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부총리는 94년 YS정부에서는 교육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활동 무대를 넓혔으며 DJ정부 출범 시에는 과기처 장관 후보로 추천될 정도로 상당한 인맥과 영향력을 과시했다. 또한 99년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국정 운영에 참여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이 전 부총리는 자연스럽게 정계 및 재계 거물급 인사와 친분을 쌓아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는 서울사대부고 동기동창으로 가족과 다름없는 교감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부총리는 서울대 총장 시절인 지난 2000년 교수 및 학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고, 반대로 이 회장은 서울대에 수백억원의 연구 기금을 출연하면서 끈끈한 우정을 과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 및 여권의 일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 전 부총리 임명 배경을 삼성과 연관시켜 해석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그가 세 차례나 회장직에 오른 한국공학한림원은 그의 입지를 높이는 가장 절대적인 축으로 불린다. 회장 시절 이 전 부총리는 김우식 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유상부 전 포스코 회장, 구자홍 LG전선그룹 회장, 이상철 전 정보통신부 장관 등 거물들로 이사진을 구성해 주목받았다.
공학한림원은 현재도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 이용경 KT 대표이사,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등 재계 거물들이 대거 포진해 있을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단체다. 이부섭 동진쎄미켐 대표이사와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 심이택 대한항공 부회장 등 서울대 화학공학과 출신 인사들도 대거 이사로 등재돼 있다.
일부에서는 이 전 부총리가 서울대 총장 시절 기업체로부터 2천억원 이상의 연구기금을 모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한국공학한림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의 서울대 총장 시절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갖가지 도덕적 문제들이 불거져 나오면서 스타일을 구겼다. 아들의 병역 문제, 사외이사 겸임, 서울대 발전기금으로부터 받는 판공비의 과다 사용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게다가 지난 2000년에는 서울대 출신 16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위한 만찬 행사를 추진하다 비난을 샀으며, 2001년 9월 미국의 테러 참사로 인해 정부의 공직자 골프 금지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육군참모차장 및 인사참모부장 등 군 수뇌부와 골프를 치다 적발되는 등 연속되는 ‘불운’으로 수모를 겪어야 했다. 지난 2002년 서울대 총학생회가 총장실을 검거할 당시에는 총장실에서 수백만원짜리 안마기와 양주 등이 발견돼 한바탕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서울대 총장을 퇴임한 이후에는 약 1년간 서울대 응용화학부 교수로 재직하다 퇴임했으며, 2003년 11월 ‘코리아리더스 포럼’ 공동 의장으로 선출돼 각종 연구 활동을 펼쳐온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은 장성자 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장 원장은 이 전 부총리가 서울대 총장 재직 당시 여성부 여성개발정책실장(1급)으로 재직한 바 있다. 장 원장은 김명자 열린우리당 의원과 경기여고 동창으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다. 김 의원 역시 이 전 부총리와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공동 대표로 있는 ‘사이언스 북 스타트 운동본부’의 공동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