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 14에 위치한 한미약품 사옥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보다 하루 앞선 7월 28일 오후 한미약품은 독일 제약사인 베링거인겔하임과 7억 3000만 달러(한화 약 8100억 원)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다음날인 7월 29일 오전 증권사들은 앞다퉈 한미약품의 목표 주가를 상향조정하는 한편, 매수를 권고하는 리포트를 쏟아냈다.
7월 28일 종가 기준 54만 5000원이던 주가는 7월 29일 장중 59만 4000원을 돌파하면서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주식 거래량은 125만 주로 전일 대비 4배 이상 폭증했다. 그러나 이날 장 마감 34분을 앞두고 한미약품의 부진한 2분기 실적이 발표되자 주가는 44만 5000원대까지 곤두박질쳤다. 당시 매도 주문은 NH투자증권, 메리츠종금증권, 미래에셋증권, 신한금융투자, 키움증권이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미약품의 대주주이자 ‘한미약품그룹’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에서도 호재성 공시에 이은 대량 공매도 거래가 빈번했음을 <일요신문>이 단독 확인됐다. 지난해 11월 9일 한미사이언스 종목에선 19만 5875주의 공매도가 발생했다. 직전 거래일인 11월 6일 공매도 거래량(1만 2764주)과 비교하면 무려 16배가 넘는 주식이 ‘약세장’을 예상한 셈이다. 11월 9일 거래된 한미사이언스의 공매도 대금은 369억 원으로 파악됐다.
앞서 한미약품은 11월 5일 장 마감 후 글로벌 제약사인 사노피와 39억 유로(한화 4조 8700억 원)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최초 계약 금액만 4억 유로(5000억 원)에 달하는 ‘매머드급 계약’이었다.
이튿날인 11월 6일 주가는 곧장 상한가로 직행했다. 이날 한미약품 주식의 종가는 71만 1000원, 한미사이언스는 17만 8000원을 각각 기록했다. 다음 거래일인 11월 9일 장이 열리자 두 종목에는 2조 원에 가까운 돈이 몰렸다. 시장의 기대대로 한미약품의 주가는 같은 날 80만 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러나 한미사이언스의 주가는 장중 한때 21만 4000원을 넘었다가 막판 매물이 쏟아지면서 직전 거래일보다 3000원 내린 17만 50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후 한미사이언스는 주가가 꾸준히 하락해 같은 해 연말까지 12만 원대에서 보합세를 유지했다.
한미사이언스에서 또 다시 대량 공매도가 발생한 날은 올 6월 9일이다. 이날 나온 공매도 물량은 11만 2295주, 거래대금은 175억 원으로 집계됐다. 앞선 거래일인 6월 8일 공매도 물량은 9967주에 불과했다. 그 전날인 6월 7일에도 공매도 거래량은 2714주에 그쳤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대개의 경우 성장 가능성이 높거나 시너지가 예상되는 인수합병(M&A)은 ‘호재성 공시’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한미사이언스에서는 도리어 공매도가 쏟아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모든 M&A가 시장에서 반드시 호재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결국 ‘정도(程度)’의 문제인데 이번 한미약품 사태에서 보듯 주가 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정된 시간(29분)에 상식 밖의 공매도 물량이 쏟아진 것은 납득하기 어렵지 않느냐. 나머지 공매도 부분도 당일 시황을 종합해 정도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약품 늑장공시 사건을 조사 중인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 관계자는 “이번에 문제가 된 한미약품 공시건뿐 아니라 한미사이언스에 대해서도 관련 내용을 파악 중”이라며 “그간 한미약품이 수주한 대형 계약이 많았는데 계약 전후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지난 9월 30일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에서는 각각 616억 원(10만 4327주), 287억 원(22만 8313주)에 달하는 공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이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물량이 ‘악재성 공시’가 나오기 전에 거래됐다. ‘호재성 공시’만 믿고 매수에 나선 일반 투자자들은 손해를 입었다. 한미약품의 주주로 알려진 A 씨는 ‘9월 29일 오후부터 악재성 정보를 알고 있었지만 다음날(9월 30일) 장 마감 후 공시할 것으로 예상해 매도를 늦췄다가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해당 공매도를 주문한 기관은 외국계 투자증권사인 모건스탠리와 유비에스에이쥐(UBS AG)로 확인된다. 지난 6월 30일 이후 한미약품 공매도 물량을 취급한 증권사는 모건스탠리와 UBS AG가 ‘유이’했다.
다만 이들 증권사가 실제 공매도 세력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관측이다. 외국계 증권사는 공매도 주문을 대행했을 뿐 실제 차익을 실현한 세력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들 세력이 ‘누군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금융당국의 조사로 밝혀져야 될 부분이지만, 한미약품 내부자의 조력 없이는 이 같은 대량 주문은 어려웠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오너 일가가 직접 보유한 주식이 적은 한미약품과 달리 한미사이언스는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66.49%에 달한다. 한미메디케어, 한미IT 등 계열사 지분을 빼도 임 회장과 친인척의 지분율은 60.7%로 절대적이다.
이는 오너 일가가 소유한 주식이 공매도에 쓰였을 가능성과 연결된다. 공매도는 주식을 ‘누군가’로부터 빌린 뒤 3일 후 차익이 나면 되돌려주는 방법으로 수익을 낸다. 공매도 거래 과정은 증권사가 중개하는데 반드시 주식 소유자가 동의해야만 매도 주문을 낼 수 있다. 공매도 거래에서 주식 소유자는 증권사에 주식을 위임함으로써 수수료를 챙긴다. 앞의 증권업계 관계자는 “지분율이 높은 기업 오너의 경우 주식을 가만히 놔두면 손해가 나는 경우가 있어 일정 물량은 ‘공매도 풀’에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약품 측은 추가 확인된 3건의 공매도에 대해 전화와 문자를 남겼으나 답변을 주지 않았다. 오너 일가가 보유한 주식의 공매도 사용 여부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