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수원에서 열린 현대와의 경기에서 이 승엽은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홈런레이스 가 종착점에가까워질수록 그는 기도하는 마음으 로 방망이를 든다고 한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아시아 홈런 신기록 56호가 터질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이승엽의 요즘 심정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매스컴은 물론 야구팬들의 집중적인 관심 속에서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하루빨리 신기록 경신을 이루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야구를 즐기고 싶기 때문. 56호 홈런을 쳤을 때 소감도 미리 준비해두었다고 한다. “이제 제 할 일은 다 끝났습니다!” 16일부터 두산과의 홈 3연전을 앞두고 있는 이승엽, 신기록 달성까지 불과 3개 남은 홈런이 대구구장에서 터질지는 알 수 없지만 이승엽은 매 경기마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방망이를 들고 나갈 것이다.
―99년에 54개로 아시아 홈런 신기록 타이를 이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 그때와 지금은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
▲99년 때보다 관심이 덜해진 것 같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건가? 야구장에 관중이 별로 없다. 99년에는 내가 치는 홈런을 직접 보려고 오는 팬들이 정말 많았는데 지금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조금 재미없다. 신문을 보면 마치 내가 프로야구의 흥행 주인공인 것 같은데 야구장의 현실은 ‘초봄’이거나 ‘늦가을’처럼 좀 을씨년스럽다.
―워낙 이런저런 기록을 많이 올린 터라 신기록에 대해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것도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최고의 기록을 올렸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개인적으로도 영광스럽지만 요즘같이 경제가 힘들고 사회에서도 우울한 일들만 연속적으로 발생할 때는 56호 신기록 달성이 작은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따분하고 힘든 일상 생활에서 분위기 전환을 꾀할 수도 있고.
―투수들이 고의사구로 걸러서 내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그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본다. 상대팀 투수들이 내 기록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지 않나. 당연히 이기려고 나오는 건데 어떻게 해서든 타자가 공을 때리지 못하도록 하는 건 자연스런 현상이다.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투수를 원망해 본 적은 없다. 내가 하기 나름이니까. 또 볼넷으로 출루하게 되면 뒤 타자들한테 좋은 기회를 줄 수 있지 않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중이다.
▲ 8월22일 경기에 앞서 ‘폭력사태’에 대해 화해하는 삼성 김한수, LG 서승화, 삼성 이승엽, LG 이상훈 (왼쪽부터). 우태윤 기자 | ||
▲대구구장의 홈런이든 잠실구장의 홈런이든 홈런은 다 똑같은 거 아닌가? 그렇다고 잠실에서 홈런을 못 친 건 아니지 않나. 홈런의 ‘영양가’로 점수를 매기려는 건 나에 대한 다른 불만을 대신 나타내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그런 평가에 대해 별로 신경 안 쓴다. 이런저런 이야기에 다 귀 기울이고 살다가는 야구 오래 못한다.
―투수들과 인터뷰를 하다보면 상대하기 어려운 타자로 가장 많이 꼽히는 선수가 이승엽이다. 그러면서도 ‘밉지 않은 선수’라는 설명이 항상 뒤따르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말로 그렇게 봐주신다면 너무 고마운 일이다. 쟁쟁한 투수들이 많은데 그들을 상대로 홈런이나 안타를 뽑아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특히 송진우 선배의 공은 치기가 어려운데…. 공도 치기 힘들지만 평소 대선배라 상대하기가 무척 어렵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프로 생활을 시작하셨으니 10년 이상은 차이가 나는 터라 가벼운 인사를 드리는 것 외엔 다른 선배들한테처럼 살갑게 다가가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매스컴과의 인터뷰 때마다 나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해주셔서 항상 감사하다.
아, 참! 미움 받지 않는 비결을 물었나? 다른 거 없다. 무조건 인사 잘하기가 내 생활철학이자 신념이다. 아무리 밉고 원수 같아도 앞에서 열심히 인사하는 후배를 뭐라고 야단칠 선배는 없지 않나.
이승엽은 개인적으로 현대의 정민태를 좋아한다고 한다. 올해 정민태로부터 안타 하나 뽑아내지 못하다가 정민태를 상대로 첫 홈런을 날린 게 공교롭게도 그의 선발 21연승의 대기록을 깨는 결과를 낳고 말았지만 지난 6일 경기 후 정민태는 오히려 이승엽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이승엽은 이런 정민태를 보며 프로선수의 여유와 자신감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이승엽은 정민태에 대한 호감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사실 민태형한테는 빈볼로 엉덩이를 맞아도 웃으면서 걸어나갈 수 있다. 전혀 고의가 아니라는 걸 아니까.”
―올해 유독 빈볼로 몸 고생을 많이 한 것 같다. 빈볼이 들어오면 의식적으로 빈볼 여부를 알 수 있는지 궁금하다.
▲투수가 웃으면서 던져도 의식적으로 빈볼인지 아닌지를 느낄 수 있다. 고의성 빈볼이라고 생각될 때는 출루를 해도 정말 기분이 안 좋다. 울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떡하겠나. 잘 소화시켜야지 다음 타순에서 영향을 안 받게 되는 거 아닌가.
―지난 LG전에서 몸싸움이 있었던 일을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때도 빈볼로 인해 팀 전원이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몸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이 선수와 서승화가 주먹다짐을 벌이지 않았나.
▲팬들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야구장에선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서승화 선수랑 싸우려고 나간 건 아니었다. 선수들이 일제히 달려나가 몸싸움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상대가 내 멱살을 잡는 바람에 욱 하는 감정으로 손이 나갔던 거다. 순전히 실수였고 후회도 많이 했지만 팀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고 본다. 만약 또 다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다음부턴 절대로 주먹을 쓰지 않을 거다(웃음).
이승엽은 그 사건 이후 아버지 이춘광씨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고 한다. 야구 시작한 이래 좋은 이미지를 쌓아오다 뜻밖의 일로 인해 이미지가 실추된 데 대한 질책도 있었지만 찰나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데 대한 나무람이 훨씬 컸었다. “마지막에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너무 참다가 대형사고 칠 뻔했는데 잘 풀어냈다’고. 내 기분이 어떠한지를 잘 아셨던 거다.”
―상투적인 질문으로 들리겠지만 오늘처럼 4타수 무안타의 성적을 내거나 홈런을 기대했다가 무위로 끝났을 때는 어떤 기분이 드나.
▲그런 기억은 한시라도 빨리 잊어버리려고 한다. 저조한 성적을 잊지 못하면 다음 경기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야구장이 내 직장이나 마찬가지지 않나.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은 걸 집이나 숙소에까지 갖고 갈 경우 다음날이 힘들어지는 거나 비슷한 거다. 좀 다른 얘기가 될 것 같은데 나한테는 가족 이외에는 야구밖에 없다. 야구를 떠난 이승엽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생각하기도 싫다. 항상 ‘어떻게 하면 야구를 잘할까’를 머리에 달고 산다. 그러다보면 생각이 굉장히 단순해진다. 저조한 성적도 평소의 단순한 논리에 의해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되고. 다음 경기에서 만회하자고 벼를 뿐 크게 기분 나쁘거나 슬프거나 화나지 않는다.
―‘국민타자’로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지금, 과연 야구선수로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나.
▲남들이 보면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직 멀었다. 더 높은 곳이 분명 있는데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지 않나.
―야구팬들 사이에선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 과연 그곳에서도 국내에서처럼 홈런포를 터트릴 수 있을지 의견이 분분하다.
▲ 지난해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아내 이송정씨와. | ||
하지만 이승엽의 바람(?)과는 달리 김병현이 있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LA 다저스, 시애틀 매리너스, 애너하임 등에서 극동 담당 스카우트를 한국에 보내 이승엽에 대한 리포팅을 해온 사실이 밝혀졌고 이승엽도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카우트는 이승엽에게 홈런 타자가 아닌 중장거리포로 전향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봤을 정도. 이에 대해 이승엽은 “일단 진출하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 여기서 뭘 하고 싶다고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속내를 감췄다.
―야구 외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 예상되는 대답이 야구와 관련된 내용일 것 같다. 당신 인생의 전환기를 이룬 시점을 꼽는다면 언제인가.
▲94년 대학과 프로를 놓고 잠을 못 잘 만큼 고민을 했던 순간인 것 같다. 졸업 전부터 입학이 약속돼 있던 한양대에 들어가 미리 합숙훈련을 받다가 12월21일 수능시험을 보기 위해 대구로 내려왔을 때의 일이다. 학교 관계자가 같이 따라왔다. 당시 삼성에서 워낙 적극적으로 영입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심을 못했던 거다. 그런데 총 점수가 40점 이상이 돼야 특기생으로 입학할 자격이 주어지는데 36점이 나왔다. 시험을 치르다가 중간에 포기를 했기 때문이다. 시험을 보는데 갑자기 내 인생의 향방이 정말 궁금해지더라.
내가 시험을 잘 보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고 시험을 잘 못치면 프로로 갈 수 있는 기로에서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행동을 한 거였다. 아버지한테 연락도 안하고 삼성 스카우트 담당자와 함께 당구장에서 지냈는데 집에선 내가 증발됐다고 난리가 아니었다. 지금도 가끔씩 그때 그 순간이 생각난다. 시험을 보다가 중간에 나오기까지의 짧은 순간 동안 내 인생을 선택한다는 게 정말 어려웠다. 이승엽은 왼쪽 팔로 귀를 만지지 못할 만큼 팔을 제대로 펼 수가 없다. 중고등학교 때 왼손투수로 활약하며 엄청나게 혹사당한 결과다. 95년 1월 왼쪽 팔꿈치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은 이후 조금은 나아졌지만 완전히 제거된 상태가 아니라고. 만약 당시 왼쪽 팔이 아프지만 않았더라면 타자로의 변신은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란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어떤 스타일인가. 즉 경처가, 애처가, 공처가로 그 유형을 분류해본다면 어느 쪽에 가까운가.
▲애처가, 공처가는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경처가는 뭔가? (정말 그 뜻을 모르는 듯했다. 설명을 들은 뒤에) 조금씩 다 포함돼 있는 것 같은데…. 서로 존중해주고 무슨 일 있으면 상의해 나가면서 상대를 배려하고 인정해 주려고 한다. 그런데 난 남편으로선 좋은 점수를 못 받을 거 같다. 시즌 때는 피곤해서, 시즌 끝나고는 쉬고 싶어서 꼼짝 않는 스타일이라서. 여행도 다니고 쇼핑도 즐기면서 아내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가끔은 아내의 친구들한테 점수를 따기 위해 나름대로 서비스를 계획하지만 그때마다 이런저런 시상식 행사로 짬이 안 나더라. 이렇게 이기적인 남편 스케줄에 맞춰 사느라 아내가 무척 힘들었을 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승엽의 목소리가 점점 무거워졌다. 피곤하고 졸렸던 까닭이다. 그런데 친형보다 더 친하게 지내는 개그맨 김제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정색하며 “그 형은 정말 잘될 줄 알았다. 내가 홈런 친 것보다 그 형 잘되는 게 더 기분 좋다. 워낙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이라 별로 걱정은 안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은 생각에 늘 신경이 쓰인다”며 김제동에 대한 사랑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승엽이 무명 시절의 김제동을 얼마나 섬세하게 챙겼는지는 김제동과의 인터뷰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야구선수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지만 자연인 이승엽도 그에 못지 않게 매력적이고 너무나 인간적인 남자라는 걸 느끼게 한 심야의 전화 데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