국민회의 부총재 자격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바람에 그의 검찰수사는 ‘정치권 사정의 `희생양’이라는 말이 돌았다.
지금은 집권 여당의 1인자로 ‘노무현 정부 탄생의 `특등공신’이라는 꼬리표를 달았고, 검찰 소환을 앞두고 청와대와 힘겨루기를 할 정도로 위세가 당당하지만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정 대표의 혐의 사실도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우연찮게 건설사(현재는 굿모닝시티)가 연루된 것도 기이한 악연이다.
98년 당시 경성그룹 비리는 금융권 특혜대출이 사건의 본체지만 정대표는 당시 얼토당토않게 건설비리로 구속됐다. 지난 95년 경성건설이 추진중이던 경기 고양시 탄현지구 건설사업 승인을 빨리 처리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1천만원을 받은 데 이어, 97년 제주 여미지 식물원을 수의계약으로 인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조로 3천만원을 더 받은 혐의가 적용됐다.
이번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 역시 건설 비리다. 아직 정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체적인 혐의를 단정할 수 없지만 굿모닝시티 인허가 과정에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윤창렬 사장한테 4억2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정치적으로 봐도 그때나 지금이나 사정은 비슷하다. 정 대표는 당시에도 “왜 나만 당해야 하느냐”며 검찰 소환에 강력 반발했지만 결국 쇠고랑을 찼다. 집권 여당의 부총재가 뇌물수수 혐의를 뒤집어써야 하느냐는 게 그의 논리였다. 지금도 5년 전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정 대표의 달라진 위상을 감안해 강도가 세졌을 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흥미로운 사실은 정 대표와 한 `‘수사통’ 검사의 질기고 질긴 악연이다. 정 대표가 뇌물 스캔들로 검찰 수사를 받은 게 이번이 두번째이며, 정 대표 수사는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석연찮을 정도로 한 명의 검사가 맡았다. 정권 초기 집권당 실력자를 두번씩 검찰 청사로 부른 화제의 주인공은 정 대표와 서울법대 동문인 채동욱 서울지검 특수2부장이다.
채 부장과 정 대표의 악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8년 당시 채 부장은 서울지검 특수2부 부부장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검찰로는 다소 생소한 ‘부동산신탁’ 분야의 수사를 맡은 게 그와 정 대표의 질긴 악연으로 이어진 단초였다. 사실 한국부동산신탁이 연루된 경성그룹 비리사건이 자신의 운명을 바꿔놓을 줄 채 부장 본인도 몰랐다.
채 부장은 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시 24회. 강금실 법무장관의 연수원 1년 후배다. 서울지검 부장검사 자리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24회는 현재 검찰 조직을 움직이는 `‘싱크탱크’ 그룹이다.
채 부장의 주특기는 마약·강력 수사. 서영제 현 서울지검장은 대검 마약부장 시절 각종 마약사범 수사로 이름을 날렸다. 채 부장이 바늘구멍인 서울지검 특수부장 자리를 꿰차고 들어온 것도 서 검사장의 지원사격 때문이라는 게 검찰 내부의 평가다.
깔끔한 외모와 선이 굵은 성격 탓에 채 부장을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 성격이 화끈하고 뒤끝이 없다는 평가도 있다. 법무부 특수법령과를 거쳐 독일에서 공부했으며 학구파 검사로 통한다.
독일에서 통일법을 주로 다뤘을 정도로 통일과 북한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는 ‘`북한법의 체계적 고찰’과 ‘`독일 법률·사법 통합개관’이라는 제목의 저술도 했다.
96년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채 부장이 일약 세인의 관심을 끈 것은 ‘12·12, 5·18사건’ 재수사팀에 합류하면서다. 채 부장은 당시 주임 검사로 노태우 전 대통령을 상대로 직접 신문조서를 받았다. 채 부장은 이 사건 1차 수사 때 `‘성공한 쿠테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기존의 수사 결론을 뒤집고 전직 대통령 두 명을 사법 심판대에 세우면서 깔끔한 수사 능력을 인정받았다.
탄탄대로를 걷던 채 부장은 이후 호된 시련기를 겪었다. 채 부장을 고난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사건이 다름아닌 98년 정대철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가 연루된 경성비리 수사였다.
채 부장이 경성비리 수사를 맡게 된 인연도 특이하다. 5년 전에 있었던 경성비리 수사도 굿모닝시티 수사 전담부인 서울지검 특수2부가 맡았다. 당시 대한부동산신탁의 비리의혹 사건을 수사중이던 채 부장은 박순용 당시 서울지검장의 전화를 받고 검사장실로 불려갔다.
수사라인 중엔 당대 최고의 특수 수사통으로 이름을 날리던 문영호 특수2부장(현 대검 기획조정부장)이 버티고 있었다. 박 전 검사장은 채 부장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채부장, 당신이 경성그룹 사건도 좀 맡아줘야겠어”라고 말했다.
▲ 지난 98년 9월 경성사건 관련 혐의로 검찰에 소환됐던 정대철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가 구속되고 있다. | ||
그러나 돌이켜 보면 당시 박 전 검사장의 사건 배당 자체가 엄청난 회오리를 몰고 왔다. 경성그룹 비리는 98년 정권 교체 후 신임 경영진에 임명된 당시 한국부동산신탁(한부신) 사장이 전임 사장의 횡령 혐의를 고발한 전형적인 고발사건. 그러나 한부신과 경성그룹의 비리 의혹은 정식 고발장이 접수되기 전 모 신문사에서 대대적으로 비리 의혹을 제기한 바 있어 검찰 수뇌부도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박 전 검사장이 당시 대한부동산신탁 수사로 11명을 구속시킨 채 부장에게 사건을 덥석 맡긴 게 화근이었다. 채 부장은 “당시 경성그룹 사건은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형사부에 배당한 뒤 한부신 경영진을 처벌했으면 아무 문제 없었다. 그런데 이 사건을 특수부에 배당한 것 자체가 불행의 씨앗”이라고 단언했다.
일반 형사사건과 특수부 사건은 처리 형태가 판이하게 다르다. 형사 사건이야 고발내용을 대체적으로 확인하고 그 선에서 처벌을 마무리하는 게 통상적인 처리절차지만 특수부 수사는 보는 관점과 수사 내용 자체가 다르다. 당시 채 부장도 한부신 임원진의 단순 횡령혐의 입증 외에 이면에 가려진 뇌물수수 및 로비의혹 규명 쪽에 포커스를 맞춘 것.
채 부장은 당시 한부신 임원들의 횡령 혐의를 밝히고 곧바로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발을 옮겼다. 이 와중에 불거진 게 정대철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의 뇌물수수 혐의. 채 부장은 정 부총재의 3천만원 수수 혐의를 확인했으나 본안사건인 경성그룹-한부신 간의 특혜의혹과는 무관한 것으로 결론짓고 수사기록에 남긴 채 사법처리는 잠시 보류하고 정·관계 로비의혹 수사를 계속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수사가 쉽지 않았다. 경성그룹 임원진을 통해 돈을 주고 받은 정·관계 인사들의 혐의가 사건의 본질이지만 수사는 원점을 맴돌았다. 채 부장은 “정말 최선을 다했지만 허사였다. 오죽했으면 이 과정에 개입된 중간 브로커 1명을 알선수재로 구속했다가 나중에 ‘배달사고’가 입증돼 공소장 변경을 통해 사기 혐의로 기소했던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경성그룹 사건이 변죽만 울린 채 끝나갈 무렵, 사건이 터졌다. 한부신 및 경성그룹 관련 임원진 재판 과정에 정·관계 인사들의 ‘`청탁 리스트’ 명단이 모 언론사의 취재망에 걸리면서 불거진 것. 이른바 `‘경성그룹 리스트’로 불리는 정·관계 인사 15명 명단이 문제의 발단이다.
경성그룹에서 돈을 받지는 않았지만 한부신 대출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가 있는 정치인 명단을 언론에 공개치 않은 상황에서 공소장에 첨부한 게 화근이었다.
당시 이름이 오른 인사는 △김우석 전 내무부장관 △이환균 전 건교부장관 △김건호 전 건교부차관 △손선규 전 한국감정원장 △배재욱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 등이다. 또 정치권 인사는 국민회의 안동선, 김봉호, 조홍규, 정대철, 이용희 전 의원과 자민련 김용환, 김범명, 이원범, 이양희 의원 및 국민신당 서석재 의원 등이었다.
검찰의 축소 수사 의혹으로 파문이 확산되자 박순용 당시 서울지검장과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은 재수사 결정을 내렸다. 그리곤 당시 수사를 맡은 채동욱-문영호 수사라인을 한직으로 발령내며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채 부장은 이후 형사부로 발령난 뒤 부산지검 동부지청으로 ‘유배’됐다. 그러나 채 부장은 지금도 당시 좌천성 인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채 부장은 물 먹고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쫓겨나기 전 가진 수사팀과의 `‘쫑파티’에서 폭탄선언으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한다. 그는 폭탄주가 몇 순배 돌아갈 무렵 수사팀 전원에게 “2차 보강수사 과정에 정·관계 인사들의 뇌물수수 혐의가 추가로 드러나면 내가 사표를 내겠다”며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한 뒤 유배길에 올랐다.
비록 술자리에서 홧김에 한 얘기지만 수사팀 내부에서는 이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채 부장의 ‘욱’하는 성격을 감안하면 뭔가 ‘`사고’를 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후 경성비리 재수사 과정에 정대철 대표 외에 이기택 전 의원과 김우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수뢰혐의가 언론에 보도되자 채 부장은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사표 얘기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은근히 걱정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은밀히 수사팀에 알아봤더니 ‘본안사건과 전혀 관계없으니 사표 얘기는 꺼내지도 마세요’라고 하길래 안도했죠.”
정 대표와 채 부장의 악연은 그렇게 끝나는가 하더니 결국 5년 만에 다시 굿모닝게이트로 이어지고 있다. 검찰은 윤창렬 사장과 굿모닝시티 관련자에 대한 수사 과정에 정 대표의 수뢰혐의를 대부분 확인하고 국회에 체포동의서를 통보한 상태다. 그러나 정 대표는 완강히 버티고 있다.
정 대표의 버티기는 여러 측면에서 함수관계가 복잡하지만 이런 채 부장과의 악연도 무시 못할 변수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정 대표측은 이번 수사가 ‘채 부장의 `표적수사’라는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다. 채 부장이 5년 전 정 대표를 구속하려다 상부의 뜻에 따라 이를 철회한 뒤 이 때문에 날벼락을 맞고 이번에 화풀이로 굿모닝시티 건을 통해 정 대표를 다시 엮고 있다는 얘기다. 경성그룹 비리 사건은 대법원에서 정 대표 혐의 중 일부에 대해 무죄가 선고돼 현재 파기 환송심이 진행중이다.
정 대표측은 99년 경성비리 수사팀을 상대로 “검찰이 공권력을 남용했다”면서 헌법소원을 냈고 2001년 승소했다. 정 대표측은 “헌법소원에서 정 대표가 승소하자 서울지검 특수부가 정 대표에 대한 좋지않은 감정을 갖게 된 것 같다”라고 주장한다. 정 대표 사건을 우연찮게 서울지검 특수2부가 맡았고 채 부장이 연루된 배경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게 그들의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현재 검찰 분위기와 청와대-검찰 간의 기류변화를 살펴보면 이는 상당 부분 설득력이 떨어진다. 최근 검찰 내부에서 가장 널리 통용되는 단어는 `‘법대로’다. 서울지검의 대변인격인 신상규 3차장은 “(정 대표 금품수수 건은) 순수 형사사건 수사이고 3천5백억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경제사건”이라며 정 대표측의 정치자금 수수설을 일축했다.
채 부장과 신 차장은 틈날 때마다 “원칙대로 간다”는 말을 강조한다. 세 차례 소환통보 직후 전격 사전영장을 청구한 것도 검찰의 강경한 기류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의 이같은 기류변화는 이례적이다.
‘정치검찰’의 오명에 시달려온 검찰임을 감안하면 내부에서조차 묘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철저한 위계질서와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온 검찰 조직문화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청와대 기류에 민감한 검찰의 속성만 봐도 이같은 변화는 파격적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특등공신을 자처하는 정 대표를 전격 사법처리키로 한 것 자체가 혁명적 변신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이나 다름없는 “검찰 수사에 일절 관여치 않겠다”는 다짐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청와대와 검찰의 핫라인이 사라진 뒤 ‘`검찰 독립’ 분위기는 완연하다. 그 최첨단에 채동욱 부장검사가 서 있다.
박문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