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상태에서 인근 주민들에 의해 잡아먹힌 올드 잉글리시 쉽독 ‘하트’를 찾는 전단지. 하트 견주 블로그 캡처.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 거주하는 블로그 운영자 채 아무개 씨(여‧33)는 10년 간 애지중지 길러오던 올드 잉글리시 쉽독 ‘하트’를 지난달 26일 자택에서 잃어버렸다. 국내에서 키우는 인구가 많지 않아 다소 생소한 올드 잉글리시 쉽독은 대형견종에 속하는 목양견으로 삽살개와 외양이 흡사하다.
채 씨는 ‘하트’를 잃어버린 지역 인근에 개장수들이 자주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급해졌다. 곧바로 파출소에 실종신고를 낸 그는 삼례와 익산의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하트’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살아만 있어달라는 채 씨의 바람과 어긋나게도 실종 이틀 만에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가 된 채 주인의 품으로 돌아왔다. 채 씨에 앞서 ‘하트’를 발견한 인근 마을 주민들이 이미 잡아먹은 것이다.
채 씨가 밝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하트’는 지난달 26일 오전 2시께 자택 인근에서 발생한 큰 소리를 듣고 놀라 집을 뛰쳐나갔다. 채 씨가 황급히 그 뒤를 쫓았지만 내달리는 개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는 삼례파출소에 실종 신고를 낸 뒤 익산까지 ‘하트’를 찾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그러던 중, 채 씨는 이틀 뒤인 28일 오후 12시께 익산 장연마을에서 “익산교 아래에 이렇게 큰 개가 누워있는 걸 봤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익산교는 채 씨가 ‘하트’를 잃어버린 곳으로부터 직진 거리로 약 4k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채 씨가 ‘하트’ 발견 장소까지 도착한 시간은 오후 12시30분이었다.
주민들은 채 씨가 건네 준 전단지를 보고 “오늘 오전에 다리 밑에 있던 개가 맞다. 살아 있길래 신고하려고 사진까지 찍어놨다”고 말했다. 그러나 목격자들과 함께 간 익산교 아래에서 ‘하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익산교를 오가던 삼례버스터미널 버스 기사들로부터 “개가 익산교 아래에 있었고 정오까지 개가 살아있는 걸 봤다”는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목격자들은 “개가 부상을 입어 옆머리에 피가 나고 있었고 남자 서너 명이 흰 트럭을 타고 와서 개를 싣고 갔다”고 말했다. 이 남자들은 몽둥이와 자루를 든 채 ‘하트’의 곁을 배회하고 있었다는 것이 목격자들의 설명이었다.
‘하트’를 찾기 위해 견주는 익산 장연마을 근처에 현수막을 걸었다. 하트 견주 네이버 블로그 캡처.
그러나 목격자들의 증언을 따라 오후 늦게까지 장연마을 주변을 수색하던 채 씨는 결국 그날 저녁, 장연마을 인근의 판문마을 마을 주민 4명이 ‘하트’를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채 씨는 이날 판문마을까지 돌아다니며 ‘하트’ 수색 전단지를 주민들에게 나눠줬고, 마을 길목에는 현수막도 걸려있었다. 이처럼 주인이 찾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고하거나 넘겨주지 않고 그대로 잡아먹었다는 것이 채 씨의 주장이다.
만일 ‘하트’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둔기 등으로 폭행해 죽인 뒤 잡아먹었다면 이들에게는 동물학대의 죄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전 ‘하트’의 생사 여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사건을 수사 중인 전북 익산경찰서는 이들에게 점유이탈물 횡령 혐의를 우선 적용했다. 실제로 ‘하트’를 잡아먹은 혐의를 받고 있는 조 아무개 씨(73) 등 4명의 피의자는 “이미 죽어있던 개를 주운 뒤 마을회관으로 옮겨서 먹었을 뿐”이라며 살아있는 개를 죽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 등 피의자들에게 점유이탈물 횡령죄가 적용될 경우, 이들에게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여된다. ‘점유이탈물’이라는 단어 때문에 물건에만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도주한 가축도 이에 포함된다. 점유자, 즉 소유자가 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실 또는 표류한 상태에 있는 물건 및 동물을 모두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길가에 일시적으로 방치돼 있는 물건,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는 장소에 있는 가축 등은 점유이탈물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경우는 소지자의 점유를 이탈했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그 소지자의 사실상의 지배하에 있는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점유이탈물 횡령죄가 아니라 절도죄가 적용된다. 단순 절도의 경우는 6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 이번 사건의 피의자들처럼 여러 명이 합동해 절도할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하트’의 경우는 실종 장소로부터 4km 남짓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죽기 직전까지 주인인 채 씨가 경찰과 함께 수색 중이었기 때문에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는 장소에 있는 가축’으로도 볼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기 때문에 수사를 맡고 있는 경찰은 “일반적으로 유기견의 경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태로 보기 어려워 절도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쟁점은 재물손괴 혐의 적용 여부다. 이제까지 지인이나 이웃, 또는 타인에게 애완동물이 살해되거나 폭행당할 경우에 재물손괴 혐의가 적용돼 왔다. 현행법상 동물은 생명체가 아니라 물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물손괴는 피의자가 범행을 통해 이득을 얻지 않는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피의자로 지목된 4명의 주민들은 ‘하트’를 잡아먹었기 때문에 이득을 얻은 것으로 판단,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재물손괴 혐의는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는 동물학대 혐의 적용 여부가 문제가 된다. 경찰은 이 혐의에 대해서는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동물학대 혐의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 ‘하트’가 살아있었는지에 주목해야 하기 때문이다. 채 씨와 다수의 목격자들은 사건 당일인 9월 28일 정오까지 ‘하트’가 살아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조 씨 등 피의자들은 “애초부터 죽은 개였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학대 혐의가 적용된다면 1년 이하의 징역 및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선고될 수 있다. 점유이탈물 횡령죄보다 형량이 무겁다. 이처럼 동물학대와 점유이탈물 횡령 두 혐의가 모두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1개의 행위로 발생하는 여러 개의 죄목 중 가장 형량이 무거운 죄를 적용하는 ‘상상적 경합’에 따라 피의자들은 동물학대 혐의로 처벌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해 수사를 맡고 있는 익산경찰서 관계자는 “주인이 애정을 갖고 오래도록 키워온 개가 잡아먹힌 사건이기 때문에 가볍게 보지 않고 정확한 전말을 알기 위해 형사팀 전체가 총력을 다하고 있다”며 “다만 아직까지 피의자들에 대한 혐의를 명백하게 정해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물학대 등 모든 혐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