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헌재 경제부총리. | ||
그는 이와 관련해 박해춘 LG카드 사장,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성규 국민은행 부행장, 최범수 국민은행 크레딧뷰로 설립추진위원장, 서근우 하나은행 사외이사, 정태석 광주은행장, 정의동 증권예탁원 사장, 강정원 국민은행장 내정자 등을 ‘이헌재 사단’으로 불렀다. 그는 “금융감독원 노조에서 종전 금융자본 배분이나 금리조정 등 직접개입하는 관치금융이 최근에는 금융문제 해결, 이사 지배구조 등에 간접개입하는 형태로 바뀌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자기 사람 심기’를 통한 ‘인치’형태로 개입하고 있다는 주장했다.
이헌재 부총리와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되는 인맥이 금융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DJ 시절 금융감독원장과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쳤고, 지난 2월11일 재정경제부 부총리로 다시 관가에 컴백한 그는 김대중 행정부-노무현 행정부에서 모두 경제쪽의 수장으로 일한 기록을 갖고 있다. 때문에 지난 6년간, 또 현직인 지금도, 최소한 노무현 행정부의 임기가 끝나는 앞으로 4년간 금융분야에서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고 그의 재임시절 추진했던 일을 함께한 사람은 모두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되는 인맥이 민관 금융계를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시장의 의견이다.
지난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국민은행 분식회계 파문도 결국 김정태 행장의 연임포기라는 결론이 도출됐고, 후임에 외국계 은행 경력의 강정원 전 서울은행장이 내정됐다.
이런 인사 결과에 대해서도 ‘이헌재 스타일’이라는 의견이 대세다. 김정태 전 행장도 제2금융권인 증권업 출신이지만 제1금융권인 주택은행장으로 이식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헌재 금감위원장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순혈의 은행권 출신이나 관료 출신보다는 기업에서 성장한 인물이나 민-관 경험을 두루 가진 사람을 선호하는 것이 이헌재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외국계 금융기관에 잠깐 몸담았다가 대부분을 삼성그룹에서 일한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을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밀어붙여 제2의 김정태 행장만큼 스타성을 가진 뱅커로 키운 것도 사실상 이헌재 부총리의 작품이다.
이에서 보듯 이헌재 부총리의 스타일은 환란을 전후해 금융가 인사의 물갈이를 통해 구체화된 면이 없지 않다. 때문에 그의 인사는 늘 화제가 됐다. 인사를 통해 정책의 방향과 금융기관의 방향성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가 지난 2월 입각 전 사모펀드를 추진한다고 하자, 시장에선 이헌재 펀드라는 얘기가 나왔다. 이헌재 부총리가 주도가 돼서 돈을 모아 은행 인수를 추진하겠다는 것.
여기에 국내의 내로라하는 금융권 인사들이 참여해 화제가 됐었다. 하지만 이 사모펀드 결성 움직임은 이 부총리가 입각하면서 물건너갔다.
대신 그 펀드에 관여했던 인물들이 속속 중용됐다.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대표적인 인물.
그러다 보니 ‘이헌재 사단’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이 더 기승을 부렸다.
특히 ‘이헌재 사단이 이미 민간업체들이 하고 있는 크레딧뷰로 사업을 하기 위해 새로 회사를 세운다’ 등의 얘기는 ‘이헌재’라는 브랜드의 음과 양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다.
크레딧뷰로 설립 논란은 지난 4월 출범한 은행권의 크레딧뷰로 설립 추진 컨소시엄에서 비롯됐다. 이 컨소시엄을 이헌재 사단이 중심이 돼서 추진하고 있다는 것.
크레딧뷰로란 개인이나 법인의 신용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유료로 금융기관에 제공하는 사업으로 한신평이나 한신정 등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본격화되지 못한 분야인데 여기에 크레딧뷰로 컨소시엄이 뛰어든 것.
크레딧뷰로 컨소시엄은 국민은행, 우리금융지주, 삼성카드, LG카드, 서울보증보험 등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으로 이들 회사의 최고경영자들이 하나같이 이헌재 부총리와 가까운 사이라는 점에서 이헌재 사단의 부산물(?)로 보는 시각이 있을 정도다.
국민은행의 최범수 투신증권인수 사무국장, 우리금융지주의 황영기 회장, LG카드의 박해춘 사장 등 면면이 모두 이헌재 부총리와 이런 저런 인연으로 엮인 인물들.
크레딧뷰로 사업은 기존의 신용정보 평가회사인 한신평이나 한신정과 업무가 겹친다는 점에서 중복투자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감독기관인 재경부에선 “현재 민간 개인신용평가 회사가 있지만 신뢰도가 낮은 편”이라며 은행권의 크레딧뷰로 사업 추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에 대해 기존 신용평가사쪽에선 ‘재경부에서 신용평가사를 믿을 수 없다’고 표현한 것에 대해 분개하는 분위기다. 이미 신용평가사들의 준비가 다 끝난 마당에 또다른 크레딧뷰로를 설립하겠다는 것 자체가 국가적인 낭비라는 것. 이들은 크레딧뷰로 설립을 추진하는 세력이 ‘이헌재 사단’이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점이 지적되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이른바 ‘좋은 자리’에 ‘이헌재 사단’이 가는 것으로 자꾸 비치자 이 부총리는 지난 4월 재경부 정례 브리핑을 통해 “나에게 이헌재 사단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좋지만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표현을 자제해달라”고 이례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이헌재 사단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명예훼손을 당하는 것”이라며 “어쩌다 수십년 일하는 과정에서 나하고 길게는 1~2년, 짧게는 몇 달 스쳐간 인연을 가진 사람들이 이헌재 사단으로 불림으로써 유능한 사람들이 평가절하되지 않을까 송구스럽다”고 그는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박해춘 LG카드 사장의 발탁에 대해 산업은행 총재의 작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LG카드가 경영위기를 겪으며 산업은행 관리로 넘어가면서 산업은행 총재가 박 사장을 염두에 두었지만 박 사장이 고사하자 이 부총리에게 박 사장 영입을 도와달라고 부탁하기에 박 사장에게 얘기를 했을 뿐 자신의 ‘발탁’이 아니라는 것.
이 부총리 주위에서는 이 부총리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관치를 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이 부총리가 한국신용평가에서 일했던 85~91년에 직장 상사로 이 부총리의 “글을 받아 적고 정리하는 일”을 했던 이성규 국민은행 부행장은 최근 펴낸 <이헌재식 경영철학>이라는 책에서 “그분(이헌재)의 어휘집에는 이헌재 사단이라는 용어가 없다. 일개의 사단으로 규정되려면 그 일원들이 적어도 시장과 기업을 보는 시각에서 뭔가 상당 부분 같은 철학을 공유해야 하는데 그 점에서 명확치가 않다”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이헌재 사단 논란에 대해 “금융계와 기업계에서 나이 60이 넘도록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교류 범위에 후배가 많았다. 그들이 이제는 적극적으로 일할 나이가 됐기 때문에 부각되고 있는 것”이라며 이헌재 사단으로 들먹여지는 사람들이 자신(이헌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능력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김대중-노무현 행정부로 이어지는 새로운 집권세력의 경제-금융분야에서 정점에 서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 그 이전 박정희 시절에는 관계에서, 전두환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재계에서,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재경부 산하 단체에서, 그리고 김대중 정부에서 다시 관계의 중심부로 재진입하는 드문 이력을 지녔기 때문에 그의 인맥이 남보다 더 범위가 넓고 방대할 수밖에 없다.
그는 부총리 입각 직후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다. 문제 해결에 가장 빠른 길이 있고 거기에 시장 컨센서스까지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그 길을 택할 것이다.”
또 ‘이헌재 사단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내사람만 너무 챙기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요즘 사단은 인원이 너무 적더라. 차라리 ‘이헌재 군단’이라고 불러달라. 인재는 키우고 써먹어야 한다. 꼭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그가 사람을 쓰는 것도 이런 원칙의 연장선상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전성기에 좌절을 맛보기도 하고, 권력의 바깥에서 20여 년을 지내는 등 권력의 음과 양을 잘 아는 그가 ‘이헌재 사단’이라는 별칭까지 듣는 그의 인맥에 대한 세간의 인식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