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찰청은 1462억 원대의 사설 선물거래 사이트 ‘가이아’, ‘아이리스’, ‘블루원’ 등을 불법으로 개설·운영한 뒤 110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고 아무개 씨(53) 등 3명을 5일 구속했다. 사이트와 자금 관리를 담당하고 회원을 모집한 정 아무개 씨(여·45) 등 18명과 계좌를 대여해 달마다 30만 원을 받은 혐의로 대학생 전 아무개 씨(23) 등 15명 총 33명 역시 같은 날 불구속 입건됐다.
가상 선물거래에 사용된 실제 화면. 사진제공=대구지방경찰청
일당은 일반 소액 투자자의 얇은 주머니에 가장 먼저 집중했다. 현행법상 선물거래를 하려면 증권사 개인계좌 당 2000만 원 이상 증거금 예치가 필수다. 많은 투자자들이 ‘대박’이라 불리는 선물거래에 관심은 있지만 수천만 원을 쌓고 시작해야 하는 상품 특성 상 쉽게 진입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렸다. 일당은 “소액으로도 선물거래 가능하도록 계좌를 대여해준다”고 광고를 집행하고 사람을 모았다. 모집한 회원 3000여 명에게 30만~50만 원을 가입비만 받고 선물거래 계좌를 대여했다.
실제 선물거래에 참여한 사람들은 거래 당 국내 6000원, 국외 거래 1만 3000원을 지불했다. 선물거래에 참여한 회원들은 수수료를 일당이 벌이는 사업의 본질로 생각했다. 하지만 일당에겐 더 큰 계획이 자리했다. 수익이 좋다는 말만 듣고 선물에 진입한 사람들을 하나씩 일당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저렴한 금액으로 선물거래를 할 수 있도록 사업구조를 짠 일당의 ‘배려’는 미끼에 불과했다.
일당은 우선 회원들의 실제 선물거래 실적을 정리해 수익률 순서로 관리했다. 거래 실적을 눈여겨본 뒤 일정 기간이 지나도 수익을 내지 못한 회원들을 VIP처럼 특별 관리하기에 이르렀다. 돈에 가장 눈이 먼 사람이자 선물 거래의 ‘밝은 면’만 보는 사람들이 실제 범행의 대상이 된 셈이다. 일당은 이들에게 특별한 상품 하나를 소개했다. 바로 자신들이 직접 만든 선물이었다.
압수수색 중 발견된 현금과 통장, 고급 승용차 열쇠. 사진제공=대구지방경찰청
회원들은 평소에도 수익률이 낮았던 터라 큰 돈을 잃어도 별 의심이 없었다. 언젠가는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에 더욱 빠져갔다. 실제 선물거래는 소위 ‘대박’이 터지기도 하지만 가상 선물거래엔 대박이 없다. 일당의 철저한 계산으로 인해 돈을 잃을 수밖에 없는 쳇바퀴에 빠지게 됐다. 돈은 회원들의 지갑에서 일당의 계좌로 흘러 들어갔다.
투자자의 대박 욕심의 욕망을 잘 파악해 10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데에는 조직적인 회사 운영이 한몫했다. 총책 고 씨는 사이트는 운영관리실을 비서실처럼 두고 산하에 주식카페 관리팀과 충환전자금관리팀, 회원모집및관리팀 등 3개 팀을 조직했다. 신고나 단속을 피하려 대학생 등 지인의 차명 계좌를 수시로 바꿨다. 운영사무실 역시 외부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폐쇄형 아파트나 오피스텔만 골랐다.
3년 넘게 모인 돈은 100억 원을 훌쩍 넘겼다. 일당은 호화로운 생활 영위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부었다. 경찰에 따르면 고 씨 등은 6억 원대 팔공산 호화별장을 구입했고 동구, 수성구 등지에 목조 한옥주택과 잔디가 깔린 2층 전원주택을 지었다. 넓은 공간에서는 수시로 파티가 열렸다. 직원과 친구들이 모여 즐거운 수다는 멈추지 않았다.
고급 승용차와 현금 더미도 빠질 수 없었다. 고 씨는 마세라티와 BMW 등 고급 승용차를 구매했다. 운전기사까지 고용해 고용 시장에도 일조했다. 운영사무실과 별장 등 8곳과 이용차량에서는 현금 5억 2000여 만 원이 발견됐다. 일부는 비닐에 잘 포장돼 보자기에 쌓여 있었고 여행용 가방에도 가득 현금 다발이 담겨있었다.
해당 사건은 지난 7월 27일 충환전자금관리팀장이 대구 달성경찰서에 검거되며 꼬리가 잡혔다. 경찰은 이들의 사기 수법에 혀를 내둘렀다. 경찰 관계자는 “4월부터 내사를 시작했다. 달성경찰서에서 지난 7월 검거하며 수사의 물꼬를 텄다.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못하는 사람만 대상으로 그런 범죄를 고안해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불법사업 3년 이상 유지 비결? 일당들에 최고의 ‘복지 혜택’ 경찰에 따르면 이런 범죄는 피해자나 가담자의 내부 고발로 금세 잡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해당 사건이 3년 넘게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에는 치밀한 계획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 ‘화수분’ 같은 직원 복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고 씨는 각 팀장이나 팀원들에게 베푸는 복지에 아낌이 없었다. 아파트 매입자금과 전세자금을 대출해줬다. 상환 기간은 있었지만 상환을 하지 않아도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 그냥 집을 사준 셈이다. 게다가 직원 자녀들의 학자금까지 지원해줬다. 불법적인 일에 가담했지만 집이 생기고 자녀의 학비 문제도 해결됐기에 이 사태는 조용히 수면 아래에서 유지될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을 잡았는데 다들 ‘세상에 이런 복지 혜택 베푸는 회사는 다시 없을 것’이라고 하는데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