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금원 회장은 7∼8년 전 처음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후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그렇지만 강 회장을 잘 아는 이들은 그를 가리켜 ‘노무현 마니아’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노 대통령에 대한 강 회장의 ‘애정’이 남다르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 또한 강 회장에 대해선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다. 밤새 소주잔을 기울이며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최측근 가운데 한 명이 바로 강 회장인 것이다.
하지만 강 회장은 요즘 야당으로부터 ‘뭇매’를 두들겨 맞는 신세다. 한나라당이 ‘대통령 측근 비리 관련 특검법’에 목을 멨던 것도 어찌 보면 강 회장을 ‘벌거벗기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읽히고 있다. ‘강 회장 흠집내기’가 곧 노무현 대통령에게 정치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호재인 까닭이다.
‘평범한 기업인’이었던 강 회장이 뉴스메이커로 부상한 것은 지난 6월 초. 노무현 대통령의 전 후원회장 이기명씨의 경기도 용인 땅의 1차 매입자가 자신임을 스스로 밝히면서부터였다. 이후 강 회장은 몇 차례의 ‘튀는’ 발언으로 정가의 시선을 한몸에 받아왔다. 강 회장의 기업인답지 않은 거침없는 언행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그의 성장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1952년, 강 회장은 현재 핵 폐기장 건설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주민들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측근에 따르면 강 회장은 부안 출신이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서울에서 다녔고, 고등학교 때 다시 전주로 내려가 전주공고를 졸업했다. 하지만 그가 왜 전북 부안→서울→전주 등지로 옮겨다녔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 지난 10월2일 국회 재정경제위 지방국세청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 강금원 회장(왼쪽)과 이기명 전 노무현 대통령 후원회장. | ||
지난 99년 3월에는 섬유업에서 한 발 더 나가 패션업에 뛰어들어 중견의류업체인 (주)캬라반을 인수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001년에는 충북 충주시에 위치한 남강CC를 인수, 시그너스CC로 이름을 바꿨다.
강 회장이 경영하는 창신섬유의 연간 매출액은 3백12억원으로, 미국과 일본 유럽 등지에 연간 1천6백만달러어치의 원단 등을 수출하는 알짜기업이라는 평이다. 자산 규모는 1백33억원이며, 전체 직원수는 1백35명. 그는 현재 부산신평염색공단 이사와 한국염색연합회 이사를 맡고 있다. 창신섬유는 군 모포를 납품해 왔는데 올해 군납 모포 전부를 낙찰받은 것을 놓고 한나라당에선 ‘특혜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렇듯 자수성가한 강 회장은 자신의 재산을 “수천억원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부산지역 상공인들 사이에서도 강 회장은 “빚이 하나도 없는 기업인”으로 통한다.
또 강 회장은 하청업체에 어음결제를 하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강 회장의 한 측근은 “회장님은 어음이라는 것을 모른다. 모든 결제는 현금으로 한다”고 말했다. 과거 누군가가 어음 얘기를 꺼냈지만 어차피 줄 돈인데 왜 가진 돈 놓고 어음으로 사람들 고생을 시키냐는 게 강 회장의 반문이었다고 한다. 강 회장의 한 지인은 그가 언론 인터뷰에서 ‘집에 수억대의 돈을 지니고 있다’고 했던 말도 그의 이런 현찰주의 때문에 나온 말로 풀이했다.
부산 상공인들의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강 회장은 성격이 화통하다. 입바른 소리를 잘한다”고 평했다. 하지만 또 다른 인사는 “다혈질형 기업인”이라며 다소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그렇다면 ‘전문경영인’인 강 회장이 노무현 대통령과 어떻게 처음 만났을까. 이에 대해 강 회장은 지난 6월 부산지역 기자들과 부산시 부산진구 초읍동에 있는 자택에서 간단하게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노 대통령과는 7∼8년 전 부산 롯데호텔에서 4, 5명의 정치인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만났다. 그때 노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이후 절친하게 지내왔다. 이기명씨나 안희정씨, 문재인씨 등 노 대통령의 측근들도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고 밝혔다.
강 회장은 지난 98년 노 대통령이 당시 국민회의 서울시장 경선 후보직을 사퇴하고, 그해 7월 종로구 보궐선거에 출마할 준비를 할 때 노 후보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때 강 회장은 “최대한 돈을 지원하고 싶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강 회장은 노 대통령 곁에서 티 나지 않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이 무렵부터 강 회장에겐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라는 꿈이 움텄다고 한다.
강 회장은 지난해 자신의 ‘꿈’을 이룰 일생일대의 기회를 맞았다. 강 회장은 대선을 앞두고 두 팔을 걷어붙이고 뛰었다. 그는 “아는 사람들한테 칼을 들이대다시피 해서 돈을 후원받았다. ‘한나라당에 1억원을 주면, 노무현한테는 1천만원이라도 후원하라’고 협박조로 얘기하기도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된 다음에도 강 회장의 ‘스폰서’ 역할은 계속됐다.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노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고 참신한 정치신인을 발굴한다는 미명 아래 ‘부산 상공인 1백인회’ 결성을 시도했고, 부산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싱크탱크 역할을 할 각계 인사 1백명이 참여하는 ‘지식인 포럼’도 결성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강 회장은 이 같은 프로젝트를 ‘대통령에게 누가 될지도 모른다’는 주변 인사들의 우려로 인해 스스로 포기해야 했다.
이에 대해 강 회장과 십년지기인 <월간 부산> 편집인 겸 발행인 백승진씨는 “일각에서 ‘노통’(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인물로 신당을 추진했던 조성래 변호사와의 파워게임에서 밀렸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며 “그 사람(강 회장)은 파워싸움에서 밀릴 사람이 아니다. 귀찮고 시끄럽고 하니까 그만둔 것이다”라고 말했다.
▲ 지난 6월 이기명씨의 용인땅 문제가 논란이 됐을 때 강금원 회장은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문재인 수석(사진)이 물러나야 한다고 공격한 바 있다. | ||
강 회장은 노 대통령과의 사이를 ‘아름다운 관계’라고 표현한다. 이 ‘관계’는 최근 강 회장을 둘러싼 갖가지 구설수가 오르내림에도 불구하고 변함 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월1일에는 자신이 경영하는 시그너스CC에서 노 대통령 내외와 강 회장 부부가 라운딩을 즐기기도 했다.
강 회장은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 문제로 지난 9월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나갔다가 여야 의원들이 질의 순서를 둘러싸고 1시간 이상 승강이를 벌이자 “(이건) 국감이 아니라 코미디”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날 이후 강 회장에 대해 정가에서 곱지 않은 시선이 쌓이고 있는 시점이었음에도 노 대통령은 이에 전혀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강 회장 주변 사람들은 강 회장이 ‘수천억원대의 재력가’이지만 생활은 검소한 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강 회장의 한 측근은 “(강 회장은) 수천억원이나 있는데도 부산 집에는 가정부 한 사람 없다. 손님들이 가도 사모님이 직접 밥을 해서 내온다. 전기요금 아낀다고 형광등도 절반만 켠다. 노모와 딸이 살고 있는 서울 집도 전셋집이다. 부동산 투기를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도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고 말한다. 심지어 그는 “(강 회장) 자식들도 ‘거지’처럼 하고 다닌다”는 말까지 했다.
강 회장의 또 다른 주변 인사는 “부산 집의 소파와 식탁 등이 모두 낡은 것들이다. 그래서 검찰도 강 회장 집을 압수 수색할 때(검찰은 지난 19일 강 회장의 집과 사무실, 골프장 등 다섯 곳을 압수수색했다) 느끼는 것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강 회장이 최근 무척이나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그를 ‘흑심 있는 후원자’로 보는 정가의 시각이나 ‘돈 많은 돈키호테’ 정도로 여기는 세인들의 시선 때문이다. 강 회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강 회장이 얼마 전 부산에 내려와 그의 집에서 소주를 한잔했는데 그는 ‘울고 싶다’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일단 마음먹으면 속내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게 그의 성격인데 할 말을 가슴에만 담아 두자니 속이 터질 법도 하다는 게 그 인사의 얘기다.
아무튼 그토록 언론 앞에서 ‘당당’했던 강 회장은 요즘 잔뜩 움츠러든 상태다. 선봉술씨와의 돈거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데다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핵폭탄이 되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고 있기 때문. 청와대 참모들의 시각대로라면 강 회장은 이제 말 한마디 때문에 노 대통령에게 ‘천냥 빚’을 지고 있는 신세다. 상당수 참모들은 그의 거침없는 말 탓에 대통령이 적잖은 부담을 안게 됐다고 여기고 있다.
강 회장은 자신의 얘기를 부분 부분 잘라내 확대포장했다고 언론에 화살을 돌리면서 ‘화’를 삭이는 모습이다. 또한 자신이 대가를 바라고 노 대통령을 후원했다고 보는 정가의 시각에도 불만이 많은 듯하다. 그럼에도 그는 이제 더 이상 세상을 향해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그 말이 또 ‘대통령에 누가 될까봐’ 입을 닫았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공통된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