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I저축은행은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소멸시효만료 채권을 소각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정훈 기자
소멸시효 만료 채권을 사들인 대부업체는 채무자에게 “1만 원만 우선 입금하면 빚을 깎아주겠다”는 식으로 소액변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비록 소멸시효가 만료된 채권이더라도 대부업체의 말에 혹해 채무자가 소액이라도 변제를 했다면 그 시점부터 다시 소멸됐던 시효가 부활된다. 채무자가 소멸시효 만료 채권에 대해 채무이행을 거절했음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추심을 계속하면 불법추심에 해당한다. 그러나 채무자들은 대개 시효 만료 사실을 모른 채 대부업체의 추심에 거절 의사를 밝히지 못한다.
금융사들이 대부업체에 매각하는 소멸시효 만료 채권은 보통 공개입찰 방식을 통해 원금의 2~10%의 가격에 매각된다. 계산대로라면 SBI저축은행은 보유하고 있는 9700억 원어치 소멸시효 만료 채권을 대부업체에 매각하면 수백억 원의 돈을 받을 수 있다.
SBI저축은행 측은 서민금융을 위해 이전부터 회사 자체적으로 채권 소각을 추진해왔다는 입장이다. 또 최근 몇 년간 소멸시효 만료 채권을 대부업체 등에 매각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다만 소멸시효 만료 채권도 회사의 자산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절차를 거쳐 진행해야 하며 이에 따른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채권 소각이 SBI저축은행의 본심은 아니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SBI저축은행은 지난해 초 수천억 원 규모의 소멸시효 만료 채권을 한 대부업체에 매각하려 했지만 금융감독원(금감원)이 매각하지 못하도록 행정지도를 내렸다. 즉 어차피 매각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일선에 나서 SBI저축은행에 항의한 사람이 희망살림(현 주빌리은행) 대표였던 제윤경 의원이다.
SBI저축은행도 소멸시효 만료 채권을 주빌리은행에 기부해 소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SBI저축은행 관계자는 “SBI저축은행은 이전부터 소각을 추진했는데 우연히 시기가 맞아 떨어져 주빌리은행의 권유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전했다.
제윤경 의원. 사진출처=제윤경 의원 공식 블로그
소멸시효 만료 채권 소각을 주장하는 정치인은 제 의원뿐이 아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다루는 민생국감으로 거듭나는 게 목표”라며 “SBI가 보유 중인 죽은 채권은 전체 금융권 중 16.4%로 죽은 빚 문서 사상 최대 서민빚탕감조치”라고 밝혔다.
제 의원 측은 SBI저축은행의 태도가 확실히 긍정적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제 의원 측은 “어차피 행정지도로 인해 채권 매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며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의 잇단 권고에 바로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고는 예상 못했다”고 전했다. 실제 금융위는 지난 5일 서민금융진흥원을 출범하면서 저축은행의 소멸시효 만료 채권에 대해서 소각을 권고했다. 주빌리은행 관계자 역시 “처음 SBI저축은행과 연락했을 때는 썩 좋아하는 어투가 아니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어느 정도 결정이 나서 그런지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들은 SBI저축은행이 이미지 쇄신을 위해 긍정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SBI저축은행은 저축은행이라는 업종 특성상 시민들의 여론이 좋지 않은 데다 일본계 회사라는 점에서도 시선이 곱지 않다. 지난 6월에는 모회사인 일본 SBI홀딩스가 혐한사이트 ‘서치나’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SBI저축은행 관계자는 “이미지 개선은 기대효과 중 하나일 뿐 본 목적은 서민금융 구제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저축은행, 법정 최고금리 초과 대출 3조 3천억 ‘헉’ 지난 9월 28일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6월 기준 법정 최고금리인 27.9%를 초과하는 저축은행권 대출은 76만 4730건이고 대출 잔액은 3조 3099억 원으로 집계됐다. 또 잔액 기준 75%가 SBI저축은행, OK저축은행, 웰컴저축은행, JT친애저축은행, HK저축은행, 현대저축은행 등 대형 저축은행 6곳에 몰려 있다고 밝혔다. 저축은행 법정 최고금리는 지난 3월 34.9%에서 27.9%로 7%포인트 인하됐으나 여전히 이를 상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저축은행권은 크게 반발한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최고금리보다 높은 금리의 채권은 최고금리가 27.9%로 결정되기 이전에 대출한 채권이라 문제될 게 없다”며 “그럼에도 금리를 지적하는 것은 여기서 금리를 더 낮추라는 압력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저축은행권은 금리를 인하하면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축은행의 대출금은 예금자의 고금리 예금에서 나오는 만큼 현재 수준에서 금리를 인하하는 건 무리라는 것이다. 앞의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저축은행은 주로 저신용자에게 대출을 해주는 곳인데 여기서 금리를 더 낮추면 저신용자에게 대출을 해줄 수 없다”며 “저축은행에서 대출받지 못하면 결국 사채를 찾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용대출의 금리는 높지만 담보대출의 금리는 7~8% 수준”이라며 “실제로 저축은행 대출의 70%는 담보대출인데 덩치가 큰 저축은행이 신용대출을 많이 하다 보니 대형 저축은행에 고금리 대출이 많다는 통계가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치권 반응은 냉담하다. 제윤경 의원 측은 “저축은행들이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대출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서민들의 가계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예금이자를 줄여서라도 대출 이자를 낮춰야 한다”고 전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