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거동이 불편한 80대 노인 두 명이다. 재활과 보살핌을 받기 위해 입원한 병원에서 오히려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병원에서 최근 석 달 동안 48명이 숨진 것으로 드러나 연쇄살인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 범인에 대한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범행 동기도 불분명하다. 링거 살인사건의 미스터리와 함께 계면활성제의 살상력을 짚어본다.
일본의 한 요양병원에서 누군가가 링거에 계면활성제 성분을 몰래 타 환자들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연합뉴스
스릴러영화에 나올 법한 일이 벌어졌다. 그만큼 ‘링거 살인’은 일본인들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지난 9월 18일 일본 요코하마시에 위치한 오구치 병원에서는 88세 남성 입원환자가 사망한 데 이어, 20일 또 다른 88세 남성이 잇달아 사망했다. 링거액에 거품이 있는 걸 이상하게 여긴 병원의 신고로 부검을 실시한 결과, 둘 다 시신에서 계면활성제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은 “링거에서도 같은 계면활성제 성분이 검출됐다”면서 “링거를 맞은 환자들이 중독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요컨대 “의료 전문지식이 있는 인물이 살인을 노리고, 주사 바늘로 링거에 계면활성제를 주입했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현재 경찰은 계획 살인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사건이 일어난 오구치 병원 4층에서 지난 7월부터 3개월 동안 48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8월 하순에는 하루에 5명, 9월 초순에는 하루에 4명이 사망한 날도 있었다. “요양병원인 걸 감안하더라도 사망자가 유독 많다”는 지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링거 살인의 피해자가 훨씬 많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다카하시 요이치 병원장은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경찰도 이러한 경위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으나, 시신들이 이미 화장돼 각각의 사인 검증은 어려울 전망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오구치 병원은 중증의 고령 입원환자가 많은 곳이다. 병원의 병상 수는 85개(일반 42개, 요양 43개). 사건이 발생한 4층은 임종이 가까운 환자도 있었기 때문에 최근 사망자가 증가한 것을 ‘큰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병원 관계자는 “확실히 사망자가 많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들었다. 병원 내 감염증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범행동기가 명확하지 않아 진상 규명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사망한 두 환자에 대해서도 입원 중 별다른 트러블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수색결과 병원에서 사용하지 않은 50개 링거 가운데 10개에서 고무마개에 주사침을 찌른 흔적이 발견돼 “불특정 환자를 살해할 목적으로 계면활성제를 주입한 것 같다”는 의견이 수사관계자의 중론이다.
이와 관련해 <주간포스트>는 “병원 내부자가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조심스레 보도했다. 올해 4월부터 해당 병원에서 크고 작은 마찰이 많았다는 것이다. 찢어진 간호사복이 발견되는가 하면, 간호사의 음료수에 표백제가 혼입돼 소동이 일기도 했다. 따라서 “병원에 앙심을 품은 내부자의 범행이라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지고 있다”고 잡지는 덧붙였다.
경찰 탐문조사에서도 “간호사들 간 갈등이 꽤 깊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갈등의 원인은 인사문제다. 한 간호사는 “병원 측의 근무평가가 편파적이라는 불만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동료들 사이에서 ‘차별받고 있다’ ‘아무개는 제대로 일도 하지 않으면서 알랑거려 좋은 평가를 받는다’ 등등의 시비가 일어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예 노골적으로 특정 간호사를 거론하며 “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지목한 간호사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경찰 측은 “링거에 계면활성제를 투입하려면 일정 전문지식이 필요하고, 병원 내 경계가 소홀해지는 연휴 기간에 이물질을 주입한 것 역시 병원 내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소행을 의심케 한다”면서 “내부자 범행 가능성을 부정할 순 없다”고 전했다.
참고로 이번 링거 살인사건에서 ‘흉기’로 쓰인 계면활성제는 우리가 자주 접하는 세제나 비누, 소독약 등에도 포함돼 있다.
과연 그 위험성은 얼마나 클까. 사망한 환자의 링거에 주입된 것은 구체적으로 ‘자미톨’이라는 소독액이다. 양이온 계면활성제인 염화벤잘코늄이 주성분인데, 상처부위에 자극을 주지 않고 소독할 수 있어 병원에서 살균 소독제로 많이 쓰인다. 희석해 적정량을 사용하면 안전하지만, 체내에 잘못 주입하면 최악의 경우 죽음에 이르게 한다.
동물실험에서는 1㎏ 체중 당 엠화벤잘코늄 525㎎의 양을 경구투여하면 절반가량이 죽는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특히 농도가 높은 건 한 모금만 마셔도 위험하고, 양에 따라서 비교적 단시간에 사망할 가능성도 있다.
약물중독에 정통한 쓰쿠바대학의 명예교수 나이토 히로시 씨는 “염화벤잘코늄은 규정 농도를 지키면 가장 안전한 소독약이다. 그러나 희석하지 않은 채 인체에 들어갈 경우 세포막을 파괴한다. 우선 통증과 함께 피부 염증이 일어나며 그 뒤 부종이 확산돼 탈수증상을 나타난다. 이것이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이어져 최악의 경우 사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고령자는 체내 수분이 부족하므로 그 영향력은 막강해진다. 투여됐을 때 환자의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나이토 교수는 “즉시 통증을 호소하면 발각될 수 있었겠지만, 피해자가 와병 중인 고령자라 그마저도 불가능했던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과거 일본에서는 식중독을 일으키는 ‘대장균(O157)’의 해결책으로 염화벤잘코늄이 널리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1996년 도쿄도 내 양로원에서 고령자 5명이 염화벤잘코늄이 든 세정제를 잘못 마셔 1명이 사망하는 등 오음 문제가 잇따라 발생했다. 이러한 사고로 인해 고령자 의료·간호현장에서는 염화벤잘코늄의 오음 사고방지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일본 시사주간지 <아레나>는 “최근 3개월 동안 1주일에 4명꼴이던 사망자가 경찰 수사 이후 열흘 동안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하며 “링거에 염화벤잘코늄을 투입한 데 상당한 악의가 느껴진다. 수법으로 볼 때 의료지식을 상당히 갖추고 있는 인물로 보이지만 물증이 부족해 혐의자 색출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