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19일 한나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원희룡 의원이 2위에 오르며 파란을 일으켰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런 점에서 한나라당은 지난 최고위원 경선에서 ‘희망봉’을 하나 보았다.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만 40세의 원희룡 의원이 최고위원 2위로 등극했기 때문. 원 의원의 급부상에 따라 한나라당은 개혁의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도 이루는 등 ‘원희룡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원 의원은 비록 소장개혁파 모임인 ‘수요모임’을 대표해 최고위원에 당선되었지만 이번 경선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이미지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성급한 해석도 나오고 있다. 과연 정치인 원희룡은 어떤 사람인가. ‘장외’에서도 그는 ‘똑 부러진 모범생’일까. 지난 23일 원 의원으로부터 직접 대답을 들었다.
뜩하다.”
김덕룡 원내대표가 지난 7월19일 열린 최고위원 경선 결과를 보고 내뱉은 말이다. 그는 이어 “한나라당 내부에까지 변화의 욕구가 이렇게 차 있는 줄 몰랐다. 과거에 사는 중진들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해 이번 경선 결과에 충격을 받았음을 내비쳤다.
이렇듯 원희룡 의원의 ‘최고위원 2위 등극’은 한나라당 내부에서 일종의 ‘작은 혁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조직력도 거의 없고 경륜 면에서도 정책위 의장 출신의 이강두 의원(4위), 선출직 총무를 지낸 이규택 의원(5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변화를 선택했다. 그동안 ‘노인당’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왔지만 40대 초반의 원희룡 김영선 의원의 당선으로 진일보한 세대교체를 이루었다. 또한 ‘수구당’이라는 이미지도 당내 대표적 ‘미스터 쓴소리’였던 원 의원이 당선됨으로써 어느 정도 불식시킬 수 있게 됐다.
원희룡 의원은 제주 출신으로 제주 제일고 시절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던 ‘범생이’였다. 하지만 그는 어떤 면에서 ‘악동’이기도 했다. 원 의원은 고3 시절을 회상하면서 “가끔 야자(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려 막걸리 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친구들이 공부 잘하는 나를 보호막으로 활용했다. 선생님에게 몇 번 들켰는데도 그냥 웃고 넘어갔다”고 말했다. 전교 1등 하는 모범생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다는 것을, 그는 어떻게 설명할까.
“나는 모범생 이미지가 강해 매사에 완벽하고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사람으로 비친 게 사실이다. 하지만 허술한 점도 너무 많다. 의외로 굉장히 기분파고 그때그때 충동적으로 일을 벌이는 경우도 많다. 어떤 때 외롭고 괴로우면 제쳐놓기도 하고…. 아직도 청춘 기질이 많이 남아 있다.”
그는 1982년 대입학력고사 전국수석을 차지해 이미 중앙일간지 사회면 톱을 차지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서울대 법대 입학 뒤 학생운동을 하면서 한때 방황도 했지만 또 다른 길을 택하기 위해 사법시험을 준비, 1년여 만에 34회 사시에 수석으로 합격해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2000년 이런 화려한 경력 때문에 새정치국민회의와 한나라당 양당으로부터 ‘구애’를 받았는데 결국 한나라당을 택했다.
─학력고사에서 수석, 사법시험에서도 수석이었는데 연수원 졸업 성적은 어땠나.
▲1등은 못했고 10등 안에는 들었다.
─연수원 졸업 뒤 검사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는데.
▲연수원 시절 앉아서 하루 종일 판결문을 써보니 못하겠더라. 법정에서 기록과 씨름하는 것보다 사람들과 직접 부딪쳐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검사는 판단하기보다는 사건을 만들어 가는 것이니 능동적으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사직에 4년 정도 있었는데 어땠나.
▲10년 정도 하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초임 때는 형사사건을 주로 했고 부산지검 근무할 때는 강력부에서 마약수사를 6개월 정도 한 적이 있었다. 마약수사는 적성에 맞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 수사를 잘 하려면 거칠어져야 하는데 그런 상황들이 많이 닥치니까 힘들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이 정치도 잘할 수 있다고 보나.
▲어떤 과제가 있을 때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집중적으로 그것을 해결하는 데는 어느 정도 훈련이 되어 있다고 본다. 사회가 급변하고 워낙 많은 문제들이 닥치는데 그것들을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안을 처리할 때 행동보다는 생각으로 풀려는 습성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지’(知)라는 것은 인간이 가진 능력 중 하나일 뿐이다. 감성도 있고 본능적 감각, 육감도 중요하다. 너무 지적인 이미지로만 치우치는 것도 단점일 수 있다.
▲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손학규,이명박의원, 원희룡의원, 박근혜의원 | ||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건’이 원희룡 의원 개인의 정치적 위상을 높여준 기회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그가 ‘포스트 박근혜’ 시대의 선두주자로서 ‘홀로서기’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고 보는 후한 평가도 있다.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대권에 맞추고 있는가. 정치 입문할 때 그런 꿈이 있었나.
▲개인적 차원에서 보자면 정치인으로서 야망을 가질 줄도 알아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야망이 있어야 더 큰 책임을 맡아도 두려움이 없다. 또한 그런 꿈이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어떤 일을 성취해낼 수 있다. 대신 꿈이 아집이 되고 욕심이 되어 전체 판을 깨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언제든지 야망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보다 큰일을 이룰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정치 세력으로부터 대권 도전의 기회를 부여받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신임을 받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얼마나 ‘채점관’들이 짠데. 그런 면에서 겸손해야 하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에서는 (야망을) 가질 줄도 알아야 하고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한국의 급변하는 정치 상황을 생각하면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에 강조점을 찍고 싶다. 그래야 세력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력을 모으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가장 하위개념은 이해관계다. 이해관계로 맺어진 관계는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 다음이 신뢰다. 검증된 신뢰가 세력을 모으는 기본 요소다. 신뢰가 있으면 웬만한 손해는 감수해버린다. 그런데 이해관계도 아니고 신뢰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운명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카리스마나 흡인력이다. 그런 리더들이 요즘에는 없는 것 같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런 점에서 사람을 감동시키고 내면을 사로잡은 내공의 힘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원 의원은 앞으로 소장파를 대표해 박근혜 체제를 떠받칠 한 축으로 주목받고 있다. 박 대표 체제에 대한 그의 솔직한 생각은 어떤 것일까.
─박근혜 대표의 리더십은 상생의 정치를 외치면서 내적인 성숙을 통해서 상대방을 설득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차기 대권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나.
▲현재로는… (웃음) 박 대표는 지금까지 철저한 자기관리와 절제로 국민들의 신뢰를 받아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그에게 거센 도전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듯 언제나 가만히 그를 쳐다봐 주지만은 않을 것이다.
─박 대표 리더십에서 어떤 점이 부족하다고 보나.
▲두 가지가 있다. 자신의 색깔을 발산하고 뿜어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점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속에 담아놓고 있었지만 앞으로 거센 파도가 올 때 계속해서 회피하거나 숨어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최근 박 대표가 대여 전면전을 선포한 것도 주변의 이런 지적을 의식했다는 측면도 있다).
또 하나는 친화력과 흡인력을 좀더 높여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박 대표는 20대에 부모를 비극적으로 잃은 뒤 철저히 자기관리를 해온 사람이다. 젊은 나이에 국모로서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그 이면에는 신비롭고 고귀한 이미지가 녹아 있다. 하지만 관상용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 그는 시장 바닥에 대해 경험이나 정서면에서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시장 바닥 장사꾼과 지게꾼들의 시금털털한 땀 냄새에 얽힌 정서를 끌어안아야 한다. 그들에 대한 친화력과 스킨십, 흡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앞으로 박 대표의 검증기간이 2년이나 남았는데 언제라도 대권 주자 반열에서 내려올 수도 있다고 보나.
▲지난 4년 동안 정치판에서 겪어보니 (깨달은 것이) 정당정치에서 임기, 대세, 뭐 이런 것들로부터는 꿈 깨라는 것이다. 그가 현재의 자리에 안주하는 순간 곧바로 아래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미끄럼틀 올라가는 것은 어렵지만 내려오는 것은 순식간이다.
─박 대표의 차기 대권 가능성을 현재 어떻게 보는지.
▲현재로는… 나아지겠지만…. 글쎄, 박 대표의 집권 가능성보다는 한나라호를 탄 주자가 과연 본선에서 이길 수 있나 하는 점에서 의문이다. 배가 물 위로 떠야 항구로 상륙할 수가 있을 텐데 그런 면에서 한나라당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여당은 현재 매우 치열한 내부 경쟁을 통해 차기 주자를 키우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내수시장’에서의 점유율 경쟁이 너무 약하지 않나. 삼성과 LG가 내수시장에서 혈투를 벌인 결과 수출에서도 경쟁력을 갖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독주시대가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여기에 안주하다 보면 대중적 지지도나 인기라는 것은 한순간의 꿈일 수가 있다. 이런 점을 보면 박 대표의 대권 가능성도 쉽게 낙관하긴 어렵다. 물론 비관도 하지 않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수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이 있어야 ‘수출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하는 점이다.
─‘내수시장’의 경쟁자가 많지 않은데.
▲이를테면 라면시장인데 몇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우동을 팔고 있는 꼴이니(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를 지칭)…. 하지만 2년 후에 본격적인 ‘시장 점유율 경쟁’이 벌어지지 않겠는가.
─그때 기회가 되면 원 의원도 ‘라면’을 팔 예정인가.
▲나는 ‘라면땅’ 정도 팔 것 같다(웃음).
─만약 주위에서 도와준다면 열심히 해볼 건가.
▲그렇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나선다면 나도 열심히 도와줄 것이다.
한나라당의 ‘악동’ 원희룡 의원. 그가 일을 벌이면 벌일수록 한나라당 개혁 속도도 더 빨라질 것이라는 데 별 이견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 좋은 머리로만 하는 개혁이라면 한나라당은 또 다른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