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문화체육관광부 김종 차관이 안민석 더민주 의원이 제기한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노웅래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에는 미르재단 관계자라고 주장한 인사의 육성도 담겨 있다. 해당 관계자는 녹취록에서 ‘차은택 문화창조융합본부장(1급)이 자신의 지인들을 재단 임원에 앉혔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CF감독 출신인 차 본부장은 정윤회 씨의 전처이자 ‘비선 실세’ 논란을 지핀 최서원(개명 전 이름 최순실) 씨와 가까운 사이로 전해진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차은택이 하도 청와대를 드나들어 부처 사무관들끼리는 ‘VIP와 특수관계에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돌았다”고 전했다.
또 이 인사는 문체부를 관통하는 모든 의혹의 중심에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안민석 더민주 의원은 녹취록이 공개된 당일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김 차관이 K스포츠재단 설립과 운영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안 의원은 김 차관이 ▲K스포츠재단 초대이사장을 지낸 정동구 씨와 과거 같은 재단(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근무했고 ▲정동구 씨의 후임자로 지목된 이들과 만났으며 ▲김 차관의 지인이 K스포츠재단에서 발주한 일감을 수주했다는 정황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김 차관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증거가 나오면 책임지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체부 주변에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김 차관 등 ‘윗선’의 압력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앞의 인사는 “지난해 가을 문체부 콘텐츠정책국은 ㅊ국장의 지시로 ‘이름 없는 재단’과 관련한 정관 및 사업 내용을 검토하게 됐는데 실무진은 해당 재단에 별다른 사업성이 없고, 정관 문구도 허술해 내부적으로는 승인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그 재단이 바로 미르(재단)였다”라며 “실무진은 ‘윗선’끼리 오간 얘기를 모르니까 그렇게 한 건데 ㅊ국장이 다시 차관에게 연락받고 ‘당장 승인하라’고 지시해 필요한 설립 요건을 갖추게 됐다”고 전했다.
김종 차관은 재단 승인 과정에서 ㅊ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주장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콘텐츠정책국은 1차관 소관이다. 만약 걸었다면 그 쪽이 걸었겠지 (그 직원이) 착각한 것 같다. 난 모른다”고 해명했다.
ㅊ국장은 지난 6월 30일 차 본부장이 근무한 문화창조융합본부 부단장으로 파견됐다. 재단 승인 과정에서 ‘중간 간부’로 있던 ㅊ국장이 다시 재단 설립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는 단체의 ‘핵심 간부’로 발령난 것이다. 이에 대해 ㅊ국장은 전화 인터뷰를 거절했으며 문자를 통해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서류상 미르재단은 지난해 10월 25일 창립총회를 열고 정식 재단으로 출범했다.
지난해 12월께 대기업 관계자들 사이에서 공유된 ‘재단법인 케이스포츠 설립 추진계획’ 문건을 보면 K스포츠재단은 삼성, 현대차, SK, LG 등 대기업으로부터 300억 원 규모의 출연금을 걷기로 하고, 재단 승인에 필요한 서류를 갖춰 12월 29일 창립총회를 열기로 계획했다. 이후 실제 창립총회는 올 1월 5일 열렸지만 미르재단과 정관, 창립회의록은 물론 재계 서열별 출연 규모까지 일치하는 두 재단이 잇따라 문체부의 승인을 받은 것은 여러 뒷말을 낳았다.
22일 열린 국회 본회의 경제에 관한 대정부질문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의혹과 관련해 질문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행정 처리’는 더 있다. 지난해 4월 ‘제332회 국회 교문위 회의록’을 보면 당시 배재정 더민주 의원은 ‘늘품체조’와 관련해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질의한다. 배 의원은 전문성도 검증되지 않은 늘품체조를 정부가 홍보하게 된 경위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시연에 나선 이유를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저는 몰랐습니다. 차관이 진행하셨지요”라고 답했다. 이날 김 장관은 차 본부장과 사제지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시연하고 홍보 동영상 촬영에 응한 늘품체조는 김 차관의 검토와 승인을 거쳤다. 영상 촬영은 차 본부장의 회사가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회의록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11월 26일 촬영에 응하는데, 체조를 만들고 시연에 응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두 달 안팎이다. 당시 안민석 의원은 “(영상을 보면) 박 대통령이 연습을 많이 한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종 차관은 “매달 ‘문화가 있는 날’ 행사를 하는데 대통령께서 뮤지컬도 보고, 연극도 보는 그런 행사”라며 “그 달에는 미리 시행하기로 돼 있던 체조를 한 것뿐이며 (대통령 연습 부분도) 잘못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간 정치권은 김 차관이 정부부처 인사를 독식하고, 평창동계올림픽 등 외부 체육단체 인사에 개입했다는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여기에는 일부 친박 인사들까지 가세했다. 김 차관은 “전혀 개입한 적 없다. 2014년에 장관이 업무 조정하면서 그런 말이 나왔는데 국회의원들께서 의혹을 제기하시니 일단은 받아들였다. 나중에 한 새누리당 중진의원은 내게 와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 자꾸 한양대 출신을 문제삼는데 정작 찾아보면 별로 없다. 체육진흥공단 같은 데서 인사에 대해 물어보면 ‘내부 승진시켜라’, ‘알아서 처리하라’고 말한다”고 답했다. 김 차관은 3명의 장관(유진룡·김종덕·조윤선)이 교체되는 동안 차관직을 유지했다.
공교롭게도 김 차관과 갈등을 겪은 것으로 알려진 정·재계 고위 인사들은 대부분 곤경에 처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최순실 씨의 딸(정유연, 개명 이름 정유라)과 관련된 의혹에 연루돼 옷을 벗었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심지어는 차 본부장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내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과 관련해 김 차관은 “나중에 오히려 조양호 한진 회장 측에서 ‘오해해서 미안하다’, ‘풀자’고 말했다”며 “커뮤니케이션에 일부 오해가 있던 것이지 나중에는 협의해서 잘 하자는 쪽으로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실세 차관’의 힘은 이번 정부 핵심 과제 중 하나인 체육단체 통합 과정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통합에 반대하던 수영연맹 회장은 검찰 수사를 받았고, 지난 6월 김 차관과 만난 구자열 LS그룹 회장은 자신이 회장직을 겸임 중인 대한사이클연맹과 전국자전거연합회의 통합안에 한 달 만에 사인했다. 지난해 김 차관을 포함한 문체부 간부들은 체육단체 통합을 추진하며 각 체육단체 대표를 맡고 있는 기업인과 회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차관은 “구자열 회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다른 분들은 만난 적 없다“며 ”당시 단체 간 통합 사례가 처음이어서 초청을 받고 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체육계는 현재 제1대 통합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준비 중이다. 여러 후보군 가운데 장호성 단국대 총장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로 평가받는 인사 중 하나다. ‘비선 실세’ 논란에 휩싸인 최순실 씨는 단국대에서 학사·석사 과정을 밟았다. 대한체육회장 선거 문제와 관련해 김 차관은 “선거 개입 같은 거 절대 없다. 체육계가 얼마나 소문이 빠른데 특정 후보를 밀 수 있겠나. 난 그리고 최순실 씨 모르고 단국대 출신인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외곽 지원설은)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