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 14에 위치한 한미약품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증권사들은 한미약품이 내놓은 ‘호재성 공시’에 일제히 반응했다. ‘기다리던 또 한 번의 쾌거’(동부증권), ‘8번째 홈런’(HMC증권) 등 주식 매수를 추천하는 리포트가 잇따랐다. 한미약품의 목표주가는 90만~120만 원에 이르렀다. ‘중립’ 혹은 ‘매도’ 의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튿날인 9월 30일 장 개시와 함께 한미약품의 주가가 요동쳤다. 이날 오전 9시 장이 열리자마자 한미약품의 주가는 64만 9000원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30분이 채 되지 않아 주가는 급전직하했다. 같은 날 오전 9시 29분 한미약품은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 체결한 표적항암제 ‘HM61713’, 일명 ‘올무티닙’의 기술 이전이 취소됐다고 공시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7월 28일 “베링거인겔하임과 7억 3000만 달러(한화 약 8100억 원) 규모의 올무티닙 권리 이전 계약을 맺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9월 29일 전후 베링거인겔하임은 올무티닙에 대한 임상실험 데이터 등을 근거로 한미약품 측에 계약 취소를 통보했다. 올무티닙의 상품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전날 호재공시로 장 시작과 함께 치솟은 한미약품 주가는 이 같은 ‘악재성 공시’ 한 방에 삽시간에 50만 8000원까지 폭락했다. 한미약품에 찬사를 보내던 증권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쉬어가는 경험이 필요한 시점’, ‘기술수출 리스크 반영’이라며 목표 주가를 60만~70만 원대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10월 6일 장중 한미약품 주가는 45만 원선마저 붕괴했다. 불과 일주일 만에 20만 원 가까이 하락한 것이다.
이날 한미약품은 일련의 사태와 관련, 홈페이지에 뒤늦게 사과문을 게재했다. 사과문의 내용은 “9월 29일 오후 7시 6분께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통보받고, 이를 최대한 신속히 공시하고자 했으나 9월 30일 장 개시 이전 공시 내용과 관련해 한국거래소와 협의하고 이를 내부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에 시간이 소요돼 공시가 늦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2일 김재식 한미약품 부사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사건 개요와 같았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위법한 행위는 결코 없었고 논란이 불거진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시장의 의심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의혹의 시선은 한미약품이 어느 시점에 올무티닙 계약 취소 건을 인지하고 있었느냐에 쏠린다. 먼저 한미약품은 9월 29일 오후 7시 6분께 이메일을 통해 계약 취소 사실을 최종 확인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증권업계 일각에선 한미약품이 오후 7시 6분보다 먼저 계약 취소 사실을 인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한미약품 내부자가 자체 취득한 정보를 공시 이전에 빼돌렸는지 여부가 관건인데 사건 타임라인을 보면 ‘누군가’ 비슷한 시점에 호재와 악재 둘 다 알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29분’은 투자자가 엑시트(주식 매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발 빠른 기관 투자자들은 사전에 악재를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관계자 역시 “회사 중요 공시사항은 내부 보안 유지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실제로 이날 기관은 35만 9933주를 한꺼번에 매도했으며, 외국인 역시 3만 7438주를 매도했다. 이는 평소 기관 거래량의 많게는 수백 배나 되는 물량이었다. 기관과 외국인의 물량을 개인투자자들이 몽땅 받아간 것으로 집계됐다.
‘한미약품 늑장공시’ 사건을 조사 중인 합동조사부(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국,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는 ‘악재가 있으니 한미약품 주식을 사지 말라’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9월 29일 오후 유포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합동조사부 관계자는 “아직 조사 초기 단계라 구체적인 내용과 조사 방법을 밝힐 수는 없지만 관련 내용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합동조사부는 지난 4일 한미약품에서 늑장공시와 관련한 자료를 받고, 회사 주요 임직원의 핸드폰·컴퓨터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선 강제 수사가 아니기 때문에 한미약품의 증거 인멸 등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앞의 합동조사부 관계자는 “그런 부분(증거 인멸)도 고려할 것”이라며 혐의가 나오는 대로 패스트트랙 방침을 적용해 검찰에 고발한다는 입장이다.
한미약품의 ‘9시 29분 공시’ 경위와 관련해 한미약품과 한국거래소의 주장이 엇갈린다. 한국거래소는 말 그대로 ‘자율공시’이기 때문에 한국거래소의 승인이 필요 없다고 하지만 한미약품은 “정정공시를 할 때 계약금액의 50% 이상이 차이 나면 거래소가 ‘페널티’를 주기 때문에 이를 논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반박했다. 실제 한미약품은 9월 30일 오전 마일스톤(임상 단계별 기술료 지급) 계약의 특수성 등을 언급하며 한국거래소와 페널티 적용에 대한 협의를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거래소 측은 이에 대해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9월 30일 장 개시와 함께 한미약품의 주가가 요동쳤다. 이날 오전 9시 기준 한미약품의 주가는 64만 9000원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30분도 못가 한미약품의 주가는 가파른 하강 곡선을 그렸다. 같은 날 오전 9시 29분 한미약품은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 체결한 표적항암제 ‘HM61713’ 일명 ‘올무티닙’의 기술 이전이 취소됐다고 공시했다. 일요신문 DB
앞의 증권업계 관계자는 코데즈컴바인 사건을 예로 들며 “(합동조사부가) 한미약품에 불리한 증거를 찾아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약품의 책임을 입증하기 위해선 이번 늑장공시로 이득을 본 공매도 세력과 한미약품 내부자의 공모 여부를 밝혀야 하는데 그 실체를 파헤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올 초 금융당국은 주가가 급등한 코데즈컴바인에 대해 시세 조종 등의 혐의를 두고 조사를 벌였지만 그 ‘배후’를 찾지 못했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상당수 기관 투자자들은 거래 계좌를 홍콩 등 해외에 두고 있어 자금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사건 당일인 9월 30일 한미약품에 대한 공매도 거래량은 10만 4327주로 평소보다 10배 이상 많았다. 특히 같은 날 오전 9시 28분까지 파악된 공매도 거래량은 5만 471주로 내부 정보를 활용한 거래가 의심되는 상황이다. 앞서 밝혔듯 한미약품은 이날 오전 9시 29분에야 계약 취소 사실을 공시했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매입한 뒤 주가가 하락하면 되파는 수법으로 차익을 챙기는 투자 전략을 가리킨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개인투자자가 공매도를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주가가 하락할 것을 예상한다는 것은 고도의 정보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내부자 혹은 전문가의 조력이 필수적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손해를 본 이날 공매도 세력은 주당 15만 원가량의 차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9시 28분까지 한미약품 공매도 거래금액은 320억여 원으로 집계됐다. 증권업계 다른 관계자는 “말 그대로 공매도는 없는 주식을 빌려 사는 것인데 지분율이 높은 국민연금공단 주식을 ‘누군가’ 빌렸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국민연금공단이 증권사에 수익을 내기 위해 맡긴 주식 일부가 기관 투자자들을 통해 공매도에 쓰였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지난 5일 국민연금공단은 보유 중인 한미약품 주식 27만 9065주를 처분했다고 밝혔다. 지분율은 9.78%에서 7.1%로 줄었다. 관련 주식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간 한미약품은 정부가 주도한 ‘혁신형 제약기업’에 선정돼 세제 혜택 등을 받아왔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한미약품이 다국적 제약기업과 총 8조 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달성했다”며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상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늑장공시로 한미약품은 최악의 경우 정부의 R&D 지원을 받지 못할 수 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7월에도 호재 뒤 악재를 공시해 시세 조종 의혹을 사는가 하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 거래로 내부 연구원이 구속되는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호재성’ 공시가 이번에 ‘악재’가 된 베링거인겔하임과의 올무티닙 기술 이전 계약 건이다. 앞의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같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하는 자본보다 ‘투기성 자본’이 몰린 인상이 짙다”며 “(이번에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탐욕’이 움직이는 종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
3일 만에 냉정 되찾아 ‘괘씸해도 이만한 효자 없다’ 지난 9월 30일 한미약품 사태가 터진 후 여의도 증권사에서는 탄식이 쏟아졌다. 차세대 증시를 이끌 바이오산업이 이번 사태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에서다. 하지만 채 3거래일이 지나지 않아 여의도는 다시 냉정을 되찾았다. 괘씸하지만 아직 바이오 종목 가운데 한미약품만한 게 없고, 이번 사태 때문에 바이오산업 전체에 대한 기대가 꺾이지는 않을 것이란 분위기가 돌았다. 한미약품 사태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폐암신약 HM61713(올무티닙)에 문제가 발생해 매출에 차질이 빚어진 점과 호재를 앞세우고 악재를 늑장공시해 투자자를 농락했다는 의혹이다. 증권가에서는 우선 전자에 대해서는 너무 인색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이 강하다. 정보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다. 베링거인겔하임이 계약해지라는 강수를 둔 것은 지난 7월 경쟁사인 아스트라제네카가 같은 폐암치료제인 ‘타그리소’가 성공적으로 임상3상을 마쳤다고 발표한 탓이 크다. 경쟁사에 선수를 빼앗긴 데다 예기치 못한 부작용까지 겹치자 신약 도입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미약품은 지난 9월 29일 글로벌제약사 제넨텍과 신약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가치는 약 1조 원이다. 해지된 베링거인겔하임과 계약 가치는 약 1조 3000억 원이다. 상대적 손실은 3000억 원 정도다. 빠르면 올 연말 비만치료제 혹은 당뇨치료제의 임상 진입이 예상된다. 임상 진입과 함께 수출이 이뤄지면 이번 계약해지에 따른 신약 전반에 대한 우려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곽진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주가에 반영됐던 신약 개발 가치에서 이번에 문제가 된 제품을 제외했다. 나머지 개발이 진행 중인 신약의 가치도 위험확률을 감안해 30%가량 할인했다”면서 “당분간 임상에 대한 기대를 선반영하지 않겠지만, 실질적인 결과에는 여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오히려 더 문제가 되는 부분은 투자자 신뢰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2분기 실적 발표 당시 기술수출 계약에 이어 적자 실적을 공개해 주가가 폭락했다, 한 해 만에 또 다시 투자자들을 농락한 셈이다. 하지만 사고가 저가매수의 기회일 수도 있다. 지난해 7월 초 55만 원을 넘었던 한미약품 주가는 2분기 적자 실적 공개와 선행매매 의혹 등이 불거지며 35만 원대까지 추락했다. 그러나 10월 3분기 실적과 함께 주가가 반등, 11월 한때 87만 원을 넘어섰다. 올 들어 추가 호재가 나오지 않으면서 주가는 9월 초 50만 원 중반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제넨텍과 신약계약 호재가 터지면서 단숨에 60만 원대로 올라섰다. 이후 베링거인겔하임 악재로 50만 원선까지 무너졌지만 증권사들의 목표주가는 70만 원 후반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공매도 세력이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들은 다시 주식을 되사 빌려준 주주에게 갚아야 한다. 공매도에는 쇼트커버링(short covering)이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한미약품 공매도 거래대금은 지난 9월 30일 616억 원으로 치솟았지만 다음 거래일인 지난 4일 257억 원, 5일 148억 원 수준으로 줄었다. 200억 원 미만의 공매도는 이번 사태 전에도 종종 있던 수준이다. 현재 한미약품 주가는 40만 원 중반까지 내려간 상태다. 기술적 분석상 한미약품의 이전 전 저점은 31만 원대다. 가장 가까운 집중 매수대는 40만 원 근처에서 형성돼 있다. 최열희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