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앤문의 한 관계자는 “당시 문 회장은 국세청 등에 발이 넓은 로비스트가 필요했고, 반면 김 부회장 역시 자신이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번듯한 명함이 필요했다”면서 “결과적으로는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동업 관계였다”고 전했다.
사채시장에서 만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지금도 베일에 싸인 부분이 많다. 처음엔 같은 사업가로서 서로 뜻이 통하는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자신의 뒷배경을 과시하고 국세청 등에 친분을 갖고 있던 김씨에게 문 회장은 점점 매료된 것으로 보인다.
2002년 3월 문 회장에 의해 김씨가 썬앤문그룹 부회장으로 전격 영입된 것도 이 때문. 당시 썬앤문은 계속되는 세무조사로 인한 수백억원대의 세금 부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약 1백70억원에 달하는 세금이 김씨의 수완에 의해 23억원으로 낮춰지자 문 회장은 이때부터 김씨를 무조건 신뢰하게 되었다고 한다. 로비를 몰랐던 문 회장이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정치자금을 건네기 시작한 것도 김씨의 ‘코치’에 의해서였다고.
그러나 이에 대해 김씨는 지난 10일 청문회에서 “썬앤문그룹이 처음 1백71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하게 되자 내가 70억원 정도로 낮출 수 있었고, 그 이상은 내 능력으로는 낮출 수 없다고 문 회장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문 회장이 노 후보에게 전화했다고 말했으며 이후 23억원으로 낮춰졌다”고 반박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두 사람의 밀월 관계가 깨진 것은 지난해 3월 문 회장이 김씨를 1백15억원대의 농협 사기대출 혐의로 고소하면서부터. 당시의 상황에 대해 한 관계자는 “김 부회장이 썬앤문에 들어와 나름대로 역할도 했지만, 점차 영역을 벗어나 자기 몫 챙기기에 집중하면서 서서히 문 회장과 틈이 벌어진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워낙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귀띔했다.
발이 넓었던 김씨에 대해 열등감을 느껴왔던 문 회장은 당시 자신과 친분이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자신감이 충만했다. 반면 김씨는 계몽사 인수를 통해 자기 사업에 정신이 없었다. 이렇듯 욕심을 계속 키워가는 김씨가 문 회장에게 부담스러운 존재로 작용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문 회장이 김씨를 과소평가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씨의 실수를 기회 삼아 그를 검찰에 고발하는 것으로 ‘제거’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하지만 김씨는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였다. 치밀한 성격의 김씨는 곧바로 반격에 들어갔고, 결국 오늘에까지 이르게 됐다.
최근 특검 수사와 청문회 등을 통해서 베일에 가려진 두 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김씨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아무개 이사는 법정 증언에서 “당시 김 부회장의 대출은 문 회장의 묵인하에 이뤄진 것이며, 다만 생각보다 금액이 지나치게 많아 두 사람간에 불화가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단순한 동업자 관계보다 더 긴밀한 관계였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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