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날 고 전 총리가 목욕탕에 들어선 시간은 7시가 다 되어서였다. 인사를 드리고 탕속에 나란히 앉아 늦은 이유를 물으니 “부시 대통령 취임식을 보느라 잠을 설쳤던 여파가 남아서”란다. “등이나 밀어드리려고 왔다”고 하니 “매일 목욕을 해서 등을 밀지 않는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뜨거운 욕탕에 앉아 이어진 대화에서 그는 잠을 설치게 한 부시 대통령 취임에 대해 “17분짜리 취임사를 듣기 위해 2시가 넘어서까지 잠을 못 잤다(웃음)”며 “(연설을 들어보니) 예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다. 좋은 일이다”고 말했다.
“오늘은 빨리 끝냈다”는 고 전 총리가 목욕탕에 머문 시간은 1시간에 가까웠다. 고 전 총리는 탕과 사우나실에 머무는 10여 분을 제외하고는 주로 요가와 스트레칭을 하며 운동을 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듯 보였다.
목욕을 끝내고 나온 고 전 총리는 제일 먼저 신문을 찾아 들었다. 정치기사들을 꼼꼼히 읽은 그는 칼럼들을 둘러보는 것으로 그날의 신문 산책을 마쳤다. “각 신문들을 펼쳐놓고 제목들을 보면 재밌어요. 기사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도 알 수 있고…”라고 말하는 고 전 총리는 집에서 2개, 사무실에서 2개, 목욕탕에서 1개 정도의 일간신문을 매일 보고 있다고 한다.
목욕탕을 나와 길을 걸으며 대화는 이어졌다. “오늘 신문에 읽을 것이 많습니다. 어제 일이 많았습니다”고 했더니 “그렇더라”고 답한다. 민주당 김효석 의원의 교육부총리직 고사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연신 웃으면서 “많이 놀랐어요”라고만 답하는 고 전 총리. 어떻게 보셨냐는 질문에는 “더 들어가면 인터뷰가 되는데…”라며 말을 줄인다.
▲ 드라마 <겨울연가>의 한 장면. | ||
그의 식사 속도는 따라가기가 힘들 만큼 빨랐다. 대화를 나누면서 하는 식사였음에도 그가 황태해장국 한 그릇과 밥 한 그릇을 비우는 데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식사를 아주 빨리 하신다”고 하자 “속식으로 따지면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라갈 수 없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를 하면서 1주일에 한번 주로 설렁탕이나 꼬리곰탕으로 조찬을 같이 했는데 김 전 대통령은 식사가 나오면 깍두기 그릇을 국그릇에 엎어 넣고 드셨다. 한 그릇 먹는 데 몇 분 걸리지도 않는다. 왜 그렇게 빨리 드시느냐고 물으니까 ‘중학교 때 하숙을 했는데 같이 하숙하던 학생들하고 음식경쟁을 하느라 빨리 먹기 시작한 것이 습관이 됐다’고 하시더라”라며 일화를 전했다.
식사자리에서는 한류열풍이 화두로 떠올랐다. 얼마전 한 신문을 통해 고 전 총리가 <겨울연가>를 열심히 보고 있다고 했던 것이 생각나서 던진 질문이 대화로 이어졌다. 고 전 총리는 “일본 사람들이 왜 이렇게 우리나라 드라마에 빠지게 됐는지를 알고 싶어서 보기 시작했는데 새벽까지 계속되는 드라마를 보느라고 잠을 설치고 있어 힘들다”고 말했다. 그의 평소 취침시간은 10시30분이라고 한다. 저녁뉴스를 본 뒤 간단한 운동으로 하루를 마감한다는 고 전 총리로서는 쉽지 않은 일인 셈이다.
“<겨울연가> 1, 2부는 아주 짜임새도 있고 잘 만들었던데 3, 4부를 보니 여타 드라마하고 차이를 모르겠더라고…”라며 다소 실망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인 그는 “얼마전 어떤 기사를 보니 일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배우는 배용준이 아니고 최지우라고 되어 있던데 내가 드라마를 보니 배용준보다는 최지우가 연기를 더 잘하더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