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저 신기남, 탈레반 소리를 들어가며 여기까지 왔다.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할 수 있게 힘을 다할 것이다.”
대의원과 당원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전당대회장을 뜨겁게 달궜다. ‘탈레반’은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한 ‘천·신·정 트리오’(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가운데 가장 강경개혁파로 분류돼 붙여진 별명. 정동영 의원이 이날 경선에서 1위를 차지, 당 의장으로 선출됐다. 그리고 신 의원이 2위. 그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결과였다.
그랬던 그가 7개월 만에 부친의 친일 행적 파문으로 고개를 떨궜다. 당당했던 자신에 찬 목소리는 오간 데 없어졌다.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의 권유로 96년 정계에 처음 입문한 이후 최대 정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그리고 정동영 전 의장의 바통을 이어받았던 당 의장 자리를 지난 19일 사퇴하면서 고뇌 어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 상당수는 신 전 의장의 사퇴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월간지 <신동아> 9월호에서 신 전 의장의 부친 신상묵씨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 헌병오장 (伍長·하사)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보도하기 이전에 부친의 행적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기회가 있었는데, 때를 놓쳤다며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신 전 의장은 언제 고백했어야 했나.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은 신 전 의장의 부친이 ‘일본 경찰 간부 출신이었다’는 의혹이 인터넷 매체를 통해 처음 불거졌던 지난 7월 초였다고 본다. 지난 7월 초 미국을 방문중이었던 신 의장은 “선친은 지리산 공비토벌대장이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이 화근이었다. 신 의장 발언 직후 진보성향 인터넷 매체인 ‘진보누리’ 게시판에 “사범학교 출신으로 일경 간부를 역임하다가 해방 이후 미군정에서 경찰간부로 재임용된 후 공비를 토벌했다는 신기남의 아버지 신상묵은 친일파가 아닐까?”라는 글이 올랐다. 그리고 네티즌들은 이 글을 인터넷 게시판 여기저기에 ‘퍼나르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가 확산되자 일부 언론도 부친의 친일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신 의장은 이를 부인했다. 그는 “선친은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제 때는 교사를 하다 해방 뒤 국립경찰 창설 당시 경찰간부학교에 입교함으로써 경찰에 투신했을 뿐 일제의 경찰 노릇을 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신 전 의장과 가까운 한 중진의원은 “신 의장 부친이 일본 경찰 간부였다는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 고백했어야 했다. 신 의장 말처럼 부친의 과거행적을 당시 몰랐다 하더라도, 이후에라도 알아보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신 의장이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지난 19일, 당 의장을 사퇴한 신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보도를 접하기 전까지는 20년 전에 돌아가신 선친의 일제시대 행적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몰랐다. 누가 말해준 적도 없다. 선친이 사범학교를 나와 교사로 있다가 일제 말기에 한때 일본군에 있었다는 정도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이다. 헌병인지 일반병인지, 지원병인지 징병인지, 오장인지 사병인지, 언제 어디서 근무했는지 등은 모르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신 의원은 뒤늦게 스스로 밝혔듯이 “부친이 일제 말기에 일본군으로 복무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난 7월 부친의 일본 경찰 간부 재직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일본군 복무 사실이라도 털어놨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권파’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과거사 청산 문제가 정치 이슈로 떠오르는 시점에 (신 전 의장) 자신이 먼저 떳떳하지 못했던 부친의 행적을 고백했어야 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표에게도 과거사 청산 작업에 동참하라고 주장했어야 했다. 그렇지만 때를 놓쳤다. ‘악재’를 ‘호재’로 활용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피력했다.
지난 19일, 당 의장 사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신 전 의장은 “최근 제 선친과 관련된 보도를 처음 접한 후 지금까지 3일은 제 평생 겪어보지 못한 가장 무겁고 심각한 고뇌의 시간이었습니다”라며 비통한 심정을 그대로 표출했다.
이보다 앞선 16일 저녁 6시30분께. 신 전 의장은 경남 창원공단을 둘러본 다음 부산으로 향하던 버스 안에 있었다. 그때 자신의 보좌관인 김형식 부대변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김 부대변인은 “<신동아>에 의장님 선친이 일본 헌병 오장이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날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발의된 지 56년째 되는 날이었고, 부산에선 기념식까지 열렸다.
당시 신 전 의장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을 개연성이 높다. 그 스스로가 기자회견에서도 “그동안 제 선친이 일본군에 종사했다는 사실 자체가 늘 마음의 부담으로 있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지금껏 그의 심중에는 부친의 친일행적에 대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는 얘기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는 것.
이날 김 부대변인으로부터 보고 받은 즉시 그는 기자간담회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이미 터진 물꼬였고,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를 고민할 차례였다. 그 첫 번째 수습책이 기자간담회였던 셈이다. 그는 부친의 일본군 입대 사실을 시인했다. 또 독립투사와 유족에게 사과하며 용서를 구했다. 그는 “국민여론을 지켜보고 당의 중지를 모아보겠다”며 즉각적인 의장직 사퇴를 거부했다.
▲ 지난 17일 광복회를 찾은 신기남 의장은 부친의 친일행적에 대해 사과했다. | ||
악몽 같은 밤을 보냈을 신 전 의장은 17일 아침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가볍게 처신하지 마라”는 대통령의 주문이었다. 이에 “대통령의 뜻에 따르겠다”고 그도 답했다. 그래서인지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에서도 “가볍게 처신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며 대통령의 주문을 그대로 반영했다.
하지만 그는 더욱 궁지로 몰렸다. 17일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독립운동가들이 신 전 의장의 부친으로부터 고문을 당했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그러면서 당 의장 사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당사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문희상 의원 등 가까운 당내 인사들과 잇따라 만나 자신의 거취와 향후 당 지도체제 등을 논의했다. 그리고 시내 모처에서 밤새 술을 마신 것으로 전해졌다.
강원도로 휴가를 떠났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6일부터 신 의장과 수시로 전화 접촉을 갖고 대책을 숙의하기도 했다. 정 장관과 신 전 의장, 천정배 원내대표는 ‘당권파’ 핵심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지’.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정 장관으로선 ‘우군’인 신 전 의장 사퇴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열린우리당 핵심인사는 “독립운동가들이 고문을 당했다는 증언이 나오자마자 바로 (그들에게) 달려가서 무릎꿇고 백배사죄했어야 했다. 국민들도 그런 장면을 지켜보면 ‘아버지 문제를 가지고 아들이 저렇게까지 사죄하는구나’라는 동정심을 유발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97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씨(당시 신한국당 대표) 큰아들(정연씨)의 병역면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이 대표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국민정서를 고려해서 곧바로 정연씨를 소록도로 봉사활동을 보냈다면 여론이 그렇게까지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당 의장직에서 물러난 후 여야 정치권에선 그가 당 의장직 사퇴를 결심했던 진짜 이유가 무엇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부친의 친일행적이 없다고 발언했다가 거짓말로 들통나 사퇴했다”와 “부친의 과오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책임차원에서 물러났다”는 견해가 오가고 있다. 그런데 ‘친일행적’과 ‘거짓말’이 복합적으로 그를 벼랑으로 내몰았다는 견해가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신 전 의장과 가까운 여당 인사는 신기남 전 의장의 사퇴 이유와 관련해 “부친의 친일행적과 자신의 거짓말 의혹 등으로 당 의장을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외부 분위기와 당내에서 일기 시작한 분열 조짐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인사는 차기 지도체제를 둘러싸고 당권파와 비당권파 간의 당권싸움 움직임이 의장직 사퇴를 재촉했다고 분석했다.
신 전 의장의 사퇴와 관련해 긴박했던 며칠 동안 신 전 의장 등 당 지도부와 중진 의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향후 당 지도체제를 숙의했다. 당헌·당규대로 지난 1월 전당대회에서 정동영-신기남에 이어 3위로 상임중앙위원에 선출된 이부영 체제로 갈 것인지, 아니면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꾸린 후 친당권파인 한명숙 상임중앙위원 등을 새 당의장으로 세울 것인지를 놓고 여러 차례 논의했다. 문희상·유인태·김원웅·장영달 의원 등 중진의원 14명은 18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내 음식점에서 신기남 의장 주재로 심야 회동을 가졌다. 그리고 당헌·당규에 따라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이 의장직을 승계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날 모임에서 천정배 원내대표 등 당권파 일부는 비대위를 구성해 당 지도체제를 구성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다수 중진의원들은 당헌에 따라 의장을 승계토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렇다면 차기 지도체제에 대한 신 전 의장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신 전 의장의 한 측근은 “신 의장은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 한번도 의견의 제시한 적이 없었다. 다만 신중하게 처신하겠다는 의지만 표현했다. 그런데 부친으로부터 고문을 당했다는 폭로가 잇따르면서 생각을 굳힌 것 같다. 당헌에 따라 이부영 위원이 당 의장을 계승해야 한다고. 가장 큰 이유는 당내 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헌대로 이 위원이 당 의장을 계승해야 당내 분란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대위로 가는 것도 일리는 있지만, 국민에게 마치 당권 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비치면 당이 입는 상처가 너무 크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당헌과 순리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최종적으로 결론 내렸다. 당내 분란을 막아야 8월 말 임시국회와 9월 국정감사에서도 개혁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고도 했다. 특히 비대위 체제로 갔다가 비당권파들의 반발로 분란이 벌어지면 내년 4월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현재의 과반수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당권파로 분류되는 한 중진의원도 “이부영 의장 체제는 내년 1월 전당대회까지 길어야 6개월 정도 운영되는 임시체제다. 신 의장도 이 점을 고려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4·15총선 직전 노인폄훼 발언으로 사퇴한 정동영 전 의장의 바통을 이어받았던 신기남 전 의장. ‘자랑과 존경의 대상’이었던 부친의 친일 행적으로 잠 못 이루는 밤들을 보내고 있다. 당 의장을 계승한 후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도 올랐던 그였기에 뼈에 사무치는 고통은 더욱 클 것이다. 앞으로도 ‘정치인’ 신기남에겐 부친의 친일행적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닐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치인’ 신기남으로선 최대 위기에 빠졌고, 그래서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