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권한대행 시절인 지난해 3월26일 고건 전 총리가 3사관학교 임관식에 참석해 생도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고 전 총리는 당시 안정감 있게 국정을 운영해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 ||
고 전 총리가 미국에 있던 지난 13일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플러스’가 조사한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고 전 총리는 26.2%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고 전 총리의 뒤를 이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16.6%)와의 격차는 무려 10%에 가까웠다. ‘고건’은 자리를 비웠지만 ‘고건 신드롬’은 계속된 것이다.
지난 1년여 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고 전 총리는 ‘차기 대권후보 선호도’ 부문에서 1위를 놓친 적이 없었다. 세대·지역·계층을 막론하고 고 전 총리의 지지도는 언제나 1위였다.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던 고 전 총리도 인터넷을 통한 소통을 시작했다. 그가 최근 오픈한 미니홈피에는 신세대 음악과 함께 ‘운동도 열띰히~-.-;;, 연애도 열띰히~^m^’같은 신세대의 언어들이 넘쳐나고 있다. 68세라는 나이는 미니홈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드디어 대권가도를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고건 전 총리. 그의 ‘젊은 꿈’을 따라가 봤다.
지난 4월3일 밤 인터넷에서는 ‘고건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우민회)의 사이버 발대식이 열렸다. 우민(又民)은 고 전 총리의 아호. 정치권은 고 전 총리의 뒤늦은 팬클럽 출범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비정치적 모임을 표방하는 우민회는 ‘정치적인 모임이 되면 즉각 해체한다’는 나름의 강령도 만들어 놓았다. 고 전 총리를 사랑하는 모임이면서도 고 전 총리와는 정기적인 만남도 없고 관계도 없다. 그러나 우민회의 목표가 ‘고건 대통령 만들기’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고 있다. 홍보팀장 문창동씨(필명 백두대간)는 “우리나라에 고 전 총리만한 대통령감이 누가 있나. 누가 더 국민을 위하는 안정감 있는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지난 12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어느 분이든지 당의 노선이나 추구하는 방향이 같고 좋은 평가를 받는 분들은 모셔올 수 있다”며 고 전 총리에 대한 영입가능성을 강력히 피력했다. 당시 박 대표의 발언은 그 전날 김형오 외부인사영입위원장이 “한나라당은 2007년 대통령 선거 승리를 위해 누구와도 접촉할 계획이며 고 전 총리도 예외는 아니다”고 밝힌 데 대한 답변의 형식이었다.
당내 반발도 만만치는 않았다. 박 대표의 발언이 나간 직후 영남 출신의 김용갑 의원은 “너무 속 보인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고 전 총리 영입은 당내에서 박근혜 대표의 또 다른 경쟁자를 만드는 결과일 뿐”이라고 것이다.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인 권오을 의원도 “대권후보는 당내에서 씨를 뿌려 키워야 된다”고 밝혀 사실상 반대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고 전 총리의 영입과 관련 한나라당 내에 일정한 공감대가 이뤄져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소장파를 대표하고 있는 남경필 의원도 지난 1월 “(차기 대선과 관련) 후보군을 더 넓혀야 한다. 박근혜-이명박-손학규뿐 아니라 고건, 정몽준 등도 후보군에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흐름의 이면에는 박 대표를 중심에 둔 ‘편싸움’에 대한 불안감이 놓여 있다. 한 의원은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실패한 원인에는 이회창 총재의 제왕적 통치가 있었다고 본다. 이 전 총재에 대항할 인물도 없고 대안도 없었던 상황이 결국은 당의 역동성을 저해했던 것이다. 박 대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당 내부 흐름이 당시와 다르지 않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고 전 총리를 두고 고민이 늘어가기는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다. 지지율 1위인 그에 대한 한나라당의 영입시도가 본격화되자 상당히 긴장을 하고 있는 눈치. 최근 장영달 상임중앙위원도 “인터넷 시대엔 제 3의 주자 출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밝혀 이러한 여권 내 분위기를 전한 바 있다. “여권의 대권주자가 두 장관(김근태, 정동영)으로 고정되어 있어선 안되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
열린우리당 내 실용파로 분류되는 한 의원도 “현재 우리당에는 두 장관을 제외하곤 아무도 대권에 대해 말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되어 있다. 이것은 문제다”며 “고 전 총리는 참여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분이 아닌가. 열린우리당과 매치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고 영입의 가능성을 피력했다.
그러나 여야 각 당의 잇단 러브콜에 대해 고 전 총리는 묵묵무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만 사적인 모임에서 “국민들이 원한다면 (차기 대통령 선거 출마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물론 ‘고건 신드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치는 않다. 정치전문 여론조사기관인 (주)폴컴 윤경주 대표는 “고 전 총리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상당부분이 거품이다. 아마도 특정정당에 영입되는 순간 지지도는 폭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고 전 총리가 미니홈피를 열고 대중과의 접촉면을 넓히는 것과 관련 “‘개혁-젊음’과 같은 고 전 총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미니홈피 등을 고육책으로 마련한 것 같다”는 입장을 보였다.
여야 각 당의 고 전 총리 영입 제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정치컨설팅그룹 MIN 정찬수 본부장은 “한나라당의 영입 제안은 원론적인 언급으로 봐야 한다. 많은 사람이 내부에서 경쟁을 하는 게 좋고 특별히 고건을 배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최소한 지금으로서는 고 전 총리의 영입에 나설 가능성이나 현실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고 전 총리는 개인적인 인맥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했고 지난 40여년간 장관-국회의원-자치단체장-총리까지 대통령을 빼곤 다 해본 그였지만 딱히 ‘개인적인 인맥’이라 부를 만한 모임이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에 가까울 정도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공직생활을 시작할 때 부친이 내려 준 이른바 ‘공직삼계’ 가운데 하나인 ‘누구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지 마라’는 계율의 영향이 컸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십 년 관료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구축된 인맥에서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등을 지내면서 만들어진 재야인맥까지 고 전 총리는 어느 누구 못지않게 두텁고 넓은 인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만에 어떤 성격의 자문단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광범한 인적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사람 모으기’를 못하는 게 아니고 안 한다는 것이다.
우선 거의 매일 고 전 총리와 모닝커피를 나눠 마시는 동숭포럼 멤버들이 눈에 띈다. 그들은 대부분 동숭동과 명륜동에 살거나 사무실이 있는 각계 인사들이다. 김재순 전 국회의장, 이영로 전 이화여대 교수, 이세중 변호사, 이창희 전 독일대사, 정경균 전 서울대 보건대학원장, 정문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신원식 학산기술 장학재단 이사장 등이 회원을 구성하고 있다. 동숭포럼은 만들어진 지가 20년이 넘었다.
1998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소위 ‘동숭동팀’으로 불렸던 서울시립대 강홍빈-권원룡 교수와 성균관대 김정탁 교수 등도 여전히 고 전 총리와 친분을 이어가며 고 전 총리의 강력한 후원자로 남아 있고 경기고 동기인 조경목 전 의원, 손풍삼 전 국방부 부대변인 등이 중심이 됐던 낙산포럼 멤버들도 고 전 총리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이원종 충북지사는 고 전 총리가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1988년 당시 동대문구청장과 교통국장으로 재직하며 친분을 쌓았고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는 고 전 총리의 고교 3년 선배로 교분을 나누고 있다. 시민단체 활동속에서 알게 된 서영훈 전 민주당 대표와는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진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 그가 새롭게 몸담고 있는 다산연구소 내 ‘다산 포럼’ 회원들도 고 전 총리의 우군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현재 다산연구소의 고문을 맡고 있다. 이곳에는 최병선 서울대 교수, 박석무 전 의원, 기자 출신의 김용정 대표, 송하중 경희대 행정대학원장, 김민환 고려대 교수, 김태동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박병윤 전 의원, 장인순 한국원자력연구소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고 전 총리의 최대 인적 네트워크는 매일 아침 어김없이 찾는 대중목욕탕, 커피숍 그리고 호프집 등에서 만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만난 몇몇 대학생들은 실제 고 전 총리의 미니홈피 운영을 돕는 등 중요한 조언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고건 전 총리는 매일 아침 목욕탕과 카페에서 하루를 시작해 종로구 연지동 사무실로 걸어서 출근을 한다. 종로 5가 여전도회관에 있는 7~8평 규모의 사무실에는 그의 또 다른 최측근인 여비서 한 사람이 지키고 있다.