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 대통령측근비리 청문회에 출석한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 | ||
문회장은 김씨의 욕심이 점점 과해지는 것을 느끼자 '잽'을 생략하고 곧바로 '강펀치'부터 날렸다. 한방에 KO를 노린 것이다. 이미 그는 자신의 뒤에 대통령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느끼고 있었다. 김씨의 존재가치가 상당히 희석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두 사람 주변에서는 “문회장이 김씨를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문병욱 - 단순 우직
“대통령이 참 딱하다. 어쩌다가 그런 인사(문병욱)까지 후배로 두게 되어서….” 부산상고 동문회 한 관계자의 말이다.
동문들 사이에서는 지금 썬앤문그룹 문병욱 회장이 마치 노무현 대통령의 재정적 후원자 또는 최측근 인사나 되는 것처럼 비치는 것에 대해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이양한 전 재경 동문회장은 “문 회장은 철저한 장사꾼이다. 돈 버는 것밖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됐을 때에도 시큰둥한 채 동문회 모임에 관심도 없었다. 그땐 당선 가능성이 없었을 때였으니까. 심지어는 자기 소유인 빅토리아호텔을 동문 모임 장소로 내주면서 밥값을 다 챙겨 받았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문 회장이 노 캠프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은 대선 직전인 2002년 말부터였다. 공교롭게도 당시 문 회장의 소유 호텔들은 극심한 부채에 시달리며 위기를 맞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노 후보는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성공으로 당선 가능성이 치솟고 있던 때였다. 동문회의 한 관계자는 “어느날 갑자기 유세 현장에 문 회장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 말했다.
문 회장과 노 대통령의 공식 관계는 1998년부터 시작된다. 부산상고 동문 선후배 관계이긴 하지만 4년의 간격이 있기에 두 사람이 함께 스크린될 기회는 없었다. 졸업 후 한 사람은 사시 합격으로 부산에서 법조인의 길을 걸었고, 또 한 사람은 서울에서 사업에 뛰어들며 엇갈린 길을 걸었다.
경남 함안 출신으로 부산상고 졸업 후 일찌감치 상경한 그는 현대시멘트 경리부에서 약 3년간 근무했다. 그후 서울 강북의 신설동을 중심으로 여관 목욕탕 사업을 시작하며 돈을 벌었다. 여관업을 하면서 그는 호텔 사업을 꿈꾼 것으로 알려졌다. 그 첫 실현이 바로 지난 87년 미아동에 있는 빅토리아호텔의 인수였다.
여관업으로 잔뼈가 굵은 그는 호텔 사업에도 남다른 수완을 발휘했다. 당시 그의 현금 동원력은 무시 못할 수준이었다고 한다. 사채를 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동문회 내에서도 그는 성공한 사업가로 통하고 있었다.
한 동문 관계자는 “57회 출신들 가운데서 사업이나 금융쪽으로 잘나가는 동문들이 제법 많았다.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문 회장이 동문회 회장을 맡았다는 것은 57회 동기모임 회장을 맡았다는 말이 잘못 알려진 것이다. 문 회장은 자신의 사업 때문에 전체 동문회보다는 동기모임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런 문 회장이 98년 명수참물이라는 생수 사업에 뛰어들면서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됐다. 당시의 문 회장은 썬앤문그룹이라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이른바 본격적인 종합 관광레저 사업가의 꿈을 키우던 시기였다.
사업 확장을 모색하던 중 당시 장수천 사업으로 어려움을 겪던 노 대통령측의 권유로 역시 부산상고 동문인 다른 사업가와 함께 여기에 뛰어들었다. 장수천의 한 관계자는 “막상 문 회장은 생수 사업에 큰 매력을 못 느끼는 듯했다”면서 “결국 그 사업은 흐지부지됐고, 문 회장 역시 손해를 좀 봤다. 이후 문 회장과 노 대통령측과의 관계는 더욱 소원해진 것 같이 보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당시 생수사업의 참여로 문 회장은 소중한(?) 인맥을 접하게 됐다. 바로 노 대통령의 최측근이라고 하는 안희정 등과의 만남이다. 특히 노 대통령을 대신해서 생수 사업을 관장했던 안씨와의 안면은 결국 대선 직전 감세 청탁과 로비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아무튼 문 회장은 99년 경기도 이천의 미란다호텔 인수를 기폭제로 해서 2000년 인천 송도비치호텔, 2001년 서울 뉴월드호텔 등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일약 호텔업계의 강자로 부각했다. 지난 2002년 10월에는 한국호텔경영학회로부터 호텔경영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꿈대로 이후 경기도 양평의 TPC골프장을 비롯, 여행업체인 TPC투어, 서포건설, 대지개발, 토속음식점인 성산회관 등 그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종합 관광레저산업의 형태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문 회장은 지난해 검찰 조사에서 자신의 재산 규모에 대해 “부채 다 빼고 하면 한 2백억원 정도는 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무렵 김성래씨가 등장한다.
문 회장 주변에서는 그에 대해 “약삭 빠르다기보다는 대단히 우직하고 어찌보면 좀 단순해 보이는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돈을 버는 것 외에는 달리 관심이 없었기에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에게 로비를 할 줄도 몰랐다는 것.
그가 최근 사업을 확장하면서 감세 청탁에 목을 맨 것 역시 ‘세금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관계 실세 인맥의 필요성도 김씨의 영입을 통해서 절실히 깨달았다는 것.
우직하고 거친 만큼이나 문 회장의 일처리 또한 서툴렀음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동문회 주변에서 한탄이 터져 나오는 것도 이 때문. 매끄럽게 처리되었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일들이 실제보다 엄청나게 부풀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 회장은 한때 사업파트너였던 김씨를 지난해 3월 농협 사기대출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는 결정적 패착을 두게 된다. 동문회의 한 관계자는 “바보가 아닌 이상 그 고소가 자신에게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을 예상 못했을 수 있나. 그만큼 문 회장은 사업가라기보다는 그냥 장사꾼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 지난 10일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김성래씨.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썬앤문그룹의 부회장인 김성래씨는 50년생 범띠이다. 흔히 범띠 여성들을 가리켜 사납고 드세다고 하는데 그는 실제 그랬다.
좋게 말하면 여걸이었고, 나쁘게 평가하자면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썬앤문의 한 관계자는 김씨를 가리켜 “무서운 여자다. 한번 한다면 기어코 해내는 그런 여자였다”고 평가했다.
그가 걸어온 이력은 다소 독특하다. 73년 J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이후 곧바로 불우청소년 야간학교를 운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된 그의 이력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많다. 김씨는 사회 생활을 위해 자신의 이력도 상당히 ‘손질’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과시욕이 대단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김씨는 82년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일을 했으며 87년에는 민자당 충남 금산지구당 위원장을 맡았던 것으로 지금껏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하지만 삼성그룹측은 김씨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는 이력에 대해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룹 본사의 비서실이라면 모를 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김씨는 삼성생명 보험회사에서 근무한 적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구당위원장의 이력도 의문이 뒤따르기는 마찬가지. 각 매스컴에서는 김씨가 이 당시의 지구당위원장 경력을 통해 구여권의 정계 인사들과 인맥을 쌓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87년 당시엔 민자당이 생기기 전이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민정당이라고 밝히기도 했고, 지구당위원장이 아닌 부위원장 출신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나이 불과 30대 후반에 불과한 무명의 여성이 집권 여당의 지구당위원장을 맡았다는 것도 상식에서 벗어나 보인다. 확인 결과 김씨가 아니라 김씨의 남편인 장아무개씨가 당시 지구당위원장을 맡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김씨는 남편 장씨와 이혼한 상태다. <시사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장씨는 당시 정권 실세였던 전경환씨(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동생)의 후광을 등에 업었다고 한다. 장씨는 새마을운동본부에도 몸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씨는 당시에도 한 차례 ‘사고’를 친 것으로 이번 청문회 과정에서 추궁당하기도 했다. 남편의 국회의원 출마를 돕기 위해 회사돈을 몰래 빼돌렸다가 발각되어 구속된 적이 있다는 것. 이 사건으로 결국 김씨는 금산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다고 한다.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딱히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97년 장애인복지재단 이사장의 이력이 눈에 띌 뿐이다. 하지만 이때도 김씨는 인맥 쌓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대학 동문을 적극 활용했다. 국제경영대학원 과정을 다니기도 했다.
김씨는 남다른 친화력과 사교성을 타고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삼성생명 보험설계사 시절에도 타고난 수완으로 연일 최고의 보험 실적을 올렸고, 87년에는 입사 5년 만에 대전 지역의 한 영업소 소장을 맡기도 했다.
김씨가 특히 남다르게 집착한 인맥은 주로 국세청 공무원들이었다.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그는 거의 출근하다시피 국세청을 드나들며 숱한 공무원들과 친분을 쌓아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 활동을 위한 감세의 필요성을 이미 터득한 셈이다.
정계 실세와 가깝다는 소문도 뒤따랐다. 특히 구여권측 인사들과 친하다는 얘기도 나왔고, 지난 DJ정권에서도 실세 몇몇과 친분이 두터웠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정권 실세 P씨의 얘기도 이때 나왔다.
김씨는 2000년 E사와 B건설의 대표이사 명함을 들고 본격적인 여성기업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김씨가 문 회장을 만난 것은 이 무렵인 것으로 알려졌다. B뱅크 등 금융업에도 손을 댄 김씨가 사채시장을 통해 문 회장을 만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씨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결국 김씨를 섣불리 건드렸던 문 회장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씨는 문 회장이 자신을 궁지에 몰자 측근들과 대책회의를 갖고 문 회장에게 역공을 취할 카드로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이를 녹음까지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구속된 이후 김씨는 자신에게도 파편이 튈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곧바로 문 회장을 불법 세금 감면 청탁 등으로 고발했으며, 철창 안에서 40여 쪽에 달하는 장문의 탄원서를 작성하는 치밀함을 선보이기도 했다.
썬앤문 사건을 꾸준히 추적해왔던 한나라당의 홍준표 의원측 역시 김씨에 대해서는 고개를 흔들고 있을 정도. 홍 의원측은 “김씨는 단 한마디의 증언이라도 반드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인지를 꼼꼼히 따져보고 치밀하게 하는 사람”이라며 “모르긴 몰라도 문 회장 보다는 훨씬 고단수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