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제가 화면에서는 복어처럼 나오죠”라며 웃는 그의 외모는 생각보다 꽤 괜찮았지만, 김용만과의 데이트는 역시 그의 인간 됨됨이에 매료된 시간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의 ‘연예인’과의 유쾌한 만남이었다.
개그맨이라기보다는 MC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김용만. 그래선지 그는 사람을 ‘웃기기’보다는 ‘배려’하는 법을 안다.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브레인 서바이버’를 진행하는 그의 모습을 봐도 알 수 있다. 그가 언제나 상대방을 깎아내리지 않는 ‘고수들만의 멘트’를 적절히 날리는 것을.
역시 ‘브레인 서바이버’ 얘기부터 먼저 시작했다. ‘브레인 서바이버’는 그에게 MC로서 최고의 자리에 서게 한 프로그램이다. 일반인을 매주 한 명씩 선정해 출연하도록 하는 ‘국민대표’ 코너를 마련한 것도 이 같은 인기에 부응하기 위함이다.
─요즘 특히 ‘국민대표’가 화제다. 아는 사람이 청탁 좀 해줄 수 없냐고 부탁도 하더라.
▲제가 아는 분들도 그 자리에 한번 앉아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근데 앉혀놓으면 또 못하더라. 으아∼ 정말 못한다(웃음). 일단 기계 누르는 것에서부터 몇 점씩 까먹고 들어간다. 그게 보기보다 어렵다. 늦게 누르는 경우가 가장 많고, 잘못 눌러서 지우고 다시 누르려면 당황해서 또 못하고.
평소 친구들과 수다로 ‘트레이닝’
─한번에 16명을 이끌면서 진행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제작진들이 워낙 준비를 많이 한다. 기본적인 줄기는 대본에 있는 대로 가고 아무래도 방송에 나오는 재미있는 부분들은 현장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순간순간 부딪히는 ‘마찰음’을 좋아해서 애드리브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 애드리브를 위해 평소 어떤 연구를 하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트레이닝을 한다. 우리들끼리 ‘세세조’(세세거리면서 조잘거린다는 뜻으로 만든 이름이란다)라고 이름 붙여 유재석 지석진 김경민 이런 애들(?)끼리 모이는데, 예를 들어 ‘어디 갈래’라는 주제 하나만 가지고 가로등 밑에서 한 시간 동안 얘기한다. 그리고 마침내 어디 갈까를 정해서 거기 가면 또 거기 가서 몇 시간 동안 떠들고. 하하, 그게 평소의 개그 공부다. 개그라는 건 ‘무한한 공기’와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위의 공기처럼 편안하게 주고받는 대화에서 감을 얻는다.
─‘브레인 서바이버 코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요즘은 ‘올챙이와 개구리’가 가장 인기 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떡 먹는 용만이’는 이젠 너무 익숙해져서 고민인데, 워낙 간판 코너라서 없앨 수가 없다. 컴퓨터 그래픽 등을 통해 변화를 주고 있다.
─‘노브레인 서바이버’도 자주 보나.
▲가끔 본다. 그거 진행하는 표영호가 대학 때부터 친구인데, 내 습성을 너무 잘 알고 있다(웃음). ‘브레인’ 하면 ‘노브레인’ 만들고 앞으로는 <섹션TV>도 한번 바꿔서 해 볼 생각이라고 하더라. 패러디를 참 잘하는 친구다.
─한 인상연구가가 당신에 대해 이런 분석을 했다. 호감 가는 무난한 인상이어서 MC로서 다작을 할 수 있다고.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별로 티가 안 난다는 설명이다(웃음).
▲아, 잘 보셨네. 맞는 말씀이다, 하하하. 근데 장단점이 있는 거 아니겠나. 남들이 얘기해 주시는 저 나름대로의 장점은 안정감이 있다는 거. PD들이 그걸 좋아하신다(웃음). 대신 특별한 색깔이 없다는 게 단점이다. 그걸 내가 깨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내 성격상 잘 안 된다. 억지로 뭘 해도 티가 나고 나 자신이 거북하다. 내가 하고 싶은 진행방향도 그저 물 흐르듯이 편안한 것이다.
─MC로서 역할모델이 있나.
▲있다(세 번이나 ‘있다’고 대답했다). 그건 굉장히 중요하다. 맨 처음에는 주병진 선배님이 참 좋았다. 그래서 병진이형처럼 되려고 노력을 했고, 그리고 (이)경규형도 좋은 모델이었다. 둘이 합해놓은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임하룡 선배님의 인간성과 조영남 선배님의 재치와 색깔, 그건 정말 대가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전)유성이형님까지 모두 다섯 분이다. 그런데 나도 어느덧 시간이 흐르다 보니 나 나름의 스타일이 생긴 것 같다. 요즘은 어떻게 발전시킬까를 고민중이다.
─이젠 후배들이 당신을 모델 삼아 공부하지 않을까.
▲(웃음) 그런 것 같다. 한 후배가 어떤 얘기를 해서 막 웃었는데 그 후배가 ‘형, 이거 몇 년 전에 형이 어디서 했던 거야’ 그러더라. 후배들 말이 나랑 김국진씨 두 사람이 하는 개그도 바이블처럼 통하고 있다더라(웃음). 비록 소수의 후배들이겠지만.
김용만은 신동엽과 지난 4일 첫방송된 SBS <즐겨찾기>에서 공동MC를 맡았다. 개그맨 출신 MC로서 가장 잘나가는 두 사람이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된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고 있다. 2001년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건강보감’에서 1년 정도 같이 진행한 이후 두 번째 만남. 김용만은 신동엽에 대한 평을 묻자 “설명이 필요 없이 잘하는 친구”라고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큰소리로 대답했다.
─신동엽이 한 인터뷰에서 ‘김용만은 요즘 물이 오른 게 아니라 원래 웃겼다’고 평하던데.
▲동엽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것 같다(웃음). 요즘 그런 얘기 많이들 하시는데 저는 뭐 예전과 똑같이 하는 거다. 단지 요즘 들어서 사람들이 내 얘기를 많이 들어준다는 느낌은 든다.
▲내 나름대로 분석하는 건 그저 오∼래 했고(웃음), 그러다 보니 신뢰감이 가니까 그런 것 같다.
요즘 5개 프로그램 종횡무진
─‘노총각’ 신동엽이 요즘 결혼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조언을 구해오진 않나.
▲그 친구는 늘, 언제나, 여자와 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웃음). 요즘 <사랑의 위탁모> 찍으면서 결혼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 같다. 이제 나이도 있고 서서히 (결혼) 생각을 하는 거 같던데, 그래도 뭐 아직도 보기엔 정신 못 차렸다(웃음). 이 얘기는 아직도 일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단 의미다. 좋은 가정을 꾸려갈 만한 그런 사람이다. 너무나 많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잘하지 않겠나(웃음).
─<느낌표> 종영에 대한 감회는 남다를 것 같다.
▲참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이 더 이상 바보상자의 대표적 기능을 하는 건 아니다, 공익성과 함께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프로그램이었다. 진행하면서도 굉장히 즐거웠다. 그런데 그런 프로그램이 몸은 가장 힘들다. 우리끼리 얘기할 때 <느낌표>는 ‘연예인들의 실미도’였다. 도서관 지으려고 전국 안 다닌 데가 없고, 무작위로 일반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하루 종일 인터뷰해야 했다. 대본도 없고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거였다.
‘연예인들의 실미도’라는 <느낌표>는 끝났지만 김용만은 요즘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무려 다섯 개의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그는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대단한 도전’을 찍기 위해 에버랜드에 가야 한다고 했다. 이번 도전종목은 글쎄 서커스라나. 허걱…!
좀 짓궂게 굴고 싶은 마음에 ‘돌발질문’을 하나 던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얘기 중 가장 재밌는 얘기 좀 해달라.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나는 흔히 알고 있는 유명한 얘기들은 진짜 모른다. 인터넷에 떠오른 얘기나 삼행시 이런 것들, 보면 막 웃는데 듣고 까먹는다. 그래서 ‘재밌는 얘기 해달라’고 하면 제일 못하는 사람이 나다(웃음). 그런데 동엽이도 그렇다. 김국진, 서경석씨도 그런 과다.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사실 재밌는 얘기보다는 당신의 반응이 궁금했던 거다. 그럼 술자리 비화 하나만 공개해 달라. 이니셜로 쓸 테니(웃음).
▲술을 잘 못해서(김용만은 체질적으로 술이 받지 않아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진단다) 술자리엔 잘 안 가는데, 가끔 외국에 촬영 가면 끝나고 할 일이 없어 한두 잔은 한다. 음… 이××씨, 그러니까 L군은 술만 먹으면 지갑을 텅텅 비워야 한다. 자기가 술값 다 내고 팁도 다 주고 그러고 나서 다음날에는 (동석한 사람들에게) ‘다시 달라’고 한다. 근데 10만원어치 먹었으면 10만원만 내면 되는데 얘는 다 퍼주니까 한 20만원 정도를 쓴다. 하다못해 주방 아줌마한테도 팁을 주고, 보는 사람들한테 다 준다. 그러니까 같이 있던 사람들은 꼭 먹은 것보다 더 내게 된다.
─요즘은 ‘개인기’의 시대라고 하던데, 개인기와는 너무 거리가 먼 것 같다.
▲성대모사는 ‘누가 하라고 하면’ 조용필 송창식씨 정도(?)를 한다. 컨디션 아주 좋은 경우에만 비슷하단 소리를 듣고 대부분은 ‘저거 누구야’ 그런 얘기를 듣는다, 으하하하. 방송에서 몇 번 시도는 해봤는데 그냥 ‘쟤가 뭘 하려고 하나보다’ 그 정도 반응이다. 으아, 내가 그 쪽은 별로 안 좋아한다.
김용만은 올해로 방송 13년째를 맞는다. 91년에 서울예술대학 재학시절 개그콘테스트에 합격, KBS <봉숭아 학당>으로 데뷔했다. 그는 대중의 사랑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을 꾸준하게 노력해온 인물이다. 그의 넉넉해 보이는 표정 뒤에는 어려웠던 시절의 아릿한 추억이 있을 법도 하다.
─연예계 생활 중 가장 큰 고비는 언제였나.
▲93년도에 미국에 1년 동안 갔다와서… 굉장히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아이디어를 정말 많이 노트에 적어 왔었는데 진짜 노트를 잃어버렸다. (진지한 표정) 사람들은 농담인 줄 아는데 진짜 잃어버린 것 맞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것들로만 했었는데 호응이 없어서 첫 번째 위기감을 느꼈었고, MBC로 이적한 뒤 ‘김국진씨는 잘나가고 있는데 너는 뭐냐’ 이런 주변 사람들의 시달림 때문에 좀 힘들었다. 그런 나를 보면서 부모님들이 힘들어 하셨다.
─스캔들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웃음).
▲있긴 있었는데, 다 ‘조작’이었다. (진지하게) 조혜련이 요즘 특히 조작을 하고 있고(웃음) 예전에 엄정필이라는 친구가 조작한 적이 있고, 대부분 여자개그맨들이 자신들의 인기를 위해 조작을 많이 하는 것 같다(웃음을 참으며).
─학창 시절의 김용만은 어떤 학생이었나.
▲중학교 때까지는 굉장히 소극적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수업시간에 웃기기 대결하고 담배도 좀 일찍 피우고, 그래서 선생님이 골치 아파 하셨다(웃음).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들을 잘못 만났다. 그 친구들이 대부분 지금 놀거나 ‘음지생활’을 한다(웃음).
‘내리막’ 준비하고 살아야죠
─와이프와는 어떻게 만나 결혼했나.
▲98년 1월11일 밤 11시였다. 아는 분이 어떤 여자분을 만나러 가는데 데려다 달라고 해서 같이 나가서 만났다. 그때 따라온 분이 지금 집사람이다. 당시 집사람도 집에 가다 그냥 들른 거였다. 한 30분 정도 얘기했는데 내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선지 날 몰라보더라. 나중에 만나자고 했더니 ‘연예인이라서 싫다’고 하는 거다. 그래서 ‘왜 연예인이 싫냐, 내가 싫어야지. 한번만 기회를 줘라’ 그랬다. 그리고 몇 번 만나다가 잘 됐다.
김용만에게 여섯 살인 아들 도현이 자랑 좀 해달라고 했더니 큰소리로 “하하하” 웃었다. 이내 “차범근 축구교실에 보내는데 갈 때마다 골을 넣는다”며 보기 좋은 자랑을 한다.
끝으로, 그에게 “앞으로 고비가 또 찾아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고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어머니가 작년 말에 기도문처럼 쓴 걸 보여주셨다. 그 중에 한 구절을 읽고 ‘아, 이렇게 살아야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언젠가를 대비해 늘 준비하고 공부하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이다.”
어머니가 그의 마음에 새긴 ‘한 구절’은 이것이었다고 한다.
‘우리 아들이 산을 올라가는데 지금 거의 정상에 온 것 같습니다. 내려올 때 다치지 않게 무릎 안 까지게 조심해서 내려올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