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의 사돈’ 민경찬씨가 6백53억원을 모금했다고 스스로 주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파란만장한’ 과거 행적이 이번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은 지난 6일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구속되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그가 핫뉴스의 중심에 오른 것은 시사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6백53억원을 모금했다’는 말을 한 것이 계기였다. 노무현 대통령 사돈인 그가 수백억원의 투자금을 모았다는 얘기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
민경찬이란 이름은 그 이전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정치권에서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특히 민씨 사건은 ‘권력형 비리의혹’으로까지 확대되며 야권에서는 ‘국정조사’에 이어 ‘특검’까지 도입할 기세다. 총선을 불과 70여 일 앞두고 뉴스메이커로 급부상한 대통령 사돈 민경찬씨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 신상
민경찬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의 처남이다. 그는 노건평씨의 부인 민미영씨의 바로밑 남동생이다. 현재 민씨와 함께 주목을 받고 있는 민상철씨는 민씨의 동생이다.
민경찬씨의 형제관계는 삼남매. 그는 1960년생으로 올해 44세. 누나인 민미영씨는 민씨보다 네 살 위인 48세이고, 막내동생 민상철씨는 세 살 아래인 41세다.
민씨의 집안은 부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안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 민씨 집안이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80년대 초반. 노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민씨의 누나인 민미영씨와 결혼하면서 사돈관계를 맺었다. 민씨 형제와 집안에서는 노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부터 상당한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미영씨는 최근 동생 경찬씨가 특정경제가중처벌법 위반으로 구속된 이후 “죽고 싶은 심정”이라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민경찬씨는 90년대 초반에 결혼해 현재 아들과 딸을 두고 있다. 큰딸의 나이는 올해 열 살이다.
- 학적
1960년생인 민씨는 지방 명문고인 마산고를 졸업한 뒤 지난 84년 부산 소재 인제의대에 입학, 90년에 졸업했다. 일부에서는 그가 또다른 A대 의대를 다닌 것으로 알려졌으나 인제의대가 맞다.
그의 학적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부분은 대학진학 시기. 정상적으로 그가 학교를 다녔다면 그의 대학 입학시기는 79년이나 80년쯤이어야 한다. 그가 84년에 대학에 진학했다는 것은 같은 또래에 비해 4~5년 정도 늦은 셈.
그가 왜 늦게 의대에 진학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민씨 주변에서는 고교 졸업 후 개인 사업을 하다가 뒤늦게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인제의대 관계자는 “민씨가 84년에 입학한 것은 맞다”며 “정확한 졸업연도는 학적부를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90년에 졸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취득한 민씨는 통상 의대 졸업생들이 ‘전문의’를 취득하기 위해 밟는 ‘레지던트’ 과정을 밟지 않았다.
- 히포크라테스의 배신자
민씨는 졸업 후 동창들 사이에서도 요주의 인물로 지목됐다. 민씨와 함께 의과대학을 다녔던 K씨는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민씨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이런 저런 안 좋은 소문이 들려와 동문들 사이에서 ‘제명하자’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민씨의 경우 조금 엉뚱한 면이 있었다면, 의대 공부가 만만치 않아 공부에 매진해도 힘들 텐데, 다방면에 관심을 보였다”며 “예를 들면 88올림픽이 끝나고 89년엔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적이 있는데, 그때 부동산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이런 저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고했다.
▲ 민경찬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를 통해 “투자자금이 너무 들어와 걱정될 정도”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 ||
B씨는 “선배들 사이에서 ‘뭔가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들도 있었고, 동기나 후배들도 ‘제명해야 한다’는 얘기가 2000년 즈음에 적지 않았다”며 “대학 졸업 이후 (민경찬씨가) 보인 행적이 대학 동문들에게 누가 된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인제의대 동문들은 민경찬씨를 동문회에서 ‘제명해야 한다’고 했던 것일까. 의대 졸업 후 민씨의 행적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민씨는 지난 95년 경남 마산에서 처음으로 개인 병원을 개원했다. 당시 병원 이름은 ‘민경찬 의원’이었다. 민씨는 병원 개원 1년여 만에 또다시 부산에서 ‘부일의원’을 개원했다. 그러나 부산에서 개원한 민씨는 ‘바가지 진료’로 물의를 빚어 병원을 개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폐업하기에 이른다.
민씨는 지난 96년 3월 <부산일보>에 의료사건으로 기사가 실릴 정도로 말썽을 일으켰다. 민씨가 당시 부산 소재 모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환자를 빼돌려 성형외과적으로 봉합을 해준다며 얼굴의 5cm가량 찢어진 상처를 치료해주고 수술비로 1백10만원을 받는 등 폭리를 취했다는 것이 이 기사의 주요내용이었다.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취득한 민씨가 일반 외과수술에 불과한 봉합 수술비를 ‘성형외과’ 치료 명목으로 받는 등 폭리를 취하려다 들통났던 것이다.
의대 동문 S씨는 “의사면허가 있는 민씨가 진료행위를 하는 것이 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다”며 “의사는 외과도 할 수 있고, 성형외과도 할 수 있고, 소아과, 산부인과도 할 수 있다. 다만, 문제가 됐던 것은 민씨가 진료비를 과다 청구, 폭리를 취하려 했던 부분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민씨가 여러 차례 병원을 개원했다 폐업했다는 보도가 나오던데, 그 얘기는 다 맞는 말”이라며 “그때 사건으로 민씨가 터무니없는 의료비를 청구한다는 소문이 많았고, 또 언론에 보도되고 하니까 동문 선배들을 중심으로 ‘동문회에 누가 되니 제재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 사업가나 의사나
마산과 부산에서 두 차례 병원을 개원했다 실패한 민씨는 이후 서울로 진출, 의학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민경찬 법의학사무소’를 열고 의료사고 피해환자 상담을 명분으로, 피해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본 뒤 조언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던 것.
민씨가 ‘법의학사무소’를 운영할 때 얘기다. 당시 서울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던 L씨는 의료사고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의뢰인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었다.
L변호사는 “99년쯤 차트(진료기록)를 분석해주는 의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그 의사에게 차트분석을 의뢰한 적이 있었다”며 “그런데 한 사람의 차트를 분석해 주는 대가로 무려 3백만원을 요구해 포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의사가 민경찬씨였다”고 회고했다.
민씨는 법의학사무소 운영 경험을 토대로 2000년 9월 <히포크라테스의 배신자들>이란 제목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민씨는 이 책에서 ‘기본적인 검사도 하지 않고 수술을 하는 의사’의 사례를 소개하는가 하면, ‘치료를 잘해드렸어도 어차피 사망할 사람이에요’라며 위독한 환자의 치료에 소홀했던 의사의 사례를 기록하는 등 몇몇 의료계의 잘못된 관행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수의 양심적인 의료계 인사들은 민씨의 책 내용과 관련해 ‘몇몇 소수의 사례를 일반화시켰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민씨가 졸업한 인제의대 동문회에서 ‘민경찬씨를 제명하자’는 요구가 빗발치던 시점도 이때였다.
민씨가 <히포크라테스의 배신자들>이란 책을 펴낸 때는 마침 의약분업 도입으로 의료계에서 파업이 한창 진행중이던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매스컴에서는 민씨의 책과 민씨의 주장을 제법 비중 있게 다루기도 했다.
또 의료분쟁과 관련한 민씨의 활동 덕택에 민씨는 한국소비자보호원 분쟁조정위원회 의료전문위원과 YMCA시민중계실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 자금난으로 경매에 넘어간 민경찬씨의 김포 푸른솔병원. 그는 마산 부산 서울 등지에서도 병원을 개업했었다. | ||
민씨는 이미 97년에 월간지 <신동아>에 ‘충격제보, 현직 의사가 고발하는 의료사고 불공정 감정 백태’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 실패한 벤처사업
민씨는 90년대 중반 의료분쟁이 한창일 때 천리안통신에서 ‘사고(SAGO)’라는 코너를 운영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사고’는 의료사고에 대해 일반인들을 상대로 상담하는 코너였다.
그러다 그는 ‘법의학사무소’를 운영했고 이어 인터넷 붐을 타고 ‘아파요닷컴’(www.apayo. com)이란 인터넷병원을 개설했다. 그가 이 사이트를 열 당시 의약분업과 관련해 의사들의 파업이 계속되던 시점이었다. 특히 당시는 의약분업이 도입돼 처방전이 없으면 약을 구하기 어려워진 직후였다. 민씨는 인터넷병원 ‘아파요닷컴’을 통해 공짜로 환자들을 진단해주고, 처방전까지 발급해줬다.
‘아파요닷컴’에 회원가입을 하고,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글을 올리면 민경찬씨와 뜻을 같이하는 각 분야별 65명의 의사들이 그에 맞는 처방을 알려줬다. 처방전을 인쇄해서 약국에 내면 그에 따라 약을 지을 수 있다는 게 당시 인터넷병원 ‘아파요닷컴’의 설명이었다.
‘아파요닷컴’은 의약분업 시행과 이에 따른 ‘전공의 파업’ 등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기하급수적으로 회원수를 확장했다.
당시 민씨를 인터뷰했던 월간지
그러나 ‘아파요닷컴’은 서초구 보건소로부터 ‘의료법위반혐의’로 서초경찰서에 형사고발됐다. 사이버 ‘진료’는 몰라도 ‘처방’은 불법이라며 고발했던 것.
이에 민씨는 무고혐의로 맞고소하는 등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고발에 맞고소가 이어지자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가 ‘아파요닷컴’을 의료법 및 약사법 위반으로 고발함으로써 이 사이트의 활동은 급격히 위축됐다.
그후 ‘아파요닷컴’ 사이트는 “2003년 7월 마침내 아파요닷컴이 국민들 앞에 돌아옵니다”라는 예고 문구만이 남겨져 있는 상태로 지금까지 방치돼 있다.
의대 졸업 이후 좌충우돌하는 민경찬씨의 행적으로 인해 민씨는 이미 인제의대 동문들 사이에서는 ‘소문난 인물’이었던 셈이다.
민씨의 의대 동문 K씨는 “민경찬씨가 수백억원을 모았다는 얘기를 듣고 ‘이번엔 또 무슨 사고를 치려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모르긴 몰라도 그 사람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동문은 거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다른 동문 K씨는 “그 사람은(민경찬씨) 동문회에 한 번도 나온 일이 없다”며 “자꾸 그 사람 때문에 동문회가 들먹거려져 불쾌하다”고 말했다.
민씨의 병원 개·폐업은 2000년 이후에도 몇 차례 계속됐다. 경남 마산에 H의원을 열었다가 4개월 만에 문을 닫았고, 2001년 5월에는 서울 성북구에서 S의원을 개원했다가 그해 10월 자진폐업했던 것.
지난 2002년에는 경기 김포에 7층짜리 ‘푸른솔병원’을 지어 운영했지만, 적자에 허덕이다 결국 대출받은 돈을 갚지 못해 은행으로부터 가압류당해 건물이 경매에 들어간 상태다.
민씨는 최근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6백53억원’이란 ‘거액의 투자자금을 모았다’고 언급,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경찰 특수수사과에 긴급 체포된 민씨는 ‘펀드’와는 무관하게 사기혐의로 구속됐다.
이 때문에 민씨를 오래 전부터 알아온 인제의대 동문들은 “민씨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통령 사돈’이란 이유로 거액을 투자했는지는 모르지만, 민씨를 아는 사람이라면, 특히 우리 동문들이라면 절대 10원 한푼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통령 사돈’이라는 특수한 지위에 있는 민경찬씨가 ‘6백53억원’이라는 거액의 투자자금을 자신의 입을 통해 발언한 진위(眞僞)는 과연 무엇이었을까.그의 과거 행적을 통해 이번 사건을 반추해 보면 어느 정도의 실마리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경찰의 계속되는 수사 결과가 주목된다. 또한 ‘국정조사’와 ‘특검’까지 공언하고 나선 야당이 국정조사와 특검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 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