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1일 법무부 업무보고에 참석한 강금실 법무장관(오른쪽)과 송광수 검찰총장의 시선이 각각 위와 아래로 향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를 주도한 시민단체 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다. 강 장관측이 “검찰이 법무부에 사전 보고도 없이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은 법무부령 위반”이라며 대검을 상대로 진상조사에 나설 뜻을 밝히자 송 총장은 “나를 조사하라”며 정면으로 치받았다.
결국 이번 일도 이전 몇 차례의 ‘강-송 갈등’ 때와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선까지 나가지 않고 봉합됐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리 머지 않은 장래에 검찰 인사문제 등을 놓고 다시 한번 일합을 겨룰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때는 아마도 서로의 직을 건 ‘진검승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싸움은 어느 한 측이 더 옳고 그른 차원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검찰개혁’이라는 공통의 시대적 화두를 풀어나가는 데에서 서로의 직책과 해법, 소신이 다르기 때문에 충돌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승부는 관전자 입장에서 한층 흥미진진하면서도 위태로워 보이지만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기고 지는 식의 싱거운 결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각자 특유의 강단과 매력으로 높은 대중적 인기와 관심을 끌고 있는 ‘강효리’와 ‘송짱’의 이야기는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그리고 그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맺을 수 있을 것인가.
우선 강 장관의 인생 이력을 설명할 때 빠뜨릴 수 없는 핵심 어휘로는 ‘반골’ 과 ‘자유인’을 꼽을 수 있다.
1981년 사시 23회에 합격한 뒤 83년부터 판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강 장관은 96년 변호사 개업을 할 때까지 14년간 ‘재조’ 법조인으로 몸담고 있는 동안 기존 사법부 질서와 관행에 반하는 ‘소신 행보’로 법조계 안팎의 눈길을 모았다.
무엇보다 그는 94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재직할 당시 소장판사들의 ‘사법개혁 건의서’ 파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5공 군사독재 시절 형사단독 판사로 재직하면서, 민주화 시위를 벌이다 집시법 위반으로 즉심에 넘어온 서울대생들을 잇따라 무죄 방면해 공안당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가정법원으로 ‘격리’(?)되기도 했다.
사실 기존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그의 반골 성향은 유신 치하인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교내 탈춤반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싹튼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대학동기들은 “(강 장관이) 운동권으로 분류하기는 어려웠지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의 전 남편 김태경씨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씨는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정통 운동권 출신. 두 사람은 대학 재학 때부터 선·후배 관계로 사귀다 84년 결혼에 골인한다.
강 장관은 부산지법 판사로 재직하던 88년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 ‘이론과 실천’을 운영하던 남편 김씨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번역해 출간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현직 판사의 배우자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 것. 그럼에도 ‘강 판사’는 당당했다. 그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에 굴하기는커녕 김씨 구속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주장하는 장문의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96년 서울고법 판사를 끝으로 변호사로 개업한 이후 그의 사회참여 및 개혁 행보는 한층 가속화됐다. 즉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가입했고 여성 변호사로서는 처음으로 이 단체의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99년 9월 민혁당 사건 변호인을 맡은 데 이어 같은해 11월에는 납북 귀환어부 함주명씨를 불법 감금하고 고문한 혐의 등으로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을 검찰에 고발했다.
강 장관의 이런 반골 성향은 그의 호방하고 자유로운 ‘예인 기질’과도 맞닿아 있다.
▲ 장관에 임명된 뒤에도 화려하고 자유로운 패션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강금실 법무장관. | ||
그가 ‘음주가무’(?)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그는 장관 취임 이후 검사들과 ‘폭탄주’ 몇 순배를 거뜬히 돌릴 정도로 술을 제법 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술 자체보다는 술자리를 즐긴다고 하는 편이 맞다. 사람들과 허물 없이 어울려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술 친구도 적지 않다. 그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인사동에 있는 화가 이현씨의 화실 등지에서 종종 회동해 술자리를 하는 술친구로 언론인 고종석씨, 시인 황인숙씨와 김정환씨, 김진석 인하대 교수 등을 들었다.
노래 부르기도 좋아한다. 공적인 자리에서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등 애창곡을 선보일 정도. 피아노 실력도 기본 이상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대학 시절 서울대 고전음악 감상실에서 DJ를 하기도 한 그는 한 인터뷰에서 “평소 클래식을 많이 듣는데 국악도 좋아한다. 특히 실내악을 좋아한다. 국악 중에서는 서도민요를 좋아한다”고 자신의 폭넓은 ‘음악 편력’을 소개한 바 있다.법무부가 재소자를 위한 클래식 음악 선집을 만들어 일선 교도소와 구치소에 배포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강 장관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춤’이다. <일요신문>에 여러 차례 소개됐듯 진주 교방춤의 대가 김수악 선생으로부터 살풀이를 전수받았는데, 김 선생으로부터 “판사고 변호사고 다 때려치우고, 나하고 같이 춤이나 추자”고 권유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예술가적 면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족히 책으로 묶어 낼 정도의 습작 시를 써왔고, 그림도 틈틈이 그린다고 한다. 문장 실력도 빠지지 않아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읽고 쓴 독후감과, 변호사 시절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소설가 장정일씨가 음란물 출판 혐의로 피소됐을 때 쓴 ‘장정일을 위한 변론’ 등은 대표적인 명문으로 꼽힌다. 그는 ‘변론’ 글에서 “마음이 음란해지는 것은 마음의 주인이 책임져야 할 일이지 장정일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썼다.
반면 송 총장은 원칙과 정도, 공평무사를 중시해 ‘대쪽’과 ‘뚝심’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경남 마산 태생인 송 총장은 1971년 사시 13회에 합격한 뒤 육군 법무관을 거쳐 줄곧 검사의 길을 걸어왔다. 서울고를 나와 서울법대에 진학했다는 것 말곤 송 총장의 성장 이력에 대한 정보는 대외적으로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원래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닌 데다 부하 검사들에게 개인사에 대해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형이 삼성전기 송광욱 상무라는 사실도 대검 중수부가 지난해 11월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삼성전기를 압수수색한 이후에 비로소 세간에 알려졌을 정도.
강 장관이 남편의 사업실패로 경제적인 고통을 겪다가 이혼해 홀몸이 된 것과 달리 송 총장은 대학 시절부터 연애한 부인 강영옥씨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순탄한 결혼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또 강 장관이 지금도 6억7천여만원의 빚더미에 올라 국무위원 중 재산이 최하위인 반면, 송 총장은 후보자 시절 서울 강남과 경기도 용인에 아파트 두 채를 갖고 있는 것이 국회 청문회 때 논란이 된 것처럼 재산도 비교적 넉넉한 편이다.
‘기획통’ 검사로 분류되는 그는 사시 13회 동기 중 대검 중수부장 등을 지낸 ‘특수통’의 김대웅 변호사, 대검 공안부장 등을 역임한 ‘공안통’의 김원치 변호사와 함께 ‘트로이카’를 형성했었다. 법무부 검찰 1, 2, 3과장 등 요직을 맡아 검찰 인사와 제도 개선 등에 관한 기획 업무를 주로 했고, 현재의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건설본부장을 맡는 등 행정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서울지검 부장검사 시절에도 공안이나 특수부장은 맡지 않고 형사부장으로만 일했다.
수사경력으로는 서울지검 형사3부장 시절 교육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경원대 상지대 입시부정사건’을 지휘해 대학총장과 전직 국회의원, 학부모 등 20명을 사법처리한 것이 눈에 띈다. 2001∼2002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인사적체 해소를 위해 재경 지청장과 차장의 기수차를 종전 2기에서 1기로 줄이는 일종의 ‘서열파괴’ 인사를 단행해 주목을 받았다.
▲ 검찰총장에 임명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뚝심’과 ‘대쪽’의 표정인 송광수 검찰총장. | ||
강 장관과 달리 ‘가무’는 물론이고 ‘음주’도 즐겨하지 않는 편이다. 지난해 9월 인사문제 등으로 서먹해진 강 장관과 과천의 한 보신탕집에서 한 ‘심야 회동’ 당시 폭탄주 6∼7잔을 마신 것이 화제가 됐을 정도다.
술에 얽힌 일화로는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의 ‘폭탄주 실언’사건 이후 부산지검장 재직시 부하 검사와 직원들이 야유회를 가서 폭탄주를 돌린 사실을 나중에 듣고, 폭탄주를 돌린 부서별로 한 달치 수사비를 삭감한 사건이 유명하다. 당시 송 총장은 “나도 부하들을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못한 책임이 있으니 수사비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해 부하 검사들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한다.
또 골프와 관련해서는 공직자 골프 금지령이 내려진 수 년 전 여름휴가를 다녀온 부하 검사로부터 복귀 신고를 받는 자리에서 그의 오른손이 유난히 까맣게 그을린 것을 보고 “앞으로는 오른쪽 장갑도 끼게. 검사가 손 색깔이 달라서야…”라고 ‘언중유골’의 충고를 던졌다는 얘기가 회자된다. 골프를 칠 때 왼쪽 장갑만 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송 총장의 재치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학연이나 지연보다는 업무능력 위주로 부하를 평가하고, 한 번 눈 밖에 나면 그것으로 끝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깐깐하다는 평도 널리 알려진 바다. 원칙과 소신을 중시하는 그의 면모는 일찍이 70년대 중반 초임 검사 시절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주재한 ‘유신’ 교육장에서 손을 들고 일어나 “앞으로 검사들을 상대로 이런 교육은 안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에서 잘 드러난다.
‘법대로’를 고집하는 그의 ‘검사스런’ 품성은 ‘야성’이 강한 강 장관과 구별짓는 핵심 포인트 중 하나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온 강 장관과 달리 그는 총장 후보자 청문회 때 “남북 분단 상황에서 국가안전을 지키기 위해 만든 법으로 북의 대남 적화노선이 포기되지 않는 상황에선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송두율 교수 사건이나 촛불시위 지도부 수사 등과 관련한 두 사람의 견해가 다를 수밖에 없는 연유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송 총장 역시 독특한 매력과 향취를 풍기고 있다는 평이다. 사석에서는 어눌한 듯하면서도 유머 넘치는 말솜씨로 ‘분위기’를 띄운다는 것.
대선자금 수사가 한창일 때 취재 기자들이 매일 아침 출근하는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수사 경과를 묻는 일이 몇 달째 이어졌음에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성실히 취재에 응하던 그의 모습은 사심 없고 통이 큰 인물이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그는 또 최근 ‘촛불시위 영장’ 사건과 관련해 시민단체 인사가 자신을 공박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논리적으로 글을 잘 썼던데 좀 더 사실관계를 파악했더라면 더 좋은 글이 됐겠다”라고 말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강효리’와 ‘송짱’은 서로 살아온 이력과 기질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지만 저마다의 매력과 카리스마로 수많은 팬을 몰고 다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현재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대검찰청 송광수안대희팬클럽’(http://cafe.daum.net/newgumchal)에는 3천6백여 명의 네티즌이 회원으로 있고, 강 장관 팬클럽 중에 가장 규모가 큰 ‘강금실 법무장관을 좋아하는사람들’(http://cafe.daum.net/kangkumsil)에는 7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중이다.
검찰의 수사 독립과 개혁 필요성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강 장관이 법무부 인사권과 감찰권을 이용한 검찰의 ‘문민 통제’를 중시하는 데 반해, 송 총장은 검찰 조직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참여 정부’ 출범 이후 법무·검찰 역사에 이미 굵직한 족적을 남긴 `스타 장관’과 `스타 검사’가 ‘끝내는 한 길에 하나’가 될지, 서로의 차별성을 확인하며 ‘작별’을 고할지에 국민들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
김인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