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9일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윤광웅 신임 국방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도록 소중히 여기는 군인다운 기질은 돋보인다. 지금도 10여 년 전 국방부에서 일할 때 알고 지내던 기자들의 이름을 줄줄 꿰고 있다. 청와대 국방보좌관으로 있을 때 청와대 출입기자를 만나면 반드시 “○○○기자는 요즘 잘 있나, 같이 술마시러 잘 다녔는데”라고 안부를 묻는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인물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상고를 졸업,해군사관학교(20기)를 나왔다. 그는 중학교 때 공부를 잘해 경남고나 부산고 등 명문학교를 진학할 수 있었으나 가정형편 때문에 부산상고로 진학했다고 한다.
고교 때는 축구선수였다. 부산상고 축구부에서 이름을 날리는 스트라이커였다. 청소년 축구대표 상비군에 뽑힐 정도로 실력이 빼어났다. 해사에 들어가서도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육사·공사와의 3군사관학교 체육대회 때는 최고의 스타였다.
그는 “육사와 공사 수비수들이 나를 막느라 고생 많았다”고 옛 추억을 떠올렸다. 160㎝를 조금 넘는 단신이지만 축구로 다져진 몸매는 60이 넘은 지금도 다부져보인다. 40이 넘은뒤에는 축구 대신 테니스로 운동종목을 바꿨다. 운동신경이 뛰어나 그의 테니스 실력은 수준급이다.
윤 장관의 군 생활은 무난했다. 치밀하고 꼼꼼한 일처리와 부지런함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군구조개선위원회(일명 818위원회) 기획처장을 맡아 육해공군 균형발전 방안을 연구하기도 했다. 영어회화 실력이 뛰어나다. 합참 전략평가부장과 서해 2함대사령관, 해군 작전사령관 등 요직을 거쳐 해군 참모차장(중장)까지 올랐다. 경력이나 능력으로 볼 때 해군참모총장 1순위로 거론됐다.
하지만 1999년 DJ 정부 때 해군참모총장 경합에서 광주 출신 동기생인 이수용씨에게 밀렸다. 이수영 총장도 능력에서 뒤지지 않았지만, 출신지역 때문에 탈락했다는 주위의 동정을 받았다. 그는 군복을 벗었다. 그가 국방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할 것이라는 것은 당시에는 아무도 상상을 못했다.
윤 장관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다. 그는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4년 선배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유일한 군 인맥인 셈이다. 윤 장관과 노 대통령과의 인연은 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 장관의 회고다.
“부산상고 동기 모임을 하는데, 동기생도 아닌 사람이 인사하러 왔더라. 보니까 청문회 스타 노무현이었다. 당시는 국회의원에서 낙선했을 때였다. 선배들에게 일일이 인사하고,깍듯하게 대하더라. 그저 정치인이니까 동문회에 인사하러 왔겠지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노 대통령이 당시에도 참 솔직했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특별히 기억나는 것도 없고, 개인적으로 인연을 맺은 것도 없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집에서 놀던’ 윤 장관은 곧바로 비상기획위원장에 임명된다. 그러던 중 지난 1월말 노 대통령이 갑자기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정비에 나섰다. 청와대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과 김희상 국방보좌관을 경질한 것이다. 새 국가안보보좌관에는 육사 출신의 권진호씨가, 국방보좌관에는 해사 출신의 윤광웅씨가 임명됐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인사였다. 인사배경을 놓고 갖가지 추측이 나돌았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노 대통령의 의중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윤 장관은 청와대 국방보좌관으로 있으면서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조용히 일하는 스타일이었다. 따라서 윤 보좌관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꾸미는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 기자들과의 접촉도 거의 없었다. 일각에서는 “좀 무능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국방 관련 보고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종석 사무차장이 독점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윤 보좌관이 물밑에서 움직이면서 곧바로 노 대통령이 왜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의 간판 인물을 바꿨는지 이유가 서서히 드러났다. 노 대통령은 군 개혁을 준비하고 있었다. 윤 보좌관은 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물밑에서 군 개혁과 국방부 문민화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군 인맥이 전무하다시피한 노 대통령은 부산상고 선배인 윤 보좌관에 일을 맡긴 것이다.
윤 장관의 존재가 부각된 것은 4·15총선 직후 개각 얘기가 나왔을 때였다. 노 대통령이 탄핵에서 복귀하면 개각을 할텐데, 국방장관이 포함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후임으로 당시 국방보좌관이었던 윤 장관의 이름이 청와대 핵심인사들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가 실세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윤 장관은 자신의 장관 임명설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는 일부 기자들과의 접촉에서 “나는 대통령의 고교선배이기 때문에 내가 장관이 되면 대통령에 부담이 된다”면서 “끝까지 고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방부 문민화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 군이 변하려면 문민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자들은 그가 국방장관에 뜻이 있음을 간파했다. 물론 대통령 고교선배라는 것이 ‘정실인사’라는 비판이 따르겠지만, 결국에는 그가 장관에 임명될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았다.
윤 장관의 ‘노무현 관’은 어떨까. 윤 장관은 장관에 임명되기 전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노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 지인이 전해준 윤 장관의 노 대통령 평가는 대충 다음과 같다.
“노 대통령의 이데올로기는 좌도 우도 아닌 국익이다. 모든 것을 국익의 차원에서 이해하려 한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는 미국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다. 당장의 비판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인 국가이익 차원에서 외교안보 현안을 풀어나가려 노력한다. 최근에는 ‘한미관계와 주가의 상관관계’라는 보고서를 꼼꼼히 읽었다고 한다. 머리가 굉장히 좋아서 아랫사람이 보고하는 내용을 거의 다 이해한다.”
윤 장관이 국방보좌관으로 있으면서 손질한 국방부 개혁안은 군에 충격을 줄 수 있을 만큼 획기적인 내용이었다. 선진국처럼 ‘군에 대한 문민통제’ 원칙을 세우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국방부 본부 간부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군인들을 민간 출신으로 단계적으로 교체한다는 것이다. 국방부 문민화의 최종 목표는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 임명이다.
윤 장관은 이를 위해 국내 군사전문가와 외교안보 교수들의 폭넓은 자문을 받고 선진국의 사례도 연구했다. 군의 사기를 고려, 합참의장의 권한과 위상을 강화하고 합참의장을 NSC 상임위 회의에 수시로 참석시키는 방안도 검토됐다. 윤 장관은 6개월간의 작업 끝에 ‘국방부 개혁방안 보고서’를 작성, 노 대통령에 보고했다.
국방부가 김선일씨 피살사건,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북교신 보고누락 및 교신내용 언론유출 등으로 상처를 입으면서 장관 경질은 시간문제로 떠올랐다. 권영효 전 국방차관,이남신 전 합참의장, 정영무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김인종 예비역 대장 등이 하마평에 올랐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마음은 처음부터 윤 장관에 가 있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군 개혁과 국방부 문민화 작업을 위해 윤 장관을 국방보좌관으로 임명했고, 윤 장관이 보고서를 완성하자 처음부터 장관 1순위로 점찍어 놓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경질하는 날 급작스럽게 법무장관까지 바꾼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고교 선배를 국방장관으로 앉히는데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해 법무장관 경질로 ‘물타기’했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만큼 노 대통령의 윤 장관 임명 의지는 확고했다.
윤 장관 임명은 국방부 문민화로 가는 징검다리다. 노 대통령은 윤 장관을 군 개혁과 국방부 문민화의 주춧돌로 삼았다. 이를 반영하듯 윤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나를 단순한 예비역 장성으로 보지 말고 ‘문민장관’을 봐달라”고 말했다. 그는 “문민장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민간인 대통령과 국방전문가인 군과의 연결이며 바로 이것이 현재 가장 시급한 장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임기 동안 국방부 문민화와 군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문제는 군의 동태다. 군이 과연 윤 장관의 뜻대로 움직여줄지 아직은 미지수다. 국방부는 벌써부터 술렁거리는 분위기다. 노무현 정부의 진보적 성향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군은 그동안 숨을 죽여왔다. 이번 서해 NLL 사건에서 나타났듯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피해만 입었다는 의식이 깔려있다. 북한에 대한 주적 개념 삭제에 대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내부반발이 없지 않다고 한다.
이 같은 반발이 겉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 6월 말 있었던 NSC 이종석 사무차장의 ‘무궁화 회의’ 초청 강연 사건이다. 각군 장성들을 대상으로 개최된 무궁화 회의에서 이 차장이 “적에 대한 적개심보다는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진 군대가 훨씬 강한 군대”라고 말했는데, 이 내용이 언론에 공개돼 이 차장이 마치 적개심 약화를 주문한 것처럼 기사화됐다. 노무현 정부의 안보정책에 반대하는 일부 군 세력이 비공개 강연 내용을 언론에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서해 NLL 보고누락 사건 조사 과정에서 우리 해군과 북한측의 교신내용이 분 단위로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도 마찬가지 성격의 사건으로 분류된다. 청와대는 이를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대한 반발로 규정, 당시 윤 국방보좌관이 직접 나서 군에 강력한 경고를 날렸다. 당시 윤 보좌관은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자실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최근 NLL상의 남북한 교신 문제와 관련 대통령이 지시한 조사의 취지가 왜곡 보도되고 일부 기밀사항들이 유출되고 있는 사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국방부 안팎에서는 그가 앞으로 노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국방부를 이끌어갈 인물이라는 관측이 나돌았다.
어쨌든 노 대통령의 유일한 군 인맥이자 ‘복심’으로 불리는 윤 장관의 임명으로 군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윤 장관은 군의 ‘비주류’다. 윤 장관은 해군 출신인데다 군에 특별한 인맥이 없다. 해군 출신 장관은 지난 53년 손원일 장관에 이어 두 번째다. 실제 국방부와 합참 내 현역 장성 47명 중 32명(68%)이 육군이며,장관이 직접 관할하는 국방부는 과장급(대령) 이상 현역 직원 62명 중 48명(77. 4%)이 육군이다.
때문에 ‘윤광웅 인맥’이 새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장성급보다는 젊은 영관급 가운데 군 개혁과 국방부 문민화에 동조하는 세력이 형성, 윤광웅 친위부대가 생길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이른바 ‘군 개혁세력’인 셈이다.
윤 장관도 이 같은 세력의 지원 없이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힘들다. 윤광웅 친위세력 형성을 청와대가 지원할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자연히 군 수뇌부는 윤 장관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고 있다. 정치권도 윤 장관의 향후 행보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
김진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