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특별감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 피감기관인 특별감찰관 자리와 여당 의원석이 비어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단식을 중단하면서 10월 4일 국감이 정상화됐다. 이날 취재진이 국회 의원회관을 찾았을 당시 대다수 보좌진들은 삼삼오오 모여 의원실 내 대형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국정감사 생중계를 보기 위해서였다.
한 비서관은 “매일 집에 못 가고 밤늦게 퇴근한다. 막차가 끊기기 전에 퇴근하면 다행이다. 어제도 밤을 꼬박 샜다. 국민들이 관심 쏠려있는 20대 국회 첫 국감인 만큼 열심히 준비했다”고 밝혔다. 한 보좌관은 며칠째 수염도 깎지 못한 상태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기자를 맞기도 했다. 그는 “국감 때문에 바빠서 얘기할 시간도 없다”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의원실 안에는 배달 음식과 일회용 음식들이 보이기도 했다. 어느 보좌관은 컵라면을 얼른 숨기며 “시간이 없어서 대충 자리에서 때운다”며 부끄러워했다. 다른 의원실도 사정은 비슷했다. 또 다른 비서관은 “원래 국회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는데 워낙 바빠서 국회를 나갈 수 없어 국회 식당에서 해결하곤 한다”고 귀띔했다.
평소 깔끔하게 정리돼 있던 의원실 회의실은 책이나 국감 관련 자료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외부 인사들의 방문도 평소보다 늘었다. 승복과 군복을 입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국감장 근처 휴게실 의자는 하루 종일 만석이었다. 자리가 없어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간혹 보였다. 의원회관 곳곳엔 여야 대치 정국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의회주의 파괴자 정세균 물러가라’와 같은 포스터도 보였다.
이번 국감에서 ‘최순실 게이트’를 촉발시킨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은 단연 뜨거운 감자다. 교문위, 기재위, 정무위, 국토위, 법사위, 농해수위 등 여러 상임위에서 야권 의원들은 관련 문제들에 대해 집중 공세를 폈다.
10월 6일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의 주무 상임위 격인 교문위 국감장에선 증인 채택 문제를 놓고 막말과 고성이 오갔다. 13일 종료 예정인 교문위 국감은 ‘1주일 전 증인 출석 통보’ 규정에 따라 이날 최종 증인 채택을 결정지어야 했다.
도종환 더민주 간사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의혹의 실체를 밝힐 수 있도록 단 몇 명만이라도 증인 채택할 수 있도록 수정재의를 반복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말했다. 같은 당 박경미 의원도 “미르와 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이 줄줄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의혹의 정점에 있는 최순실 씨와 차은택 감독만이라도 증인 채택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새누리당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안건조정 절차를 신청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안건조정위가 구성되면 90일간 해당 안건 심사가 보류되는데 이를 노린 것이다. 새누리당 간사인 염동열 의원은 “미르·K스포츠는 이미 검찰조사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 의원실 보좌진은 국정감사 중계방송을 보면서 대권 잠룡의 질의를 지적하기도 했다. 10월 4일 교문위 국감에서 안철수 전 대표가 질의를 하면서 검정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된 PPT를 틀었는데 이를 보고 한 보좌진은 “대선 주자 PPT가 저게 뭐냐”며 안 전 대표의 준비 부족을 질타했다.
이 밖에도 국감 정상화 첫 날인 10월 4일 증인으로 채택된 심동섭 문화체육관광부 체육정책국장은 병가를 내고 불참했다. 당시 야당 의원들은 통합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를 하루 앞두고 심 국장이 국감에 불참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의혹을 제기했다. 교문위 소속 한 의원실 보좌관은 “기관 증인의 경우, 아프다고 못 나오는 게 결코 통상적인 일이 아니다. 간혹 가다가 일반 증인이 불참하는 경우는 있다. 이번 국회는 정말 진풍경의 향연이다”라고 말했다.
국감장에선 화제를 모은 ‘말’들도 있었다. 10월 4일 안행위 국감에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석관 아들의 의경 보직 특혜 의혹과 관련해 서울경찰청 부속 실장이던 백승석 경위는 “우 아무개 상경의 당시 운전 실력이 남달라서 뽑았다. 특히 ‘코너링’이 굉장히 좋았다”고 답변해 이슈가 됐다.
인터넷 기사 댓글과 SNS 등엔 “코너링? 진짜 그럴싸한 핑계 좀 대라” ”개그콘서트 시청률이 이런 사람들 때문에 낮아진다. 따로 개그 프로그램 볼 필요가 없다“라는 등 비난과 조롱이 쏟아졌다.
교문위 국감도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기동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의 막말과 돌발행동이 논란이 된 것이다. 이 원장은 질의를 하던 도중 갑자기 “나 잠깐만…내가 신체상의 조금…”이라며 화장실로 갔다. 또한 화장실에선 자신의 수행 비서에게 “새파랗게 젊은 애들한테 수모당하고 못 하겠다”고 말한 것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정작 부를 사람은 안 부르고…김제동 증인 채택 논란 미르·K스포츠재단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최순실 씨와 차은택 감독의 증인 채택 요구가 무산된 가운데 국방위 국감에선 유명 연예인이 국감 증인으로 나설 뻔했다. 국방부 차관 출신 백승주 새누리당 의원은 10월 5일 국방위 국감에서 “군 문화를 희롱하고 있다”며 방송인 김제동 씨를 증인 채택하자고 주장했다. 백 의원은 김 씨가 1년여 전 한 방송에서 자신의 군 복무 시절 군사령관 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주머니’라고 불렀다가 13일 동안 영창에 수감됐다고 말한 영상을 틀었다. 이를 토대로 백 의원은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우리 군 간부를 조롱한 영상으로 군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며 진위를 물었다. 한 장관은 “김 씨는 당시 50사단 방위 복무를 했는데 영창을 갔다 온 기록이 없다”고 답했다. 다음 날인 10월 6일 오후 성남시청 야외 광장에서 열린 ‘김제동의 토크콘서트’에서 김 씨는 “국민의 세금을 받는 사람은 내 얘기를 할 게 아니고 국방 얘기를 해야 될 거 아니냐. 만약 나를 부르면 언제든지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응수했다. 이로 인해 한때 ‘백승주’ ‘김제동’은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씨의 증인 출석은 결국 무산됐다. 10월 7일 새누리당 소속 김영우 국방위원장은 “위원장으로서 국감장을 연예인의 공연 무대장으로 만들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장군 출신 백군기 더민주 국방안보센터 센터장은 “백 의원이 명예를 위해서 김 씨를 증인 채택하려던 것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선뜻 이해가 어렵겠지만, 군인은 명예직이다. 다만 다른 상임위에서 국민들이 더 궁금해 하고 이슈화되고 있는 증인들이 채택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증인 채택의 균형 감각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