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의원의 퇴임 정치가 주목받고 있다. 제1야당 대표직 고별 기자회견에서 당내 강경파를 향해 “헛소리하는 사람들이 많아 답답했다”고 하더니, 문재인 전 대표의 매머드급 싱크탱크 출범 날인 10월 6일 “경제민주화를 잘못 이해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거침없는 단칼 리더십의 ‘차르’와 더민주 수권정당화의 ‘보완재 역할’ 사이 어디쯤인가에 서 있다. ‘굿바이 차르’가 아닌 ‘다시 김종인’으로 돌아온 그의 대선 파괴력은 실재인가, 허상인가. 그 실체를 추적한다.
김종인 의원.
‘김종인 퇴임 정치’에 담긴 키워드는 통찰력과 강경함의 절묘한 조화다. 김 의원 특유의 독선적 언행은 그대로다. 대표직 재임 시절 더민주 친노(친노무현) 강경파와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 운동권 그룹을 겨냥, “고약한 당” 등의 발언으로 일침을 가했던 김 의원은 정기국회가 시작되자 당·청의 실정을 고리로 대대적인 대여공세에 나섰다.
김 의원은 10월 4일 한국은행 국감에서 “정부의 저금리 정책이 (사회) 양극화를 확대하고 있다”며 한은의 독립성 문제를 꺼냈다. 앞서 헌정 사상 초유의 집권여당 국감 보이콧 사태와 관련해선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라며 당이 독려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 촉구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그는 9월 26일에는 고(故) 백남기 농민의 빈소를 찾았다. 당내 강경파의 투쟁 일변도를 비판한 김 의원이 강경 행보에 나선 것이다.
이는 정기국회 꽃인 국감 기간 박근혜 정부와 각을 세우면서 정치적 사안마다 특유의 강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분석된다. 국감 기간 당 대표 시절 주창한 법인세 인상을 비롯해 다중대표소송제 등을 골자로 하는 ‘김종인 상법’이 부각됐다. 김 의원 측은 이와 관련해 “현 정부와 새누리당 문제점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 의원은 문 전 대표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가칭)에 대해선 “말을 거창하게 하고 있는데, 경제민주화와 성장을 상충하는 개념으로 구분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야권 한 관계자는 “국감 기간인 10월은 ‘극한 정쟁’ 국면, 예산이 시작되는 11월은 그보다는 ‘톤 다운’하는 시기”라고 귀띔했다. 극한 정쟁 국면에서 김 의원이 박근혜 정부의 실정과 문 전 대표의 중도 행보를 공격하는, ‘일타쌍피’에 나선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냉철한 통찰력으로 온건과 강경 행보 사이를 오가며 전략적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이와 관련해 “김 의원은 굉장히 현실적인 정치인”이라며 “(정치 이슈마다) 매우 구체적이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대응하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이 가진 강점은 ‘노련함’과 ‘상징성’이다. 헌법 119조 제2항을 입안한 경제민주화의 상징이면서 절름발이로 전락했던 더민주를 4·13 총선에서 구원한 승부사다. 그는 앞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안철수·김한길 체제’(2014년 3월∼7월)도 ‘박영선 비대위’(2014년 8월~9월)도 더민주 ‘문재인 체제’(2015년 2월~2016년 1월)도 제어하지 못했던 당 강경파를 단숨에 제압했다.
여야와 정치전문가들은 이를 이중적 존재에서 파생한 포비아(공포)로 규정했다. 김 의원은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에 합류,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를 도왔다. 이후 여권 실세인 친박(친박근혜)계로부터 ‘토사구팽’ 당한 뒤 최대 정적인 더민주에 둥지를 틀었다. 김 의원이 정적이었던 더민주에 합류해 총구를 겨누는 것 자체만으로 ‘여권 분열-야권 결집’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내부 고발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 한 관계자는 “김 의원이 반대편에서 정부 비판을 쏟아낼 때마다 뼈아픈 것은 사실”이라며 “오랜 정치 경험에서 나온 능수능란한 정치행보가 야권에 안정감을 줬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가 반문 깃발을 들고 비패권지대를 현실화할 경우 총선의 창과 방패가 김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에서 ‘김종인과 문재인’으로 전환된다. 친문 내부에 ‘김종인 역할론’을 평가 절하하면서도 대외적인 때리기를 최대한 자제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 김 의원이 19대 총선 당시 한명숙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노 강경파와 진보성 강화를 벗고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의 투 트랙 노선에 드라이브를 걸자, 당내 제 세력이 ‘김종인 바라기’를 연출했다. 결과는 중도 무당파의 이탈 최소화에 따른 총선 승리.
더민주 비노계 중진 의원은 김 의원에 대해 “경제 민주화 상징이 아니냐. 시대를 꿰뚫는 눈과 이를 실천할 정책적 능력으로 정치 이슈의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태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 실장은 ‘김종인 비대위’ 체제 당시 김 의원의 가장 큰 힘은 ‘공포’라고 규정한 바 있다. 김종인을 당 대표로 세우는 한 직진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관심은 ‘김종인 퇴임 정치’가 대선 발 정계개편에 미칠 역학 관계로 모인다. 김 의원이 퇴임 후 반문 행보에 방점을 찍은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김 의원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비패권지대 합류를 전제로 ‘연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의원 측근은 일부 언론을 통해 “여러 채널로 의중이 어떤지 서로 모색을 해보는 단계”라고 말했다. 그러자 야권 내부에선 김 의원이 ‘문 전 대표와 선긋기를 한 것 같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 총장과 연대보다는 친박·친문계를 제외한 모든 세력을 비패권지대로 규합하는 행보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더민주 비주류인 이종걸 의원은 10월 4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김 의원이) 아직 카드를 버릴 필요는 없지 않으냐, 뭐 그런 정도의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다”고 말했다. 원로 정치인인 조순형 전 민주당 의원도 ‘반기문·김종인’ 연대 가능성을 낮게 본 뒤 “비패권지대에 사람을 모으기 위한 발언이 아니겠냐”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반 총장 측 김숙 전 유엔 대사는 정치권의 숱한 시나리오와 관련해 “귀국할 때까지는 국내 정치에 눈을 돌리시지 않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이라며 말을 아꼈다.
전 평론가는 “김종인식 대권 플랜에 문 전 대표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문 전 대표를 제외한 모든 후보와 접촉면을 늘리면서 타이밍을 볼 것”이라며 “5명 정도로 후보가 결정될 때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극대화하는 데 전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4년 전 친박계에 이어 친문계로부터 토사구팽을 당하느니, 내각제 개헌 등의 정계개편으로 판을 흔드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다는 시나리오다. 이에 따라 김 전 대표의 ‘대권주자 감별사’ 행보는 차기 대권판이 열리는 연말정국에서 한층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반론도 있다. 문 전 대표가 10월 6일 대선 싱크탱크를 조기 가동하면서 독자행보에 방점을 찍었으나, 결국 ‘김종인 끌어안기’에 나설 것이란 주장이다.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중진 의원은 “결국 함께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로 경제민주화를 통해 차기 대선 이슈를 선점할 수 있는 데다, 2012년 대선 이후 핵심 변수로 등장한 5060세대의 투표 위력 등을 꼽았다. 이 두 가지의 시너지효과로 승리한 선거가 4·13 총선이다.
김 의원을 바라보는 친문계의 속내는 복잡하다. 현역 의원 및 당 지도부와 실무진 간 온도 차도 크다. 친문계로 분류되는 한 최고위원은 “(김 의원은) 대체 불가한 위치에 있다”라고 말한 반면, 문 전 대표 측 실무진 관계자는 “‘김종인 역할론’은 글쎄…”라며 확답을 못 했다. 친문계 지지를 받은 추미애 대표가 당 대변인에 ‘김종인 사람’인 박경미 의원을 임명하면서 한때 양측 간 화해 기류가 흘렀지만, 이들이 대선 국면에서 손을 맞잡을지는 미지수다.
더민주 8·27 전대 직후 이들의 회동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10월 초까지 성사되지 않았다. 매머드급 싱크탱크 가동에 나선 문 전 대표는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김 의원이 비패권지대 정계개편을 염두에 둔 만큼, 간극을 좁히기는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문재인 대세론’과 ‘차르 김종인’의 물고 물리는 게임의 총성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윤지상 언론인
정계개편의 키는 이들 손에…비문·반문 세력 행보 이목집중 더불어민주당 내 반문(반문재인)·비문(비문재인)계를 보는 시선은 ‘이중적’이다. 이들 중 일부는 지난해 말 불어 닥친 야권 발 정계개편과 4·13 총선에서 호남을 고리로 한 제1야당 고립 작전을 수수방관했다. 때문에 당내 주류인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계 및 그 지지층은 반문·비문계를 향해 “내부 총질을 한다”고 비판한다. 반면 민주당 60년 역사의 한 축인 이들을 영원한 ‘운명 공동체’로 보는 시각도 있다. 때때로 정치적 변곡점마다 ‘헤쳐 모여’를 단행하지만, ‘51 대 49’ 싸움인 대선에선 승리 방정식의 제1 조건이라는 이유에서다. 더민주가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평민당) 세력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노·운동권 그룹의 결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내부 이탈을 막는 게 ‘최선의 방어막’이라는 논리다.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세론’과 ‘필패론’을 둘러싼 더민주 주류와 비주류의 불편한 동거는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당 주류를 바라보는 비주류의 시선은 싸늘하다. 차기 대선 전망 얘기가 나오면 “모른다” “아직 때가 이르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느냐”며 즉답을 피한다. 숨죽인 채 차기 대선 정국을 관망하는 꼴이다.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를 지지할 것이라고 얘기하는 의원들도 거의 없다. 이들은 ‘문재인 비토’의 상징적 사건으로 8·27 전당대회에서 이른바 ‘문재인 키즈’인 양향자 최고위원이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인 유은혜 의원을 꺾고 여성 부분 최고위원에 오른 것을 꼽는다. 비주류 한 관계자는 “재선이자 대표적인 여성 의원으로, 원내대변인까지 지냈던 후보가 친문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출되지 못한 데 대한 우려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가 탈당한 지난해 12월 전까지만 해도 당내 비노(비노무현) 위세는 친노(친노무현)계를 능가했다. 범주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당시 ‘친노 4.5 대 비노 5.5 구도’에서 4·13 총선을 거치면서 6 대 4 구도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더민주 8·27 전당대회에서도 친문 지지를 업은 추미애 대표가 54.03%, 비노계의 이종걸 의원,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이 각각 22.89%와 22.08%를 얻었다. 친노의 분화, 즉 친노이지만 친문이 아닌 그룹의 움직임이 대선 발 정계개편의 키 포인트라는 분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범친노계는 친문 직계 이외에도 정세균계를 비롯해 민평련·박원순·안희정계 등을 포함한다. 다만 이들은 ‘문재인 대세론’을 오롯이 지지하지는 않는다. 이들의 수는 더민주 전체 국회의원 4분의 1 수준인 30여 명에 달한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독자 세력화의 기치를 높이면서 ‘친노 분화’는 변수가 아닌 상수로 격상했다. 또한 ‘문재인 비토’를 외치는 손학규계와 통합행동, 원조 비노계 등의 반문계도 일정 세력군을 형성했다. 더민주의 ‘문재인 대세론’과 결이 다른 국민의당과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제3 지대론, 김종인 의원의 비패권지대 등 정계개편의 방향에 따라 이들의 향배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비문계 관계자는 “대권 구도가 현 상태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며 “어떤 식으로든 정계개편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비문계와 반문계가 제3 지대론과 비패권지대 등의 정계개편 과정에서 ‘평민당 재연 프로젝트’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는 4·13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 전 대표가 호남 맹주를 자처해 탈당하자, 야권 내부에서 1987년 대선에서 4자 필승론의 지역등권론을 업고 독자 출마한 DJ를 연상케 한다고 붙인 명칭이다. 당 주류와 비주류의 사생결단 대치는 차기 대선 룰 논의 과정에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민평련 소속 의원 한 보좌관은 “탈당 등 원심력의 정계개편은 상상하기 힘들다”면서도 “결국 모든 문제는 대선 룰로 귀결된다. 정권교체 여부도 여기에 달린 셈”이라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