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2016 공공기관장 워크숍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국회의원들은 공공기관 과다 성과급 문제를 질타하고 나섰다. 우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원욱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의원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출자회사들은 1조 원이 넘는 누적 적자를 내고도 수십억 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지급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LH 자회사가 2006년부터 지금까지 진행 중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은 모두 적자였다. 이들의 누적적자는 1조 2062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도 8개 자회사 중 6곳이 2006년부터 올해까지 11년간 성과급으로 71억 7000만 원을 지급받았다.
금융공공기관들의 경우 수조 원대 적자를 내고도 임직원들은 성과급을 받았다. 대우조선해양 부실 사태에도 불구하고 홍기택 전 산업은행회장과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은 각각 5530만 원, 5740만 원의 성과급을 지급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자원개발 실패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자원개발 3사 역시 자원외교 실패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진 막대한 규모의 성과급을 타갔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가스공사는 2638억 원, 석유공사 666억 원, 광물공사 186억 원 등 총 3491억 원의 성과급이 지급됐다.
이러한 성과급 지급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현령비현령식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 때문이다. 현재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기획재정부가 주관해 시행하고 있다(※금융공공기관 중 한국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수출입은행,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등 5개 기관에 대해서는 금융위원회가 주관해 경영실적을 평가함).
그런데 현행 경영평가 제도는 경영실적이 나빠도 정부가 정한 기준에만 부합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이명박정부 땐 해외자원개발에 적극적인 기업들이 가점을 받았고, 박근혜정부에서는 임금피크제 도입 여부 등이 평가항목에 포함됐다. 또 정부의 잘못된 정책판단으로 무리한 투자를 진행하다 실패해도 공공기관은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구조다.
일례로 지난 2013년 산업은행은 대우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경영평가에서는 정부정책을 수행하면서 발생한 손실이기 때문에 산업은행 책임은 없다는 결론이 났다. 산업은행은 당해 연도 경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다.
게다가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경우 ‘미흡’으로 평가되는 기관보다 ‘우수’나 ‘보통’으로 평가되는 기관이 훨씬 많을 정도로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는다. 그렇다보니 천문학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일부 공공기관들은 성과급 잔치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여겨야 할 공공기관들이 경영실적 때문에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한국전력공사(한전)의 경우 올해 기록적인 폭염으로 국민들이 고통 받는 상황에서도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한전과 6개 발전 자회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0조 9000억 원에 달한다. 그 결과 한전 직원들은 올해 1인당 2000만 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지급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사례다. 건보공단은 오래전부터 무리한 보험료 징수 관행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아왔다. 건보공단은 심지어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7살 아이에게까지 건보료를 부과했던 사실이 알려져 비판을 받기도 했다. 건보공단의 무리한 건보료 추징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역시 경영실적을 의식한 행보가 아니겠냐는 지적이다. 기동민 더민주 의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건보공단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임직원들에게 총 2200억 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일각에선 공공의 이익을 도모해야 할 공공기관의 경영실적을 평가하면서 민간기업과 똑같은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정부의 잘못이 크다는 말도 나온다.
불합리한 성과급 제도 개선과 방만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공공기관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낙하산 인사들이 공공기관에 대거 투입되면서 자체 개혁을 기대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다음은 정치권의 한 관계자 말이다.
“공공기관에 낙하산 인사가 배치되면 심한 경우 노조에서 반대 시위까지 하며 아주 난리가 난다. 그러면 낙하산 기관장은 노조를 달래기 위해 유화책을 쓸 수밖에 없다. 방만 경영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낙하산 기관장들은 전문성도 없을뿐더러 어차피 선거 때가 되면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않고 자진 사퇴하는 사람들 아닌가. 책임지고 일하려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과도한 성과급 지급 논란에 대해서는 공공기관들도 일부 억울한 점이 있다. 민간기업의 경우 성과급이 연봉 외 인센티브를 뜻한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성과급은 원래 인건비에 포함돼 있는 ‘내부 자체성과급’과 정부의 ‘경영평가 성과급’으로 구분된다.
내부 자체성과급은 급여의 일부를 사전에 성과급 명목으로 분류해놓고 실적에 따라 지급하는 방식이다. 공공기관 성과급의 상당수가 내부 자체성과급이기 때문에 실제로 성과급을 그렇게 많이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공공기관의 성과급은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지급되는 것인데 공공기관들이 임의로 높은 성과급을 지급하며 방만경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매도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의 또다른 관계자는 “현행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는 국민들의 공감을 전혀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사기까지 꺾이게 하는 비정상적인 제도”라며 “국민들이 성과급 지급에 공감할 수 있어야 공공기관 종사자들도 떳떳하게 성과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1차원적인 평가기준을 재정비하고 평가단에도 외부 전문가들을 대거 참여시켜 전문성과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