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7억원으로 시작한 복합쇼핑몰 굿모닝시티가 1백% 분양에 성공하면서 그는 단숨에 1조원에 가까운 분양대금을 움켜쥐었고 그로 인해 ‘거대 기업 회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때부터 그는 ‘국내 부동산 업계의 큰손’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유통혁명의 선구자’,‘성공신화의 주인공’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윤 회장은 검정고시 출신이라는 점과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겪었다는 점에서, 그의 성공 스토리는 더욱 드라마틱하게 세인들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의 원대한 꿈은 결코 잡을 수 없는 ‘신기루’였다.
지난 6월28일 성수대교 북단 강변북로에서 검찰 수사진과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승용차까지 버리고 도주했던 윤창렬씨는 결국 체포되고 말았다. 그의 손목에는 차가운 수갑이 채워졌고, 결국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의 화려한 성공 신화가 ‘악몽’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 지난달 20일 종묘공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굿모닝 시티 계약자협의회. | ||
한국 정치판에 가공할 폭발력을 보인 윤창렬 회장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그의 생활상이 속속 공개되면서 윤씨는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명품 중독증 환자’, ‘제2의 차지혁을 꿈꿨던 실패한 사기꾼’ 등으로 낙인 찍히기 시작했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불행으로 점철됐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윤씨는 중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열네살에 중학교를 자퇴한 그는 인천에 있는 외삼촌이 운영하던 가게에서 목수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열아홉살의 나이에 그간 모은 돈을 모두 털어 직접 가구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건물 관리인에게 속아 밑천을 모두 날려버리면서 그는 절망에 빠져들었다.
그 후 무려 세 번에 걸쳐 자살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한 뒤 교회를 다니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렸다고 한다. 그는 학력 콤플렉스를 없애기 위해 중졸, 고졸 자격의 검정고시를 1년 만에 합격했다. 또 신분상승을 위해 서울대 법대를 목표로 삼고 공부했다고도 한다.
그는 스물여덟의 늦은 나이에 숭실대 법대에 합격했으나, 여기에 만족 못하고 다시 공부한 끝에 결국 지난 83년 연세대 중문과에 입학했다. 대학시절 그는 사법시험 통과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 하지만 이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2년 연속 연거푸 낙방하면서 그는 결국 법관의 꿈을 접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그 역시 실패의 연속이었다. 지난 89년 경기도 하남시 하수도 복개공사를 따내 20억원을 투자했지만 사업 자체가 무산되면서 한푼도 건지지 못했다. 그는 이어 지난 96년 한동토건을 인수, 온천개발이나 아파트 공사에 뛰어들었지만 역시 실패했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가 원했던 것은 단 한번도 이뤄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과 정신분석학자들은 그의 이러한 이력이 열등감을 낳았고, 그로 인해 성격이 삐뚤어지면서 허영심과 과시욕을 키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의 집에서 발견됐던 2백병이 넘는 수입 양주와 50여개의 최고급 선글래스 등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말 그대로 ‘흥청망청’ 돈을 써가며 자신을 과시했다고 한다. 특히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고향 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돈으로 발랐다’고 할 정도였다.
그는 사업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부친이 다니던 교회에 8천만원의 헌금을 내기도 했으며, 부친의 팔순 잔치에 참석한 고향 사람들에게 수표가 든 돈봉투를 건네며 성공한 사업가로 인식되기를 갈망했다. 지금 그의 고향에 낯부끄러운 ‘윤창렬 공적비’가 세워져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함께 일했던 굿모닝시티의 직원들에게는 “사업이 성공하면 18평 아파트를 한 채씩 사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회사의 경영책임자로서 직원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차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생색내기’에 불과했다. 굿모닝시티 계약자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직원들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로비자금으로 그렇게 엄청난 돈을 사용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술자리에서 그의 허세는 극에 달했다. 비록 그 자신이 술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룸살롱 아가씨에게 즉석에서 수백만원에 달하는 팁을 건넸다는 것이 전직 굿모팅시티 임직원들의 증언이다. 윤씨는 이렇게 즉흥적으로 돈쓰기를 좋아했다.
지난해 자신이 속해 있는 검정고시총동문회가 주최한 독거노인 돕기 행사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행사 관계자가 “돈이 없어 노인들이 끼니를 거를 때도 많다”라고 설명하자 윤 회장은 즉시 양복 주머니에서 ‘상당한 액수의 돈’을 꺼내 기부했다고 한다.
당시 옆에서 그를 지켜본 고향 후배 조모씨는“그때 형님(윤창렬)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행태를 두고 주변 사람들은 ‘젊은 시절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살아왔던 경험이 과시욕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유명세를 얻고 싶은 욕망도 상당히 강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업이 본격화되기 전인 2001년과 2002년 초반에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러 잡지에 인터뷰를 했다.
전직 굿모닝시티 관계자는 “별의 별 이상한 잡지에서 인터뷰를 하겠다고 해도 전부 다 응해줬다. 주변에서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윤 회장을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로 기억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그의 고향 후배인 김아무개씨는 “남들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서슴없이 도와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억했다. 최근 그의 집에서 매월 4천만원이 넘는 보험료 약정서가 나온 사실도 바로 이같은 그의 성품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의 또다른 고향 후배 최아무개씨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월 4천만원의 보험료를 낼 수 있겠는가. 모두 주변에서 도와달라고 하면 두말 없이 보험을 들어줬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허세를 많이 부리고 잘난 척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일부 지인들은 고개를 젓는다. 그를 잘 안다는 이모씨의 말이다.
“식사를 하자고 해서 만나면 항상 회사 근처의 삼겹살집이나 백반집에 가서 동태찌개를 먹기 일쑤였다. 정말 허세를 부리고 싶었다면 근사한 일식집에라도 갈 것 아니냐. 그 정도 돈이 있는 사람이 점심값을 아끼려고 하겠는가.”
지난해 여름 검정고시 총동문회 운동회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은 일부 사람들의 감동(?)을 사기에 충분했다. 당시 윤 회장은 사업이 한창 수직 상승세를 타고 있었던 때. 그렇게 ‘잘 나가는’ 사업가라면 운동회에 참석해 잠깐 얼굴만 비치고 갈 법도 하다. 동문회 한 관계자는 “하루 종일 땡볕에 앉아서 열심히 응원을 하더라. 잘 나가는 거물급 사업가치고는 너무나 소박한 모습이었다”고 회고했다.
굿모닝시티의 임원들 중 그를 ‘좋은 리더’로 기억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김아무개 이사는 극도로 말을 아끼면서도 “직원들에게 참 잘해주었다. 인간적으로 좋은 말도 해주면서 직원들을 격려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의 인간 됨됨이에 대한 논란과는 달리 경영 능력에 대한 평가는 역시 아주 혹독하다. 사업적인 면에 있어서 윤씨는 ‘과도한 집착과 매우 독단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업자금의 확보를 위해 군인공제회로부터 대출을 받으려 했을 때 공제회는 당시 윤 회장에게 전체 지분의 10%를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지분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며 아예 대출 자체를 포기했다는 것. 사업권에 대한 그의 집착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그는 어떤 일이든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누구에게도 일을 ‘위임’하지 않았다는 것이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는 자신이 이제까지 이뤄온 사업적 성과를 그 누구하고도 나누려하지 않았다. 굿모닝시티 임원들은 단지 그가 지시하는 것을 행할 뿐이었고 그 과정 자체도 매우 독단적이었다. 평직원들은 비밀리에 행해졌던 그 모든 과정에 대해서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밀실에서 이루어졌을 뿐이다.”
그는 올초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일등 중에서 특별한 일등이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가 얼마나 성공에 집착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굿모닝시티의 사훈 역시 ‘1등 정신’, ‘주인의식’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지나친 1등정신’을 발휘해 로비도 마다하지 않았고 ‘과도한 주인의식’을 가져 매우 독단적으로 사업을 전개했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 그도 사생활만큼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사업 관계로 절친했던 주변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비교적 평소에도 말수가 많지 않았다.
항간에는 그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도 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 투자자는“윤씨가 여러 명의 여자들과 미국 할리우드에서 유람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의 여자 문제는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지만 다수의 정황들로 어렴풋하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 회사 내에서는 절대로 여자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진술.
현재 윤 회장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두 가지의 상반된 얼굴로 남아 있다. ‘순진한 시골 출신 사업가’와 ‘허세와 욕망에 찌든 무능력한 사업가’가 그것이다.
과연 ‘인간 윤창렬’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그와 가깝게 지냈던 한 지인은 아쉬움을 섞어 이렇게 표현한다. “이처럼 큰 사업을 하기에는 너무 무능력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로비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순진’과 ‘욕심’을 떠나서 그의 무능력함이 지금 수많은 계약자들의 눈에 피눈물을 흐르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남훈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