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담당 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전북지방경찰청 전경.
지난 9월 28일 0시 50분께, 전북 익산시 한 아파트에서 ‘약촌 오거리’ 사건을 담당했던 전북지방경찰청 소속 A 경위(44)가 숨진 채 발견됐다. 전북청에 따르면 A 경위는 숨지기 전날 동료와 오후 11시까지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온 뒤, 가족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 경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위에 대해선 경찰의 강압수사와 진범이 드러나 열린 약촌오거리 사건 재심 선고가 가까워지면서 심적인 부담을 크게 느꼈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그는 지난 8월 25일 재심 증인출석 이후부터 아내에게 “너무 힘들고 괴롭다”고 심정을 털어놨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청은 A 경위의 죽음을 무겁게 받아들이면서도, 재심과의 연관성을 비롯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해보겠다는 입장이다. 1995년 경찰 생활을 시작한 A 경위는 2000년에 발생한 약촌오거리 사건 당시 형사계에 갓 들어온 초임인 데다, 배정된 팀에서도 막내여서 역할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재심에서 사건 결과가 달라진다 해도 법적이나 신분적 제재를 받을 가능성도 없었다.
A 경위의 소식을 접한 동료 경찰들도 말을 아끼고 있다. 이는 약촌오거리 사건 재심이 진행 중인 데다, 최근 전북 완주에서 발생한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도 재심이 결정돼 담당 형사들이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하거나 출석을 앞둔 상황을 고려한 반응으로 보인다. 전북청 관계자는 “직원들 모두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사건과 관련해 지금으로선 따로 할 말은 없다”고 말했다.
A 경위의 사망으로 약촌 오거리 사건 관련자 가운데 사망자가 셋으로 늘었다. 숨진 사건 피해자 택시기사 유 아무개 씨(당시 42세)를 제외한 숫자다. 먼저 A 경위의 선배였던 당시 사건 담당 형사가 수년 전 사고로 사망했다. 2012년엔 이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인물의 지인 B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 재수사 촉구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13년 전 진범 검거 당시 검찰이 사건을 다시 수사했으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심이라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며, 앞서의 ‘비극’들도 막을 수 있었을 거라는 지적이다. 재심을 진행 중인 당사자와 주변 관계자는 물론, 강압 수사를 한 것으로 드러난 당시 수사 경찰까지도 고통을 받고 있다.
2003년 약촌오거리 사건의 진범 검거 당시, 진범과 그의 지인 B 씨는 범행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사건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자백했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피의자(진범, B 씨)들 진술 외에 다른 보강 증거(범행 도구)가 없다”며 경찰에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다.
이에 따라 진범 수사를 맡은 경찰이 증거를 확보하려 3년 전 버려진 흉기를 찾기 위해 쓰레기장 등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검찰에 신청했지만, 검찰은 이마저도 “칼에 대한 특정이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하지만 당시 경찰 수사 과정에서 진범은 물론 흉기를 본 지인 B 씨와 또 다른 지인 4명의 일관된 진술을 확보한 상태였다. 수사가 지지부진하면서 진범과 B 씨는 진술을 번복했고, 결국 검찰은 무혐의 처리했다.
재심이 진행 중인 지금까지도 검찰의 입장은 앞서와 같다. 법원이 지난 2013년 “진범은 따로 있다”는 취지로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지만 검찰은 여전히 재수사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약촌 오거리 사건 재심을 맡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는 “가슴 아프다. 무거운 책임도 느낀다. A 경위가 겪은 심적 고통 어디엔가 나 또한 자리 잡고 있음이 분명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다만 “재심 과정에서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들을 증인으로 신청한 이유는 분명하다. 당시 자백을 받는 과정에서 위법한 일이 있었는지, 고문과 조작 수사가 벌어진 것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며 “잘못을 인정하고, 당사자가 사과하고, 또 피해자가 관용을 베푸는 일을 바랐지만 지금까지도 인정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이어 “하루 빨리 재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검찰이 지체하면 할수록 또 다른 불상사가 생길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약촌 오거리 사건이란? 택시기사 살해 진범은 따로 있었다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께, 전북 익산시 영등동 소재 약촌오거리 버스정류장 부근에서 택시기사 유 아무개 씨(당시 42살)가 괴한에게 흉기로 어깨·가슴 등 10여 군데 찔린 채 발견됐다. 그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사건 발생 사흘 뒤인 8월 13일 새벽 4시 40분, 익산경찰서는 인근 다방에서 배달을 하던 최 아무개 씨(당시 15살)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입고 있는 옷 등에서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가 ‘자백’했기 때문이었다. 사건 발생 직후 최 씨는 당시 사건 목격자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사건 현장을 지나다 평소 안면이 있던 경찰에게 남자 2명이 뛰어가는 뒷모습을 봤다고 말한 뒤였다. 그러나 8월 11일 최 씨가 선배들과 충남 천안으로 가버리자 의심을 받았다. 이후 경찰은 최 씨를 구속했고, 택시 앞을 지나가다가 운전기사와 시비가 붙어 오토바이 공구함에 있던 흉기로 유 씨를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1심 재판에서 최 씨는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고문과 폭행, 회유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재심 과정에서 밝혀진 기록들을 보면, 최 씨의 자백은 수시로 바뀐다. 핵심 내용이 지속적으로 바뀌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진술이었다. 하지만 2001년 2월 1심 재판부는 징역 15년을 선고한다. 최 씨는 2심 법원에서 다시 자백한다. 형량을 줄이는 게 최선이라는 국선변호인의 설득 탓이었다. 2심은 징역 10년을 선고한다. 최 씨는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다. 그렇게 사건은 잊히는 듯하다 2003년 6월, 전북 군산경찰서가 첩보를 통해 진범과 지인 B 씨를 검거한다. 검거 직후 진범은 범행 사실을 모두 자백했다. 하지만 물증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진범은 자백을 번복했다. 수사는 2006년 종결됐다. 최 씨는 만기출소 후 2013년 재심을 청구했고, 광주고등법원은 최 씨가 불법 체포·감금 등 가혹행위를 당한 점, 새로운 증거가 확보된 점 등을 들어 재심을 결정했다. 검찰은 항고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2015년 12월 검찰의 항고를 기각했다. 재심은 현재 광주고법에서 진행 중이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