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원회관 전경.
대한민국의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9월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해 1∼7월 혼인 건수는 16만 5100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 감소했고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0년 이래 최저치였다.
혼인 건수 감소는 출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 1∼7월 출생아 수는 24만 9200명으로 5.9% 감소했다. 출생아 수 역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치였다. 정치권에서 ‘아동수당’ 바람이 불고 있는 배경이다.
국민의당은 기존의 보육 체계를 유지하면서 0~6세의 모든 아동에게 월 10만 원의 아동수당 지급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저출산고령화 특별위원회도 최근 아동수당의 지급을 논의하고 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국정감사를 대비해 의원들이 워크숍을 했다. 아동수당과 복지 전반적인 것에 대해 토론했다. 당시 발제자가 언급했지만 아직 당론으로 채택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더민주는 아동수당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다. 9월 28일 박광온 김병관 더민주 의원과 양향자 최고위원은 공동으로 “양극화와 저출산이라는 혹독한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며 아동수당법을 제안했다. 박 의원실에 따르면 아동수당법은 만 12세까지 매월 최대 30만 원을 지급하는 내용이 골자다. 태어나서 만 2살까지 10만 원, 만 5살까지 20만 원, 만 12살까지 30만 원을 연령별로 매월 양육가정 전부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이른바 ‘박광온안’은 기존의 어린이집에 대한 지원과 가정양육수당은 유지하고 중장기적으로 아동수당과 통합한다는 계획이다. 박 의원 측은 아동수당의 수혜 아동이 약 554만 명으로 추산하고 연간 약 15조 원의 재원이 필요한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15조’라는 거대한 숫자가 정치권에 포퓰리즘 논란을 촉발했다.
박 의원이 아동수당을 제안한 바로 이튿날, 김종석 새누리당 의원은 “더민주의 대안은 연간 15조, 10년간 150조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부어도 그 효과를 확신할 수 없다. 또 하나의 현금 살포라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 의원의 최측근 역시 “노무현 정부 때 우리나라 저출산 정책의 방향이 아동수당 형태보다는 보육 쪽으로 결정됐다. 다시 정책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보육 예산을 그대로 놓아두고 양육수당을 추가하려면 재원이 엄청나게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 의원실 관계자는 “양극화와 저출산 문제 해결은 시대적 과제다. 새누리당 집권 이후 출산율이 전혀 올라가지 않았다. 솔직히 새누리당이 포퓰리즘을 논할 자격이 있나. MB정부가 4대강으로 수십조 원을 쏟아 부었는데 그 돈이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저출산 위기라면 획기적인 정책을 써야 한다”고 전했다. 더민주의 한 보좌관도 “아동수당에 포퓰리즘 낙인을 찍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이렇게 몰아붙이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태도이고 새누리당이 해서는 안 될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동수당의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보건복지부 고위관계자는 “소요 재원이 굉장히 크다. 13조~17조 얘기도 나오고 있다. 돈 주면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나. 어떤 식으로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 현재 영유아 복지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양육수당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도 굉장히 많은 돈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동수당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면, 제도의 중복성 문제가 생긴다. ‘퍼주기’ 논란이 생길 수 있어 우리 부처에서도 중장기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박 의원 측은 사회통합세로 아동수당을 위한 재원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연간 2000만 원을 초과하는 이자소득과 배당소득, 과표 200억 원을 초과하는 법인, 상속세와 증여세 등에 일정비율만큼 아동수당세를 부과하는 방법이다. 앞서의 박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 예산기획예산처도 사회통합세로 약 8.5조~9.5조 원의 재원이 마련될 것으로 추정했다. 배당소득은 불로소득이다. 2000만 원 초과하는 대상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과세 대상도 많지 않다. 초고소득층에 사회적 요청을 하는 차원이다. 대기업에도 저출산 해결을 위해 의미 있는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민의당 일부 당직자들은 사회통합세의 현실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 국민의당 핵심 당직자는 “무상보육 재원 마련도 심각하다. 급한 불도 아직 끄지 못하고 있다. 사회통합세 같은 증세 방안은 국민적인 반발 때문에 어렵다. 세금을 걷겠다고 하면 고소득층들이 가만히 있겠나. 복지부도 펄펄 뛸 수밖에 없다. 재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한 부모 가정과 저소득층의 양육수당을 올리는 것이 더 시급하다. 증세를 안 해도 긴축재정으로 할 수 있다. 재정적인 상황을 고려를 하지 않는다면 아동수당은 포퓰리즘과 다름없다. 세금에 대한 세밀한 계획 없이 땅을 파서 아이들에게 돈을 줄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김병관 의원 측은 아동수당법이 포퓰리즘으로 번지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김병관 의원실 관계자는 “노인들을 위한 기초연금은 포퓰리즘이 아닌가. 젊은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아이를 못 낳고 있다. 육아 문제 때문에 한국경제의 역동성이 사라지고 있다. 이러다가 나라가 망할 수가 있다. 아동수당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면 저출산 극복 정책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1년에 30조를 들여서라도 저출산을 해결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여의도 정치권 일각에서도 ‘대선용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좌관은 “아동수당은 당연히 정치적 의도가 깔린 정책이다. 저출산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지만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다. 국민적인 공감대 없이 무조건 설득하겠다고 ‘질러’버리는 것은 표를 얻기 위한 전형적인 꼼수다. 9조를 목적세로 충당한다고 해도 나머지 6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재원 마련 방안이 없는 공약은 전부 포퓰리즘이다. 재원 조달이 명확하지 않으면 대선을 바라보고 던지는 공약일 공산이 크다”고 꼬집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지구촌은 지금 포퓰리즘 몸살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브라질에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의 복지 정책에 대한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베네수엘라 우파 세력은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공짜’ 복지 정책이 재정 파탄을 불러왔다고 공격하고 있다. 스위스 국민들은 최근 기본소득 법안에 이어 국민연금 10% 인상안을 반대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브라질의 영웅이었다. 2003년 집권한 룰라 전 대통령은 저소득층 생계 보조제도인 ‘볼사 파밀리아’로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 브라질 내에서도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일었지만 룰라 전 대통령은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볼사 파밀리아 덕분에 저소득층 숫자는 빠른 속도로 감소했다. 하지만 포퓰리즘의 흉터가 최근 브라질을 덮쳤다. 지난해 브라질 재정적자는 GDP의 10%를 넘는 1110억 헤알(약 36조 7200억 원)에 달해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달 중순 브라질 연방 검찰은 돈세탁과 허위진술 혐의로 룰라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브라질 역사상 최고의 스타 정치인의 처참한 몰락이었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야누스의 얼굴을 지닌 지도자였다. 국제사회는 14년 동안 집권한 차베스 전 대통령을 향해 ‘독재자’로 비판했지만 그는 빈민들을 구원한 혁명가였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대규모의 빈곤 퇴치 프로그램으로 베네수엘라의 복지 수준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차베스 전 대통령이 2013년 암으로 사망한 이후로 베네수엘라 내에서는 차베스식 포퓰리즘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국제 유가 하락 때문에 최근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는 중이다. 결국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베네수엘라 야권 연합은 16년 만에 집권 여당을 누르고 승리했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차베스의 포퓰리즘, 즉 ‘차비스모(Chavismo)’를 심판한 것이다. 스위스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직접 민주주의’ 나라다. 1848년 연방 헌법에 따라 직접민주주의를 채택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국가의 정책 결정에 참여해왔다. 9월 25일 스위스는 국민연금 지급액을 10% 올리는 ‘국가연금(AHV) 플러스’ 법안을 국민투표에서 59.4%의 반대로 부결시켰다. 지난 6월엔 모든 국민에게 매월 2500 스위스 프랑(300만 원) 이상의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법 제정에 대해서도 76.9%가 반대해 무산됐다. 기본소득법에 대한 투표를 앞두고 스위스 국민들은 뜨거운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결국 “미래세대에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의견이 우위를 점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