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마다 의로움을 달리했다. 한 사람이 있으면 한 가지 의로움이 있었고, 두 사람이 있으면 두 가지 의로움이 있었으며 열 사람이 있으면 열 가지 의로움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들이 주장하는 의로움 역시 많아졌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기의 뜻은 옳다고 하면서 남의 뜻은 비난했으니,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를 비난하게 되었다. 가정 안에서는 부자나 형제들이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며 헤어지게 되고, 서로 화합하지 못했다. 천하의 백성들은 모두 물과 불과 독약으로서 서로를 해쳤다. 남는 힘이 있더라도 서로 돕지 않았으며, 썩어나는 재물이 있어도 서로 나누어갖지 않았다.”(임건순, <묵자-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사상가>)
묵자가 보았던 전국시대만 그랬겠는가. 의로움과 의로움이 부딪칠 때 싸움은 더욱 치열해지고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이 들수록 비록 내세우는 것이 ‘정의’라 해도 목소리 큰 사람은 일단 부담스럽다.
갈등으로 부딪치고 편을 갈라 싸우는 이 세상이 그래도 살아볼 만하다고 고백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가리지 않고 시리아 내전 잔해에서 혹시라도 숨이 붙어 있는 생명이 있을까, 세심하게 살피는 따뜻한 사람들과 같은 이들 때문이다. 한 구조대원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피범벅이 된 갓난아기를 품에 꼭 안고 “오, 신이여, 아이를...”하고 우는 장면을 보았다.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져 나도 아이를 위해 기도를 했다.
응급차에 태우기까지 사랑이 가득한 조심스런 몸짓은 아이를 아끼는 아버지의 그것이었다. 아이가 잘못 될까 품고 품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아이 아버지가 된 것 같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이 아이의 아버지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기를 살리려고 몇 시간 동안 힘들게 잔해를 치우며 땅을 파헤치는 동안 그는 사랑을 키우는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된 거였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 그래도 살만하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은 삶의 밑바닥에서 물처럼 흐르고 공기처럼 감싸는 저 구조대원의 눈물 같은 것 때문이 아닐까. 묵자는, 갈등으로 가득 찬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하늘에서 온다고 믿었다. 하늘을 법도로 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임건순 선생의 책 <묵자>에 따르면 그의 하늘은 광대하면서도 사사로움이 없고 그 베푸는 은혜는 두터우면서도 공덕으로 내세우지 않는 하늘이란다. 나는 저 구조대원의 눈물이 바로 하늘의 눈물이라 믿는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