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신상진, 정희수, 이진구, 정진석 | ||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 선거에서도 여당은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했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는 법. 여당의 참패는 야권의 대승을 빛나게 했다. 치열한 접전을 뚫고 여의도 국회에 등원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격전지 4곳의 당선자들 면모를 살펴봤다.
경기 성남 중원 신상진 당선자
‘의사에서 시민운동가로, 다시 국회의원으로의 변신.’
신상진 한나라당 당선자의 이력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이렇다. 성남 중원은 수도권 민심의 풍향계라 할 수 있는 지역구여서 선거 초반부터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막판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었던 곳.
이런 격전지에서 당선의 영예를 안은 신 당선자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보다는 실천하는 시민운동가로 정평이 나 있다. 지역주민 건강과 복지증진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95년 성남기독교교회협의회로부터 ‘인권상’을 받기도 했다.
신 당선자는 성남발전의 걸림돌로 여겨졌던 고도제한 완화를 위해 범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및 상임대표를 맡아, 고도제한 완화를 이끌어냈다. 이어 출범한 성남시 재개발범시민대책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아 재개발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등 성남발전을 위해 22년 젊음을 바쳐왔다고 자부한다. 그는 1984년 성남 상대원동에 들어와 공단에서 생산직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지난 2001년에는 대한의사협회 초대 직선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2000년 의료파업으로 생긴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그는 2000년 의권쟁취투쟁위원장을 맡아 선봉에 섰다. 이로 인해 1심과 2심에서 유죄선고를 받았고, 현재 대법원에 상고된 상태다. 이번 재선거 기간 동안 경쟁 후보들이 이 점을 부각시켰으나, 그의 당선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 17대 총선 때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신 당선자는 “지난 84년 성남에 정착한 이래 22년 동안 성남시민과 동고동락하면서 성남발전과 주민복지 증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왔다”면서 “성남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신바람 나는 정치, 상생의 정치, 진실한 정치를 실천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경북 영천 정희수 당선자
‘지역경제 전문가’인 한나라당 정희수 당선자는 당의 공천과정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한나라당 내 일부 의원들이 그의 공천에 반대했던 것. 경제 전문가로서의 자질은 인정되나, 지역에서의 인지도가 낮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경쟁후보가 12·13대 의원을 지낸 정치 경력을 갖고 있는데 비해 초라하고 왜소해 보였던 것.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공천을 받은 정 당선자는 여론조사에서도 여당 후보에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의 텃밭임에도 막판까지 그의 당선을 예측하기 어려웠던 것. 하지만 영천 주민들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박근혜 대표 등 당 지도부의 올인 전략도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정 당선자는 “미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국내 중앙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경제 전문가로서 지역경제 살리기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이 같은 ‘경제전문가’ 전략이 표심을 흔들어놓았다. 그는 영천 신녕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와 대구상고를 졸업했다. 성균관대에서 사회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다음 아주대에서 경영학 석사,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그는 지난 95년부터 전국의 민선 시장과 군수, 도지사들에게 경영 마인드를 심어주었다고 말한다. 부산시의 경제 전략을 구상했고, 국제영화제로 주목받고 있는 경기도 부천과 인천, 포항 등의 경제발전 전략도 수립했다고.
그후에 그는 포스코 경영연구소 경영전략연구센터 센터장을 지냈으며,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과 백상경제연구원 원장 등을 거쳐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정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자신을 ‘국보급 지역경제 전문가’라 소개하며 지역을 누볐다. 정 당선자는 “나는 언론계와 학계는 물론 재계, 정계 등 다방면에 걸쳐 인맥이 두텁다고 생각한다. 이를 잘 활용해 영천의 경제를 살리겠다”는 소감을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