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에 대한 출금 사실은 언제 처음 노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일까. 강 법무장관의 발언과는 달리 법무부에서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시점은 지난 8월 말인 것으로 <일요신문> 취재결과 단독 확인됐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 전 비서관이 당초 ‘대통령이 출마를 권유했다’고 밝혔다가 파문이 일자 ‘내가 출마를 요청해 허락을 받았다’고 입장을 번복한 배경에도 따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노 대통령이나 청와대 핵심 인사들이 최 전 비서관의 비위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총선 출마를 명분 삼아 사퇴시키려 했고, 최 전 비서관은 영문을 모른 채 ‘출마하라’고 권유하는 대통령의 뜻에 따라 ‘총선출마’를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일 최도술 전 비서관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총선출마 발표’ 배경에 대해 “다 지난 일인데 뭘…”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실제 최 전 비서관에 대한 ‘출금’ 조치는 지난 2일 손길승 SK 회장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기 훨씬 이전에 이뤄졌다. 손 회장의 최근 진술을 통해 최 전 비서관에 대한 비위 혐의가 처음 밝혀진 것이 아니란 얘기다.
수사 관례상 최 전 비서관에 대한 비위 혐의는 이미 SK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에 의해 훨씬 이전에 감지됐고, 돈을 전달한 쪽으로부터 구체적인 정황과 액수를 수사한 뒤 최 전 비서관을 소환 조사하기 위해 ‘출금’ 조치를 취해 놓은 것으로 추론된다. 검찰이 최 전 비서관에 대한 혐의를 출금 조치 훨씬 전에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이 경우 ‘주요 인물’인 최 전 비서관의 혐의 내용 등은 법무부를 통해 청와대에 사전에 보고됐을 가능성이 있다. ‘최 전 비서관에 대한 비위사실을 보고 받은 청와대가 사전에 최 전 비서관을 현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이후 상황에 대비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이 생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현직 총무비서관이 비위 혐의로 검찰에 소환을 통보받는 것과 전직 비서관이 비위 혐의로 거론되는 상황은 커다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 전 비서관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가 비서관을 그만둔 직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출금 시점이 조율되지 않았나 하는 의문도 남는다. 출금을 관장하는 법무부가 최 전 비서관에 대해 출금 조치를 취하고 사후에 보고했을 가능성보다는, 먼저 출금을 시켜야 할 만한 사유가 있다고 보고한 뒤, 출금 조치를 취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 카드를 들고 나온 이상 최 전 비서관의 비리에 대한 보고가 이뤄진 시점이 그가 현직에 있을 때냐 아니면 퇴임 이후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안으로 덮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 전 비서관의 출금 사실 보도 이후 노 대통령의 “재신임” 공언, 그리고 “국민투표 재신임” 발언으로 보다 구체화되며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한 현재의 ‘재신임 정국’은 이런 충격적인 카드가 미리 준비된 것이 아니었냐는 의구심마저 낳고 있다.
어차피 진실은 하나다. 만약 최도술 전 비서관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가 이뤄지기 전에 노 대통령이 이 같은 보고를 받았다면, ‘재신임’ 결심은 지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장고 끝에 나온 결론인 셈이다.
구자홍 기자 jhk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