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전 의장의 부친 신상묵씨(1916∼1984)가 일본군 헌병 오장(伍長·하사)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공개한 것은 <신동아> 9월호였다. <신동아>에 따르면, 신상묵씨는 1938년 3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 같은 해 6월 전남 화순 청풍소학교(초등학교) 훈도(교사)로 발령받았다. 그런데 1940년 ‘조선총독부 국군병지원자 훈련소’에 입대, ‘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로 창씨개명했고, 이후 헌병 오장으로 활동했다.
다음은 신씨의 대구사범학교 동기생 송재천씨 증언. “1943년 6월 충북 옥천 죽향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다. 집에서 쉬고 있는데, 신상묵이 찾아왔다. …신상묵은 ‘일본군 헌병으로 근무하고 있다. 일본군 징병 기피자들을 찾고 있다. 교사를 하고 있으니 징집을 피해 숨어 다니는 졸업생들과 관련된 정보가 있지 않으냐? 알고 있는 게 있으면 가르쳐달라’고 말했다. 나는 ‘아는 것이 없다’고 답했다.”
사범학교 동기생 송성욱씨의 또 다른 증언. “1940년 경북 영일군 죽남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 신씨가 일본군 지원병이 됐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랐다. …신상묵은 4·19 직후 나를 찾아와 ‘대구사범때 한 해 선배인 박정희 의장(전 대통령)에게 찾아가 함께 일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으나 박 의장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그냥 돌아왔다. 박 의장에게 섭섭했다’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이 같은 내용의 보도가 나가자 “신상묵씨로부터 고문을 당했다”는 독립운동가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차익환씨(79)와 부산에서 사는 김장룡씨(78)가 바로 그들. 노동자 태업 등 항일활동을 하다 체포됐던 차씨는 “일본군 헌병 시게미쓰 구니오가 일본육군 헌병대 취조실에서 나를 취조하면서 거꾸로 매달고 코에 물을 부었으며 각목으로 마구 때렸다. 55여 일 동안 매일 고문을 했다. 있지도 않은 조직도를 내밀며 사실대로 시인하라고 협박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증언자 김씨는 “‘한국사람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따졌더니 ‘나도(신씨) 나름대로 나라를 사랑해서 (이런 일을) 하는 거다’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시게미쓰의 부하 2∼3명이 김씨를 바깥으로 끌고 나가 우물에 거꾸로 매달아 빠뜨렸다가 빼는 등 물 고문을 하는가 하면, 잠도 재우지 않고 옷을 벗겨 뾰족한 돌밭 위에 종일 꿇어앉아 있게 했다고. 밤새도록 목도로 두들겨 패기도 했다는 게 김씨 증언.
여기에 신씨가 조선인들의 일본군 지원 입대를 독려하는 글을 당시 월간지 <삼천리>(1941년 1월호)에 기고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창씨개명한 이름으로 기고한 글에서 “ … 일본남자인 우리들이 폐하의 군인이 되는 것은 외레이할(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내선일체가 되는데 가장 먼저 할 것은 지원병이 되는 것 …참으로 황국신민이 될 생각이 있거든 그리고 내선일체를 실행하려고 생각하거든 이 훈련소로 오시오”라며 조선인들의 일본군 지원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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