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개막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앞두고 영화계 관계자나 기자들이 나누는 대화다. 뭔가 달라졌다. 구체적인 약속이 빠진 것이다. 이맘때가 되면 개봉 첫 주말 부산에서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며 영화 이야기로 꽃을 피우기 위해 무수한 약속이 잡힌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명확한 약속을 잡지 않는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김영란법) 시행의 여파로 괜한 구설에 오르지 않기 위해 식사나 술자리 약속을 잡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영화계의 가장 큰 행사인 부산영화제에는 유명 영화인이나 영화계 관계자, 그리고 기자 등 김영란법의 범주에 포함되는 인사들이 잔뜩 모이기 때문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는 란파란치 등도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오해받을 행동은 삼가자’는 분위기다.
일단 대형 투자배급사들은 매년 해오던 행사를 ‘올 스톱’했다. CJ, 롯데, 쇼박스 등 업계 리딩 기업들은 부산영화제 때마다 ‘OOO의 밤’을 열고 영화인들을 초대하고, 이 자리에서 내년 개봉되는 영화 라인업을 발표하는 등 공식 행사를 가졌다. 하지만 올해는 누구 하나 나서서 공식 행사를 잡는 곳이 없다.
부산영화제 때마다 ‘대목’을 맞던 포장마차촌도 울상이다. 영화제 주요 숙소로 쓰이는 그랜드호텔 앞 해운대 백사장 쪽에 늘어선 포장마차촌은 유명 배우와 감독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 많은 인파가 몰린다. 하지만 열린 공간인 포장마차 경우 남들의 눈에 띄기 쉽기 때문에 발길이 크게 줄 것으로 전망된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인당 3만 원까지는 허용된다고 하지만, 외부에서 이를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할지 알 수 없다. 괜한 억하심정을 갖고 신고를 하면 사실 여부를 떠나 일단 조사를 받아야 하니 아예 피하고 보자는 마음”이라며 “김영란법을 위반하며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술자리를 갖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해 받을 일은 아예 만들지도 않겠다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이에 앞서 유명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갖춘 업체들은 기자들을 상대로 발급했던 모니터링 카드서비스를 중단했다.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는 것이 기자의 직무지만, 유료 티켓을 무료로 발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김영란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CJ가 연예인들에게 발급하던 스타카드 역시 서비스가 끊겼다. 무료 영화 시사 및 CJ 계열 음식점 할인 혜택 등을 주던 카드이기 때문에 연예인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연예인들이 공무원이나 교육자, 언론인의 범주에 속하지는 않지만 무상으로 특혜를 받는다는 측면에서 오해가 생기는 막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에 출연한 김재중을 위해 그의 팬들이 보낸 밥차. 김영란법으로 인해 이런 팬클럽의 조공 문화도 사라질 전망이다.
지상파 및 케이블채널 유명 가요 순위프로그램이 끝나면 통상 당일 1위를 한 가수의 소속사에서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과 함께 이제는 눈치만 보고 있다. 가수들의 경우 프리랜서니까 관계가 없지만 그들과 함께 일하는 방송국 직원인 PD 등은 언론사에 소속돼 있기 때문에 김영란법 대상자다. 3만 원이라는 상한액이 있기는 하지만 이를 명확히 나누는 어렵고, 주위의 ‘보는 눈’이 많기 때문에 아예 ‘먹지 말자’는 입장이다.
김영란법에 영향을 받는 대상자는 약 4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 안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주위에서 공무원, 교사, 기자들을 마주치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에 전국민이 대상자라는 것이 일반적인 판단이다.
유명 연예인들의 팬클럽 회원들은 김영란법의 이런 영향력을 요즘 몸소 실감하고 있다. 그들이 연예인들에게 주는 일명 ‘조공’(선물이나 식사) 역시 부정 청탁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연예인이나 소속사 관계자들에게 선물이나 도시락 등을 선물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들이 음악 프로그램 대기실로 보낸 도시락 등 음식물이 방송 관계자들의 입으로 들어간다면 문제가 생긴다. ‘우리 오빠 잘 봐달라’는 청탁성 선물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연예계 내부에서는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지 말자”면서도 “우선은 최대한 조심하면서 추이를 지켜보자”며 보수적으로 접근하자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직접적인 위법 행위라는 판단을 받기 전이라도, 김영란법과 관련해 이름이 오르내리면 엄청난 이미지 타격을 입고 방송국 측과도 얼굴을 붉힐 수 있기 때문이다.
가수 이승환이 tvN ‘응답하라 1988’ 촬영팀에 보낸 밥차. 사진출처=이승환 페이스북
이와 마찬가지로 유명 배우의 팬들이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으로 보내던 ‘밥차’ 역시 마음 편히 받을 수 없다. 그 밥차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누가 먹을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드라마 제작 관계자는 “현장에 밥차가 와서 배우, 소속사 관계자, 프리랜서 스태프들은 밥을 먹는데, 김영란법 대상자인 PD와 카메라 감독 등 언론사 직원들은 따로 밥을 먹으러 가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며 “선의로 한 행동이 괜한 위화감을 조성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일단 피하고 보자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