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깨 통증에도 멋진 슬라이더를 구사하는 현대 투수 조용준. 그는 마운드에 오르면 상대가 누가 됐든 깨지고 부서질 때까지 맞장 뜨고 싶은 생각뿐이라고 한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본격적인 인터뷰를 위해 여의도공원으로 이동하면서 운 좋게도(?) 조용준의 차에 동승할 수 있었다. 흰색의 그랜저XG 안엔 이런저런 물건들로 어지럽혀져 있었고 CD플레이어에선 귀청을 때리는 힙합음악이 ‘주인님’의 분위기를 그대로 대변하는 듯 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조용준의 나이가 겨우 스물다섯밖에 안되었다는 사실을.
―한국시리즈에서 조용준하면 강렬한 눈빛과 표정 없는 얼굴, 그리고 턱수염 등이 트레이드 마크였는데 오늘은 그런 모습이 온데 간데 없네요.
▲한국시리즈 동안 수염을 기른 건 변화를 주기 싫어서였어요. 성적이 좋으니까 약간의 변화에도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만약 성적이 나빴더라면 삭발도 마다하지 않았을 겁니다. 좋은 감각 유지하기 위해 수염을 길렀는데 수염 깎고 나니까 사람들이 잘 몰라보더라구요.
―근데 털모자는 어인 일로? 선수들 이런 모자 잘 안 쓰잖아요.
▲머리를 염색했어요. 두 번 정도 더 해야 하는데 인터뷰 스케줄이 계속 잡히는 바람에 미장원 갔다가 그냥 나오곤 했죠. 완성된 머리가 아니라 노출시키기가 싫어서 이렇게 모자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색깔인지 궁금해졌다. 사진 안 찍을 테니 살짝 좀 보여 달라고 하자 모자를 들어 약간만 보여주고 다시 감춰버렸다. 이미 지나간 ‘마침표’가 되고 말았지만 한국시리즈와 관련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한국시리즈에서 MVP받을 거라고 예상은 했어요? 구원투수라서 아리송했을 것도 같은데.
▲처음엔 말씀하신 것처럼 아리송했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더라구요. 그리고 9차전 때 (심)정수형과 (오)재영이의 성적이 안 좋았어요. 이기기만 하면 MVP받을 거라고 확신이 들었죠. 아마도 수중전 끝에 얻은 귀한 선물이라 더더욱 기분이 좋았을지도 몰라요. 야구공 만지고 나서 그렇게 비가 많이 오는 가운데 게임한 적은 처음이었거든요.
―9차전 삼성의 마지막 공격에서 잡기만 하면 내야플라이로 끝날 수 있는 경기를 박진만 선수가 에러를 하는 바람에 갑자기 위기 상황에 몰렸잖아요.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저도 같이 공을 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비가 억수같이 퍼부어서 공이 보이질 않았어요. 빗방울이 공보다 더 커 보였으니까요. 실책에 대한 원망은 하지 않았어요. 삼성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사실 그날은 시합 자체가 불가능한 악천후였죠. 공을 던지는데 발이 미끄러져서 착지가 잘 안될 정도였어요. 우리가 수중전에 대비해서 따로 훈련한 적이 없잖아요. 경험이 없었으니까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구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경기가 될 것 같아요.
―삼성의 임창용 선수가 라이벌 맞나요? 정규시즌 때 구원왕 다툼을 벌여서인지 그런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또 기자들에게 ‘구원왕을 임창용에게 빼앗겼지만 최고의 마무리는 나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다면서요?
▲전달 과정에서 표현 방법에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기사에 대해선 부인하고 싶지 않아요. 사실 싸움은 임창용 선수가 먼저 시작했어요. 멋있는 경쟁자라면 상대방이 잘했을 때 칭찬도 해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연봉은 나보다 다섯 배나 더 많이 받는 선수인데 똑같이 비교한다는 게 웃기잖아요. 연봉대로라면 내가 10세이브를 올렸을 때 그는 50세이브를 올려야 돼죠. 그게 말 되는 거죠. 난 한번도 내 입으로 특정 선수를 거론하며 ‘라이벌’ 운운한 적이 없어요. 다른 선수는 의식 안해요. 누가 야구 잘하고 못하고 마음 써봐야 뭐 해요. 내가 잘해야 좋은 거지. 난 철저히 내가 만족하느냐의 여부가 훨씬 더 중요해요.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내가 즐기기 위해서 하는 거니까, 누가 라이벌이 되든 신경 끌 수 있는 거죠. 누가 뭐라고 씹어도 난 나로 인해 마무리 기록이 바뀌고 새로운 기록이 생기기만을 바래요.
조용준은 자신과 임창용과 자주 비교를 당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속상했던 일이 많은 모양이다. 특히 어느 인터뷰에서 임창용을 가리켜 ‘임창용씨’라고 표현했던 부분을 두고 구설수에 오른 일화를 떠올리며 약간은 억울하다는 감정도 숨기지 않았다.
―얘기를 듣다보니 표현방법이 굉장히 솔직하세요. 말을 가려서 써야 될 정도로. 위계질서가 심한 선수 생활에선 이런 성격으로 인해 좀 부대꼈을 것 같아요.
▲‘건방지다’ ‘싸가지가 없다’는 등의 얘기를 많이 들어요. 하지만 난 한 번도 버르장머리 없게 선배를 대한 적이 없어요. 야구장에서 임창용 선배를 만나면 꼬박 인사하며 ‘창용이 형’이라고 호칭했어요. 그러나 마운드에선 다르죠. 경기장 안에선 선후배가 존재할 수 없는 거잖아요. 팀 생활도 마찬가지고.
―2002년 입단했으니 아직까진 신인이라고 불러도 되겠죠?
▲(기자가 한방 먹는 답변이 이어진다) 만약 한국시리즈에 세 번 출전한 선수와 2군에서 10년 동안 뛰다가 1군에 처음 올라온 선수가 있다면 어떤 선수를 신인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후자라고 대답하자) 그래요. 어떤 무대에서 어떤 무대로 옮길 때, 새로운 무대에서 잘 할 때 신인이라고 할 순 있어도 난 신인이란 단어와 맞지 않죠. (기자가 신인이나 막내는 실수를 해도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자) 용서를 받는다? 그것도 차별 아닌가요. 프로 선수라면 똑같이 대접을 받아야죠. 욕먹을 때도 똑같이 욕먹고, 신인이라고, 부상에서 재기했다고, 어리다고, 예외일 수는 없어요.
그래서 포기했다. 프로 경력이 짧은 데도 살 떨리는 한국시리즈에서 강한 승부 근성을 보여준 부분에 대해 칭찬 좀 하려다가 ‘신인 논쟁’에 휘말리는 바람에 더 이상 신인 운운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후배들에게 만만치 않은 선배일 것 같아요. 대충 넘어가는 게 없잖아요.
▲아마도 (오)재영이가 날 가장 무서워할 걸요? 야구장 밖에선 같이 안 다니거든요. 아, 한 번 딱 술 마신 적은 있다. 그 외엔 사적인 만남을 갖지 않아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어떤 행동을 저지르고 뒷수습을 못할 때마다 충고를 해주거든요. 듣는 사람 입장에선 마음이 편할 리가 없죠.
▲ 한국시리즈 MVP 수상 당시(왼쪽)와 대조적인 평상시의 조용준 모습. 이종현·임준선 기자 | ||
▲마운드에 올라가기 전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요. 이런 저런 상황들을 미리 예측하고 그 상황에 맞는 플레이를 구상하고…. 불펜에서 몸을 풀 땐 상당히 흥분되거든요. 그 흥분을 갖고 마운드에 올라갔다가 공을 한두 개 정도 던지다보면 흥분이 가라앉죠.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마운드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날 컨트롤할 수 있는 자신이 생기는 거죠.
―오기와 근성으로 대표되는 선수 중 한 명인 것 같네요. 말 속에서 평범치 않은 강한 개성이 느껴져요.
▲틀린 말은 아니에요. 오기가 진짜 많아요. 가족들도 날 못 말려요. 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달려드는 스타일이니까. 마운드에 오르면 깨지고 부서질 때까지 맞장 뜨고 싶은 생각 뿐이에요. 그래서 타자들 눈을 잘 안 쳐다봐요. 눈을 마주치면 괜히 마음 약해질까봐.
―한국시리즈에서도 삼성 선수들의 눈을 일부러 안 봤나요?
▲예. 일부러 땅을 보거나 포수를 쳐다봤어요. 내 것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남이 어떻게 나오든 신경 쓰지 말자고 했죠. 그런데 일부러 신경전 벌이며 기싸움하려는 선수들이 있어요. 유난히 날 째려보는 선수들이 그래요. 그럴 경우엔 ‘어휴, 또 시작이구나’하고 무시해 버리죠. 이런 얘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국시리즈 때 전투력이 오히려 상승했어요. 날 건들고 자극하는 선수들이 좀 있었거든요. ‘그래 두고보자. 누가 실수하나 보자’ 이런 오기로 이 악 물고 덤벼들었어요.
―오른쪽 팔 상태가 안 좋은 걸로 알고 있어요. 좋지 않은 팔로 슬라이더 위주의 투구를 한다는 건 치명타라고 하는데 지금 어떤 상태인가요?
▲수술해야 할 상태죠. 3년 전 어깨 수술 판정을 받고 고민하다가 수술 대신 재활을 택했고 여기까지 잘 올 수 있었어요. 여러 사람들이 부상 부위에 대해 지적하고 걱정해주지만 그분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어요. 만약 엄지발가락이 아프다고 가정해 봐요. 그렇다면 본능적으로 엄지발가락에 무리가 안 가게 신경 쓰잖아요. 팔도 마찬가지예요. 안 아프게 던지려다보니 팔의 각도를 많이 낮췄어요. 의사가 무리라는 폼으로 3년째 버티고 있는 중이죠. 그런데 나처럼 무리 안한 선수도 1년 던지고 망가지는 경우도 많잖아요. 올시즌 끝난 뒤 수술했어야할 처지지만 난 이번에도 재활할 거예요. 수술은 내년 시즌 끝난 다음이나 고려해 보려구요.
―정확히 어느 부위가 아픈 건데요?
▲어깨의 뒤쪽 근육이 없어요. 나보다 부상이 덜한 선수들도 모두 수술을 받았는데 버틴 거죠. 대학 1학년때 실수로 다쳐 수술을 받았거든요. 그 수술이 잘못됐나 봐요. 다시 수술하자니 재활하는 기간이 너무 길어질 것 같고, 폼을 약간만 수정하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참고 있는 겁니다.
야구 전문가들은 조용준의 슬라이더를 ‘프로야구 10대 명품’으로 꼽는다. 175cm의 키에 72kg밖에 나가지 않는 선수가 140km대의 슬라이더를 던지는 걸 빗댄 표현이다. 그래서 그의 또다른 별명도 ‘조라이더’다. 그러나 어깨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는 사실 때문에 항상 어깨 부상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준은 상관하지 않겠다는 투다. 운동선수라면 늘 부상을 걱정해야 하는 거고, 어차피 부상당할 거라면 자기가 좋아하는 구질로 승부를 걸겠다는 생각이다.
―원래 고1 때까진 내야수였다면서요? 투수로 보직을 바꾼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야구를 안 하려고 했었어요. 코치랑 너무 안 맞았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고 어머니도 동의하셔서 야구를 접을 줄 알았는데 감독님이 야수 중 제 어깨가 좋다는 걸 알고나선 투수로 바꿔보라고 적극 권유하셨죠. 장호연 감독님이셨어요. 감독님이 직접 가르쳐 주셨어요. 재미없던 야구가 재미있어지더라구요. 그때 야구 그만뒀더라면 상고나 공고에 가서 공부하고 기술자격증 따서 평범하게 살려고 했어요.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아요. 틈이 보이질 않아요. 힘들어도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을 것도 같고…. 정말 그래요?
▲삶이 고달플 때도 있죠. 가끔 내가 혼자라는 생각에 빠지면 슬럼프 아닌 슬럼프가 돼요. 그럴 땐 친구들에게 소주 한잔 하자며 전화하는데 내가 말도 꺼내기 전에 “야, 나, 게임 봤다. 잘하더라. 더 힘내고 세이브 추가해라”하면서 먼저 질러 버리면 하고 싶은 말도 못하게 돼요. 지치고 힘들 때 기댈 사람이 필요한데 그들은 용기를 준답시고 나더러 더 힘내라고 하니 할 말이 없는 거죠. 그냥 혼자 끙끙 앓다가 말아요. 무지 서럽죠.
―여자친구는 없어요?
▲2년간 교제한 친구가 있었는데 헤어졌어요. 가끔씩 그 친구가 생각나요. 이번에 MVP를 수상할 때도 ‘내 모습을 봤을까, 내 소식을 알고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기더라구요.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동안 딱 한번 전화가 왔었어요. 잘 하라고 하면서.
―그렇게 소식이 궁금하면 직접 전화를 해보지 그랬어요.
▲전화번호를 몰라요. 홍콩에 있거든요. 난 굉장히 현실주의자예요. 허풍을 용납하지 못하죠. 난 체질적으로 다른 사람의 얘기를 1%도 붙여서 전달하지 못해요. 여자를 사귀는데도 이런 ‘증상’이 작용돼요. 처음 만났을 때 판단을 빨리 내리죠. 지금은 괜찮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서 질리겠다 싶으면 굉장히 냉정해져요. 반면에 오랫동안 만날 수 있는 여자라면 날 많이 보여주죠. 그런데 싸울 때 좀 집요해져요. 내가 논리적으로 따지거든요. 예를 들면 ‘내가 너 같았으면 그런 상황에선 이렇게 했을 거다’라며 물고 늘어지면 두 손 두 발 다 들죠. 이런 성격 가진 남자를 이해해줄 만한 여자, 흔치 않아요.
―투수는 마인트 컨트롤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나요?
▲이거 처음 하는 얘긴데… 심리 치료를 받고 있어요. 심리 상담 같은 거죠. 많은 양의 스트레스를 받는 데 비해 마땅히 풀 데가 없다보니 이런 방법을 찾게 됐어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멀쩡한 사람이 왜 정신과 상담을 받나 싶을 거예요. 지방의 정신과 전문의가 매주 서울로 오셨어요. 그분을 만나 평소 담고 있는 말들을 모두 토해 내는 거죠. 그렇게 걸러내는 과정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근데 대학 때 내 부전공이 심리학이었다는 거 모르시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